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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충이들은 어쩌다 극우가 되었을까?
게시물ID : sisa_3850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5
조회수 : 54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5/06 01:21:23



오늘의 주제는 플라톤. 나는 베충이들이 보이는 그 뛰어난(?) 정치적 의문점들에 대해 - 정확히는 그 의문점들이 가지는 급진적 질문들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인 편이다. 그러나,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비판적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점과 비판의 효능 자체도 의문시될 뿐더러 비판 자체가 표피에 머무르는, 정확히 말하면 데이터화된 총체적 시각이 아니라, 단편적인 부분에 대한 집착 쯤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베충이들의 소위 그 '팩트에 근거한' '비판적 시선'이란 것에 대해 비웃는다.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이 생기게 된다. 첫 째,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급진적으로 만들었을까? 둘 째, 그들의 급진적 의문들은 어디서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 것일까? 셋 째, 무엇이 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놓았을까?


일련의 질문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대답을 플라톤으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는 매우 유명한 우화로 알려져있고, 또 그것이 함축하는 인식론은 베충이들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해를 얻게 해줄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동굴 안에는 죄수들이 갇혀 있다. 그들은 동굴 벽에 있는 그림자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이 '그림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나 동굴 밖으로 나간 죄수는 곧 그것이 빛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그러한 실재를 알리기 위해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가나, 동굴 속의 죄수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할 뿐이다.


이 우화를 분해해보자. 첫 째, 동굴 밖으로 나간 죄수는 '계몽된 자' 혹은 사물의 실재를 알고 있는 자이다. 둘 째, 동굴 안의 죄수들은 사물의 실재를 모른 채,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자들이다. 즉, 보이는 것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동굴 밖의 태양, 나무, 바람 따위를 보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그림자만이 사실이며 전부라고 생각한다. 셋 째, 이들 동굴 안의 죄수들에게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 다시 말하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불'의 존재는 일종의 창틀이며 프레임이다. 그러나 종종 이러한 '불'의 존재는 망각된다.


베충이들이 극우가 된 것은 몇 가지 환상에 기인한다. 첫 째, 한국 사회가 좌경화되었다는 그들의 '근거없는' 경험론적 인식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그러한 '환상'을 실재라고 믿는 것이다. - 다시 말하면,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동굴 밖의 죄수'가 되었고, 그들의 실재에 대한 인식은 다분히 경험적이다. - 종종 이들은 자신들이 '실재'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며 그 위에 덮여진 '불'의 존재, 곧 이데올로기의 존재를 망각한다. - 여기서 웃기게도 베충이들이 스스로 '난 합리주의자'라며 자위하는 별 괴상한 퍼포먼스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보이는 계몽의 한 부분 - 실재를 보아야 한다. 곧 '팩트를 보아야 한다'라고 주장되는 베충이들의 괴상한 행동들은 그들을 '동굴 밖의 죄수'로 만드는 한 요인이나,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 실재가 사실 빛에 의해 '보여지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 다시 말하면 그들이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모든 부분은 사실 '빛'의 존재에 의해 우리 눈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 뿐이다.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다. 베충이들은 여전히 '동굴 안의 죄수'일 뿐이다. 나는 다른 의미에서, 이것을 '동굴의 딜레마'라고 부르고 싶다. 


베충이들아, 환상에서 깨어나라! 너희가 보고 있는 건 환상일 뿐,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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