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채증’ 사복경찰, 시위대에 딱 걸렸네
신분증 채근에 한참만에 “시경 정보과”
“왜 정복 아닌 사복 입었느냐”에 ‘……’
허재현 기자 노현웅 기자
“정당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시위대 사진을 찍는다면서 왜 정복이 아니고 사복을 입으셨어요?”
촛불 시위대의 가두 시위가 한창이던 28일 밤 11시40분께 광희 4거리 인근 도로변.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이 시민들과 기자들에 둘러쌓인 채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40대로 보이는 이들은 검은색 점퍼를 입었고, 한 손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이에 앞서 두 사람은 시위대들의 사진을 부지런히 찍고 있었다. 이를 수상하게 지켜보던 한 시민이 “프락치다”고 소리쳤고, 두 사람 주변에 기자와 시민 50여명이 순식간에 에워 쌓다. 잠시 뒤 그들은 오갈 데 없이 포위된 신세가 되었다. 시민들과 기자들의 추궁에 이들은 경찰관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이어지는 기자와 시민들의 질문과 대답.
딱 걸린 ‘몰카 채증’ 사복경찰
-소속이 어디십니까?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신분증 안 가지고 다녀요.
-경찰인데 왜 신분증을 안 가지고 다녀요?
=왜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겁니까?
-(잠시 뒤 기자들이 따로 불러) 우린 다 기자들입니다. 무슨 서 소속이지요?
=(움츠린 목소리로) 서울시경 정보과요.
(두 사람은 정복을 입은 경찰의 도움을 받고 황급히 빠져나가려다 기자들의 집요한 추격에 잡히고 만다.)
-(기자 2명이 붙들고) 시위대들은 사복 입고 공무집행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재차 기자가 묻는다)
=(갑자기 딴소리) 옆으로 나가 주세요. 그럼 이야기해드릴텐데…
-아니. 얘기하세요. 얘기하고 끝내는 게 빨라요.
(또 도망치다 기자에 붙잡힌다)
-서울시경 정보과 소속 직원들이 사복 입고 얼마나 나와 있는 거죠?
=……
-정상적인 채증이면 정복 입고 경찰 공무 집행 알리고 하면 되잖아요? 왜 사복을 입고 그랬어요?
=정보관으로 공무집행법상 정보수집 활동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는데, 왜 사복을 입었냐고요?
=……
-집시법 위반자를 색출하는데 채증이 이용되는 겁니까?
=그만해요. 아까 계속 했지 않습니까?
시민과 기자에 포위돼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정복을 입은 경찰관의 도움으로 20분 만에 겨우 현장을 빠져나갔다. 소동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이들 두 사람을 ‘프락치’라고 불렀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선 “시위 중 프락치를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 글이 자주 떴다. 이용민(22·한국교원대 3년)씨는 “프락치 얘기를 듣긴 했지만 지방에 살고 있어 잘 몰랐다”며 “오늘 처음 봤는데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되었다고 하지만 경찰이 사복 입고 몰래시민을 채증하는 것을 보니 ‘민주 경찰’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허재현 노현웅 기자 김도성 피디
[email protected]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0335.html
세상 잘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