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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좋아하세요? (2)
게시물ID : art_102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이라보유
추천 : 10
조회수 : 70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6/09 04:16:47

과제하나 마무리 했으니 하나 더.




저는 역사를 좋아해요. 한 맺힌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다보면 가슴이 아플 때도 많고 대륙의 스케일과 비교당할 때에는 뭔가 아쉽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동북아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대에 와서야 서양이 동양의 기술력을 따라잡았다는 것 알고계세요?


기원전 15세기, 동북아는 이미 젓가락을 사용할 정도로 위생적인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기원전 3세기때에 젓가락 비스무리한 것 이 나왔다고 하네요.)


서양은 약 4~5세기쯤에 포크를 썼다고 하구요. 베오베에도 갔던 정보지만 프랑스는 16세기에 와서야 포크를 사용했고, 영국은 18세기에도 포크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요.


판타지 영화를 보면 서양사람들은 대개 금속접시를 씁니다. 귀족이나 왕들은 은접시를 쓰죠. 하층민들은 질그릇을 썼습니다.


질그릇은 토기 또는 사기(沙器)로, 도자기에 미치지 못하는 비위생적인 식기죠. 물과 만나면 바스라지고, 녹아버리는 그런 그릇인거에요.


빗살무늬토기는 식기용이 아닌 보관용이라고 배웠었죠? 낮은 온도에서 굽거나 굽지 않은 상태의 토기는 물을 만나면 쉽게 부서집니다.


다시 돌아와서, 서양 판타지는 대개 중세나 근세를 시대적배경으로 잡죠. 우리나라에서 고려, 조선쯤의 시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극보면 고려때에도 서민들은 도자기그릇을 씁니다. 물론 저급도기이긴 하지만요.


심지어 조선보다 고려때의 청자들은 더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대개 12~13세기때의 고려청자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죠.


여러분이 알고 계신 고려청자들은 그 때 제작된게 많습니다.


청자는 본래 우리나라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월주요(窯)라는 곳에서 흙으로도 옥을 만들고 싶어 만들기 시작한게 청자에요.


그것이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만들기 시작했는데, 당시 11세기에 전세계에서 청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 둘 뿐이었습니다.


굿?


당시 도자기라는 것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 베트남 뿐이었어요. 


그런데 남송때의 풍류객, 태평노인은 수중금이라는 책에서 '고려비색 천하제일' 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청자는 중국에서도 알아줬어요. 


상감기법이라는 것은 원래 금속에만 쓰이던 기술이었는데, 고려시대의 도공들은 그걸 도자기 썼어요.


안그래도 화려한 청자의 빛깔에, 상감이라는 화려한 스킬을 쓰게 되는거죠.


고려시대의 도공들은 ...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쩔었어요.




뭔가..색감이 촌스럽게 나왔는데..


국립중앙박물관가면 있는 거에요. 공짜니깐 언제 시간나시면 가보세요.


오리지날의 색감은 더 아름답습니다.


맨날 보던거라 식상하시죠?


근데 저걸 집에 둔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시대에.


그리고, 저걸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ㅋㅋ....ㅋㅋ....ㅋ....아 자랑스럽다...


사실 왼쪽의 향로(청자칠보투각문향로)는 뒷부분이 갈라져 있어요. 흙자체가 불안정하면, 가마에서 구울때 쩍 갈라지기도 하는데,


저 향로는 사실 갈라진 부분이 안보이게 사진을 찍은 거에요. 도공이 얼마나 아쉬웠을지 공감이 되요.. 저는 저런적이 많아서..


고려시대의 도공들은 실력이 뛰어났어요. 형태를 잡아서 성형하는 능력이나, 상감같은 고급스킬을 구사하는 능력도.


그리고 제일 중요한 비색을 내는 유약을 만드는 법과, 1250도 라는 고온을 유지시키는 불을 다루는 능력도 뛰어났죠.


그렇기에 얼마나 자부심이 강했겠어요. 그래서 잘못나온 도자기들을 그렇게 깨고 다녔나봐요.


근데..저건 갈라졌는데 왜.. 


저건 안 깨서 정말 다행이에요.




가마, 그러니깐 불을 다루는 능력은 요업공정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해요.


도자기는 불 없이 도자기가 될 수 없어요. 그런데 흙은 오랜시간동안 불을 만나야 도기가 되고, 자기가 되요.


도자기를 구울 때 두번 굽는 거 아시죠?


처음구울때에는 (초벌) 대개 750~850도의 온도로 토기를 구워요. (굽지 않은 질그릇을 토기라고 해요.)


담뱃불이 800도라고 들었는데, 그 정도 되는 불을 하룻밤을 꼬박 때우면서 유지를 시켜야해요.


다시구울때에는 (재벌) 1100~1300도의 온도로 초벌기를 구워요.


지금은 가스가마나 전기가마가 생겨서 나무를 쓰지 않지만, 장작가마를 땔 때에는 재벌 때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가요.


함부로 장작을 패도 안되고, 참나무나 소나무같은 화력이 좋은 나무만 써야하니깐요.


우리나라와 중국은 어떻게 해야 이 높은 온도의 불들을 오랜시간 붙잡고 있는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서양은 그걸 몰라서 17세기까지 질그릇을 쓰며 중국의 청화백자에 침을 흘렸죠.


여담이지만 중국은 세계에 미친 영향력이 굉장합니다. 


홍차는 서양이 즐겨마신거지, 먼저 시작한게 아니에요. 중국이 아주 오래전부터 마셨던 차가 서양으로 유입되면서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던 서양인들이 눈이 돌아간거에요. 서양의 귀족들은 중국의 도자기에 홍차를 마시는 것이 최고의 사치로 생각됐었어요.


맨날 수입만 하니깐 답답해서 서양의 나라들은 홍차를 직접 재배하려고 하죠. (홍차는 사실 녹차를 발효시킨거에요.)


그러다가 인도에서 아쎔종이라는 차나무를 발견하고, 착출하기 시작합니다.


실론티라는 홍차도 스리랑카쪽의 실론이라는 섬에서 서양이 착출한 차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도자기도 직접 만들기 위해 엄청난 연구를 해요.


우리 조선은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Simple is best를 조선백자로 몸소 보여주며 단순함의 미를 뽐내고 있던 반면,


서양은 불의 온도를 유지하지 못해 자꾸 실패하기만 해요.


서양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도자기공방은 이탈리아에 있었는데, 중국의 청화백자를 모방한 청화백자는 그림이 모두 눈물에 흘러내진 아이섀도처럼 흘러내려져 있어요.


서양이 저렇게 쩔쩔매고 있을 무렵, 동양은 서민까지도 도자기를 쓰며 위생적인 식생활을 누렸어요.


물론 돈 많은 귀족들은 도자기로 된 필통도 있었고 향로나 꿀을 담는 항아리는 물론 베개도 있었어요.


당시 귀족들의 베개싸움은 혈전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도 하나 마련해서 별로 안좋아했던 친구에게 베개전쟁을 선포해보세요. 


생각난김에 방학 때에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다음에는 더 재밌는 얘기 준비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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