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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극단주의에서 비롯한 파시즘
게시물ID : sisa_3996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냥머리
추천 : 0
조회수 : 9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10 10:54:54

극단주의(極端主義, Extremism)은 이데올로기나 행동의 경향이 극단적으로 치우친 것을 말한다. 

극단주의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발견된다.

확산 다른 이들이 자기 생각에 동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 더 극단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소수의 믿음과 관점이 다수의 사람들에게로 확산되는
'사회적 폭포현상(social cascades)'은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된다.
특정 사상에 사로잡혀,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자신이 실제로 아는 정보를 근거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근거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1]

목록   

파시즘
테러리즘
페미나치

주석
 
극단주의의 정체와 메커니즘 다뤄김지아《서울경제》2011-10-14



각국에서의
파시즘


이탈리아

무솔리니
는 191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실패한 좌파 민족주의를 고수하지 않고,
자신의 운동을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는 편을 택했다. 
1920년에서 1922년 사이 그의 연설과 강령에서 무솔리니가 점차 우파 쪽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초기 파시즘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사상은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거부였다.
'참호(에서 얻을) 반전주의'는 전투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당시 퇴역군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신념이었다.
[25]

이탈리아
 산세폴크로 광장에서 발표한 강령은
(피우메와 달마티아 해변에 대한 이탈리아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각 나라의 영토를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의 원리'라는 국제연맹의 원칙을 받아들였다.
[25]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기성 우파, 반왕당파 및 공화정 세력은
귀족과 재벌들의 이권을 수호하고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지하였으며,
이들을 좌파로 규정,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1919년
 6월의 강령에서는 직업적 군대를 방어적 의미의 민병대로 대체하고
무기 및 군수품 공장을 국유화한다는 파시스트들의 주장은 그대로였지만,
국제연맹 이야기는 사라졌다. 
1921년 발표한 강령에서 달라진 파시스트당은 국제연맹을 편파적이라고 비난하고,
'지중해 라틴 문명의 보루'이자 이탈리아적인 것(Italianita)의 보루로서 이탈리아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이탈리아의 식민지 개척과 대규모 상비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25] 
무솔리니는 자랑스러운 이탈리아로마 제국의 옛 영광, 반국가 행위자 처벌 등을 주창했다.
이러한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의 주장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대중들의 급격한 동의를 얻으면서 기성의 우파 정당을 대체하여 집권당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독일
 이 부분의 본문은 나치즘입니다.


일본
 이 부분의 본문은 일본 제국주의입니다.



대한민국의 파시즘

대한민국에서는 6·25 전쟁 종전 이후 전후복구의 과정에서 파시즘이 나타났다.
강준만은 박정희 시대의 파시즘적 성격에 주목한다.[33] 
그에 의하면 박정희의 유사 파시즘적 체제는 
1972년 민주제도를 파괴하고,
영구집권 기반을 확립한 '10월 유신'으로 성립했다.
박정희식 유사 파시즘은 '민족성 개조'라는 이름의 국민의식 개조운동과,
공포와 폭력이라는 물리적 탄압의 두 가지 수단을 통해 공고해졌다.
[33] 
박정희는 그해 
10월 17일 "민족의 지상 과제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적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실로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이른바 
10월 유신을 통해서 유사 파시즘 체제의 시동을 걸었다.[34] 
유신헌법은 그 유사 파시즘 체제의 법적 표현이었다.
[34]

의식개조운동은 
새마을운동과 '이순신 성웅화' 작업이 표본이다.
농촌 새마을 운동에서 시작해 도시-공장-학교 새마을 운동으로 번진 이 운동은
"10월 유신과 영구 집권에 필요한 대중동원 수단"이자
"유신이념과 연결된 정치적 국민운동"이었다. 
현충사 성역화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에게 이순신은 "'나'는 없고 '국가'와 '민족'만 있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멸사봉공의 정신"이었다.
[33]

이 유사 파시즘 체제에 저항하거나 의심을 품으면 돌아오는 것은 고문과 죽음이었다.
[33] 
이후 
1993년의 문민 정부 출범 이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이기주의, 개인주의는 범죄처럼 여겨져 왔다.
애국심과 민족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기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 규탄과 매장의 대상이 되었다.



기타


파시즘은 경제 불황, 대량 실직, 
독재적 권력자와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조하는 쇼비니즘,
외국인이나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 등과 함께 나타난다는 특성이 있다.



비판

라는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불가리아 등)이
패망한 이후 정치적 조롱의 표현이 되었다.
현대 정치 담론에서 주로 사회주의 등 좌파를 주축으로 하는
일련의 정치세력은 파시즘을 악마(惡魔)로 취급한다. (
자세한 것은 반파쇼를 참조)


애국심이 과도하면 파시즘으로 돌변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우려가 존재한다.
[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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