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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들의 역사왜곡에 제대로 대응도못하는 진보지식인들
게시물ID : sisa_4004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ss989
추천 : 2
조회수 : 4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12 23:50:19
 
 
서중석 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고별 강연 ‘한국 현대사와 서중석’서 일침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967년 대학 입학(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면접 길에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를 꺼내 읽었다. 당시 <근대 혁명사상사>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이었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역사, 미슐레·비코·르낭·바뵈프·생시몽·푸리에·오언,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같은 혁명적 사상의 형성과 실천에 영향을 끼친 인물을 다룬 책이다. 서 교수는 그 책에서 ‘구체적인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바로 혁명사에 등장하는 ‘실천하는 인물들’에게서 공부와 행동이 같이 가는 ‘지행합일’을 배운 것이다.
 
 
 
 

서 교수는 대학에 들어가 여러 과목을 청강할 정도로 역사에 빠져드는 한편 학생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듬해 6·8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뛰어들었고, 1969년 3선개헌 반대운동,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세 차례나 제적·복교를 거쳤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정년퇴임 기념 고별 강연 ‘한국 현대사와 서중석’은 그 삶에 관한 것이었다. 임경섭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강연 제목은) 서 교수님이 한국의 대표 현대사 학자라는 뜻도 있지만, 그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는 이중의 함축이 담긴 표현”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교수가 10일 정년퇴임 기념 고별 강연장에서 박재동 화백이 그린 캐리커처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 6·8부정선거 규탄부터 3선개헌 반대 등 ‘행동’
46년 한국 현대사 산증인


▲ 북 특공대 600명의 전남도청 점령 이야기는
달나라 점령보다 더 신기한 이야기
 
 
 
 
 


고별 강연은 서 교수가 1967년 대학 입학 이후 46년간 겪은 현대사 체험과 공부를 70여분으로 압축한 것이었다. 서 교수는 “앞으로 강의 안 하는 거 말고는 달라질 게 없는데, (제자들이) 고별 강연하라고 그러고,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한다고 하니 눈물도 흘리면서 울어야 할 것 같고, 슬퍼져야 하는 것 같은 모양”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시작했다
 
 
.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굴곡 많은 자신의 공부와 실천을 남일 이야기하듯 읊었다. “(3선개헌 반대 때) 유홍준(명지대 교수)이가 주동자였는데, 제가 당했죠.” “(민청학련 사건 때) 시골집에 된장 가지러 갔다가 어디 경찰서에서 나와 데리고 가더라고요.” 이 같은 말로 제적과 투옥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강연장을 채운 200여명의 청중으로부터 웃음이 터져나왔다.
 
 

서 교수는 노동자, 농민, 빈민에 관한 르포를 열심히 썼던 신동아 기자 시절,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현대사 연구에 들어간 석·박사 때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 교수가 학부를 졸업한 해는 입학 13년 만인 1984년, 박사학위를 받은 때는 마흔이 훌쩍 넘은 1990년이었다.
 
 
 1991년 박사 논문 <좌우합작에 의한 민족국가 건설운동 연구> 등을 묶어낸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해방 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과 통일전선>은 한국 현대사 연구자 ‘서중석’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였다. 여러 언론사에서는 주목했지만,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서 교수는 기억한다. “그 당시 혁명론, 변혁론이 대단한 위세를 떨칠 때라서 그 입장에서 쓰지 않고 오히려 비판한 것은 환영받지 못한 게 당연했죠.”
 
 
 
 서 교수는 해방 공간에서 실패한 여운형의 좌우합작을 왜 높이 평가하느냐는 반박을 많이 들었는데, 성질을 내면서 이런 답변을 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열렬히 지지했어요. 그리고 역사가 승자의 역사란 말인가요? 이승만 집권,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를 좋게 쓰란 말인가요? 당시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역사고, 오늘날 제일 필요한 역사라서 그 부분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지요.”
 
 
 
 

1999년에는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를 썼다. 서 교수는 조봉암이 북진통일 전시체제 아래서 유일하게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에 주목했다. “또 조봉암은 대중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면서 무수한 사람이 죽은 보도연맹 학살 같은 사건을 왜 눈감아야 하느냐고 주장했습니다. 단 한 사람만이 이런 주장을 한 겁니다.”
 
 
 서 교수는 “냉전체제가 극악한 형태로 위세를 떨칠 때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꿈꾸고, 반역적인 것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소중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근·현대사의 여러 운동 중에서도 3·1운동을 가장 위대한 운동으로 꼽으며 “좌절과 절망에서 깨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각성했고, 새로운 노동자·농민·여성·백정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일제가 가르쳐서 근대적 인간상을 획득한 게 아니라, 3·1운동이라는 투쟁을 통해서, 만세를 외치는 속에서 ‘내가 인간이다’라는 생각과 독립국가에 관한 근대적 정치감각을 가지게 된 것”이라며 “사상적·심리적·정치적 근대화는 투쟁의 신음소리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연 말미에 서 교수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최근 5·18 역사 왜곡 문제를 두고, “북에서 보낸 600명의 특공대가 전남도청을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달나라 점령보다 더 신기한 이야기”라고 했다. 1995년 이후 시작된 반공 수구냉전세력의 이승만·친일파 살리기에서 최근의 역사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퇴행적 방법으로 과거의 극우반공 이데올로기를 재현시키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6월항쟁 이후 수구냉전세력이 반성하고, 건강한 보수주의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한국엔 보수세력이 없다”고 했다.
 
 
 
 
 

 
서 교수는 “그런데 내가 분노하고, 비통해하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 진보세력 때문”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1995년부터 진보세력이라는 자들이 이러한 논리에 제대로 대응한 적이 없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은 친일파를 살리기 위해 광복절, 해방일을 건국절로 포장하고 나왔는데, (독립유공자들의 서훈 반납 운동 때까지) 썩어 빠진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응 한번 못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후학들에 대한 당부로 고별 강연을 끝냈다. 영화 <광해>를 거론하며 “광해군이 한 일을 가짜가 한 것으로 완전히 역사를 뒤집어 놓았다”며 “좋은 의도로 역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이나, 나쁜 의도로 역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이나 둘은 나중에 같이 만난다. 똑같은 짓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사라져야 하는데, 후배 분들이 잘 싸우자고요. 좋은 논문 많이 쓰고, 좋은 학술토론회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건강한 우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역사학이 소중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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