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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이승만,김일성 친일 내각에 대한 글.
게시물ID : sisa_4015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나된나라
추천 : 3
조회수 : 254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6/17 00:36:09
아...뉴라이트나 일베나 워낙 조작질을 잘해서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는 많은 글들이
 
뉴라이트 색휘들이 조작해서 만든게 많다.
 
솔직히 옛날에 친일파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살았으나
 
이명박그네 시대되면서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본인의 친일 정신을
 
알리고 있지 않는가.
 
솔직히 김일성도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서 친일이란 허울을 씌웠겠지.
 
하지만 뉴라이트의 왜곡이 너무 심해서 내가 글을 퍼왔다.
 
뉴라이트 색휘들도 솔직히 80년엔 주사파이다가 변절한 인간들도 많음.
 
암튼 좀 긴 글이지만 보쇼.
 
진짜 웃기는건 이승만 내각은 대부분 항일투사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서운건 실제로 이런 왜곡된 내용이 검색하면 1순위라는거지.
 
국사가 필수가 아니니 이런 꼬라지가 생기지..쯪
 
 
 
 
 
●김일성 내각
김영주 - 북한 부주석, 북한내 당시 서열 2위, 김일성 동생 (일제 헌병 보조원)
장헌근 - 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 당시 서열 10위 (일제 중추원 참의)
강양욱 -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당시 서열 11위 (일제하 도의원)
이승엽 - 남조선 로동당 서열 2위 (친일단체 "대화숙" 가입, 일제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영단" 이사)
정국은 -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 (아사히 서울지국 기자, 친일밀정, 즉 일본간첩출신)
김정제 - 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하 양주군수)
조일명 - 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 - 북한 부수상 (일제 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 활 - 북한 인민군 초대공군 사령관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허민국 - 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강치우 -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최승희 - (일제하 친일단체 예술인 총연맹 회원)
김달삼 - 조선로동당 4.3사건 주동자 (일제 소위)
박팔양 - 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 문화부장)
한낙규 - 북한 김일성대 교수 (일제하 검찰총장)
정준택 - 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하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 복무)
한희진 -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 함흥철도 국장)

●이승만 초대 내각.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부통령 이시영(李始榮) -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
국회의장 신익희(申翼熙) -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대법원장 김병로(金炳魯) - 항일변호사
국무총리 이범석(李範奭) - 광복군 참모장
외무장관 장택상(張澤相) -일제시대 청구구락부 사건으로 투옥된 경험
내무장관 윤치영(尹致暎) -일제시대 때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재무장관 김도연(金度演) -3.1운동에 앞선 2·8독립선언을 주도하여 투옥
법부장관 이인(李仁)- 항일변호사
국방장관 이범석(李範奭)씨가 겸임
문교장관 안호상(安浩相)씨는 철학교수였습니다.
농림장관 조봉암(曺奉岩)씨는 공산당에서 전향한 사람
상공장관 임영신(任永信) 독립운동가이고 교육가
사회장관 전진한(錢鎭漢) -일제시대에도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
교통장관 민희식(閔熙植) -교통전문가였습니다.
체신장관 윤석구(尹錫龜) -교육 사회운동가였습니다.
무임소 장관 이청천(李靑天) -광복군 총사령관이었습니다.
무임소장관 이윤영(李允榮)- 북한에서 항일 기독교 목사로 일했고 조만식 선생의 제자
국회부의장 김동원(金東元)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독립운동가 출신
국회부의장 김약수(金若水)- 이 분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할말이 없군요. 이미 홍명희가 친일파라고 올린것 부터 뿜었습니다. 이거 하나만 봐도 이 자료의 신뢰도를 평가할수가 있겠는데요, 일제 합병에 분개해 자별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항일활동에 몸바친 홍명희씨를 말입니다. 뭐 사실 저 북한 '내각' 이라고 올라온 사람들중에 친일파도 제법 있습니다. 한낙규씨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데요, 재밌는건 아마 제가 알기로는 위의 이 처음 나온게 친일인명사전을 쓴 임헌영씨 깔려고 쓴 글인데 한낙규는 버젓히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뭐 그 외에 한두명이 아니여서 일일이 행적을 찾기는 귀찮아서 몇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1. 북한'내각'이라고 올라온 것중에 교통국장이나 산업국장은 뭔가요? 솔직히 듣보잡인 사람들이라 모르겠는데 대체 '국장'을 '내각'이라고 불러도 되는건지요? 그것도 정보부 국장같은 것도 아니고 교통국장이나 행정 10국 산업국장을, 남한에 내각 인사를 장,차관이나 국회 부의장같은걸로 도배했으면 당시 북한에서는 ~성 부상이나 부부상급으로 메꿔야 되는것 아닙니까?(솔직히 국회 부의장을 내각이랍시고 넣은것 부터 글쓴이의 개념이 드러나는듯, 대체 어느나라의 국회가 '내각'이 일부였는지도 의문)



2. 솔직히 한낙규 같은 사람은 노골적 친일파가 맞습니다. 근데 '내각'인사가 아니라 김일성 대학(남한의 서울대로 보면 됨) 교수였어요. 그럼 이것도 넣어야되는 것 아닙니까? 경정제국대학을 그대로 물려받은 서울대는 교수진들도 그대로인 일제 똘마니들인데다가 미군정 시기에는 미국 대위가 총장을 해먹더니 그다음 총장으로 앉은 이춘호씨는 기독교 내선일체와 황민화에 앞장섰던 경성기독교연합회 회원이었다죠. 그리고 내각이랍시고 인민군 9사단장 이하 부사단장까지 올려놓으셨는데요, 역시 일개 군 사단장을 주요 내각인사로 올려놓은 무개념이 돋보입니다. 뭐 이사람들이 일본군 사관학교 나와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 알고 갈 것은 당시 남한의 경찰에서, 경위이상의 간부들의 평균 80%가 일제 앞잡이들이고, 군대도 하나 다를것 없어서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구성된 것이아니라 역시 대다수가 일본 군 출신, 특히 소령 이상부터는 역시 80%가 일본 군사학교 출신이라는것.



3. 이승엽(북한식으로는 리승엽이죠)같은사람들은 변절잡니다. 독립활동을 꽤 열심히 했지만 1940년에 변절했지요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갑니다. 친일파로 보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무려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윤치영 같은 놈을 봅시다. 이인간은 윤치영씨가 아니라 놈이에요, 이 인간도 변절잔데 이승엽 같은 사람은 게임이안되는 초거물급 변절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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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영은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세하여 임전국책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을 팔기 위해 채권 가두유격대에 참여하였다. 1943년 "우리 조선청년을 영광스러운 일본 해군의 자랑스러운 대열로 받아들인 데 대하여 제국 정부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파격의 영광인데 어찌 주저할소냐. 개인과 가정, 일본과 세계 인류를 위해 총출진하라" 발표하였다. 1945년 4월 일본 제국에 의해 칙선 귀족원으로 선출되어 남작의 작위를 받은 부친 윤영렬(尹英烈)에 이어 2대째 일본 귀족이 되어 조선 내 7인의 일본 귀족 중 한 명이 되었다. - 이하 위키백과 인용.

보세요, 솔직히 이승엽은 변절은 했어도 딱히 구체적인 활동은 확인된 바 없습니다. 투옥도 윤치영보다 훨씬 많이 됬고요. 근에 윤치영은 창씨개명까지 해대면서 위에 인용한대로 개소리를 짖어댔지요. 근데 이승엽은 친일파고, 윤치영은 '무려' 독립운동가군요? 하나 더있네요, 변절 문학가 김동인의 형인 김동원도 뚜렷한 친일행적을 남겼죠.



4. 독립운동가도 아닌데 독립운동가인사람. 전진한이나 민희식 같은사람은 친일파는 아니였지만, 애초에 독립운동가도 아니였습니다...전진한은 독립 이후에나 노동운동에 종사했고, 민희식은 누군지 기록조차 없네요. 설명도 '교통전문가 였습니다'군요



5. 사실 남한 인사분에 존경할만한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다 어떻게 됬나 보시죠. 신익희씨는 이승만의 반민특위 파괴 공작에 학을 떼고, 이후 야당 대표로 대통령에 출마하죠, 당시 국민 지지도로 거의 당선이 확실시 됬으나 심장마비로 선거 직전에 급사하시면서 더러운 이승만 정권이 연장되버렸죠.

김병로씨는 사사건건 이승만과 맞서며 갈등이 고조되다가 법이고 뭐고 다 깽판친 사사오입을 비판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국가보안법(처음엔 정상적인 법이었으나 수구 반공 이승만 및 그 휘화 졸개들이 개악하죠)개악을 반대하고, 반민특위 해체에 격렬하게 반발했던 인물입니다. 그 명성이나 인지도가 너무 높아 이승만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인씨도 반민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이 해체시키면서 갈라서고요, 최고의 압권은 조봉암씬데, 이분은 농지개혁등 활발하게 이승만과 어긋나는 길을 걸으시다가 3대 대통령에 출마, 30%의 지지율을 얻어 이승만 등을 경악하게 했습니다.(당시 부정투표만 아니였으면 조봉암이 압도적으로 당선됬으리라고 합니다.), 진보당의 당수로서 남한에서 최초로 평화통일과 사회복지를 주장하였으며 끝내 1958년 이승만의 손에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사형당하고 맙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제대로 된' 독립 투사들은 이승만의 행보에 경멸을 품으며 갈라서고 맙니다.



너무 길어지니 정리하겠습니다. 위에서 제시된 자료가 앞서 설명한 듯 그야말로 말할것도 없이 '엉터리'인데다가 형평성또한 전혀 없는 쓰레기 자료임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확실한 것은 초대 내각 당시 남한에도 많은 독립투사들이 참여하였고, 북한에도 많은 반민족분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건 누가 더 더럽다 할 것 없이 독립투사도, 일제 아래에 영광을 누렸던 친일파도 함께 있었습니다. 왜냐고요? 초대내각이기 때문이죠, 건국되자 마자 준비도 없이 수립된 내각이기에, 인물들의 과거행적을 자세하게 밝혀 뽑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친일파를 청산하여 민족정기를 세웠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고들 말하는 것은 그 이후에 있습니다. (제발 착각하시는게 남북의 친일파 청산-또는 시도 가 정부 수립이후 단계적으로 있었지, 정부수립전에 한게 아닙니다. 정부도 없는데 누가 그런 일을 전국적 단위로 합니까?) 북한은 그후 여러차례에 걸친 반민족분자의 색출과 그 농도가 짙은 자들은 처단하고, 그 농도가 비교적 덜한 자들은 적어도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는 대국민 성명을 냄으로써 깨끗하게 친일분자를 뿌리뽑습니다. 물론 이후에 수립된 내각도 그렇고요. 대표적으로 이승엽같은 인간도 숙청당합니다. 뭐 권력투쟁의 냄새가 약간 나긴 하지만, 북한에서 김일성이 친일파라고 숙청한 정치인들은 모두 '진짜' 친일파였습니다.

반면 남한은 어땟나요? 반민특위가 수립되서 조사를 벌이고 기세를 올리는것은 좋았는데, 애초에 별로 민족의식도 없었던 이승만이 친일분자들의 사바사바도 있고, 기세도 과격해서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친일파들을 흔들자 정치깡패를 고용해서 때려부수고, 조직은 해체해버리죠,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해방당시 경찰간부의 80%가 일제 앞잡이였는데, 12년이 지난후의 조사에도 이 비율은 60%를 상회했습니다. 초대 내각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이승만과 갈라서 버리고, 이후에 수립된 이승만 내각들은 몽땅 친일분자로 득시글거렸고요.



자 이제 말하려던 두가지를 모두 밝혔습니다. 꼴통들이 써먹는 남북간의 내각 비교의 허구성과, 왜 남한이 북한보다 민족정기를 확립하지 못해서, 친일파가 그대로 살아남아 나라를 썩게 만들었는지도요. 제발 진실을 오도해서 바람직한 사회적 진보를 방해하고, 아는 사람들을 눈살찌푸리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사실을 각인시키는 더러운 짓은 그만하셨으면 합니다.



하나 더 덧붙이죠, 김일성 동생이랍시고 나온 김영주같은 사람들의 친일행위는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그냥 의문이죠, 설령 헌병 보조원이였다고 해도, 그건 보조원 아닌가요? 당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세하여 임전국책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기염을 토한 윤치영 같은 인간들과 같은 급의 친일 행윈가요? 마찬가지로 일제 사관학교 출신이였다는 사단장 등등도 그냥 출신 아닙니까, 그런 식이면 당시 초대 남한 내각 인사들도 대부분 일본 유학을 갔다와서, 일본 대학을 나온 사람들입니다만. 또 이러면 "너희 좌빨들은 박정희도 일제 군관학교라고 친일파로 매도했잖아" 하는 인간들 나올것 같은데요, 박정희는 일제 군관학교 나와서 소좌로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혈서까지 써보내는 '또라이' 였습니다.

아 그리고 이렇게 까지 썻으니 본인보고 좌빨이니, 김일성 개라느니 하는 사람 나올듯 한데, 저 개인적으로 김일성의 독재와 숙청, 그리고 세습정치에 대해서는 혐오하는 바입니다. 그래도 김일성이 항일 유격대로 1940년대의 암흑기에도 활동한건 대단하다고 봅니다. 왜?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저 좌빨맞습니다^^ 우리나라 꼴통들의 좌빨기준은 너무나도 폭이 넓어 국민의 과반수가 포함될것 같긴 하지만, 어쨋든 전 지금 우리나라의 상태가 너무 극우로 치우쳐 있고, 어중간한 중도 정당이나, 스탈린식 공산당같은 사이비 좌파가 아닌 북유럽의 사회 복지관련된 당이나, 서유럽의 민주사회주의 관련 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거든요.

정말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우파들이 하늘처럼 모시는 이승만을 살펴보죠. 이 인간, 합방 전에 독립협회 활동도 했었는데, 그때 독립협회 내에서 대표적인 친일 분자였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열심히 찬양했죠. 뭐 그건 그렇다 칩시다, 아직 어려서 뭘 모를때고, 안중근 같은 분도 비슷한 말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짚고 넘어가죠, 당시 하와이에서 대한인 국민회를 수립하고, 조선 독립군을 양성하던 분이 계셨습니다. 박용만이라는 분인데요, 당연히 일본 정부와, 당시만해도 일본과 찰떡궁합이였던 미국의 심기를 거슬렸죠. 이때 이승만이 하와이로 넘어가자, 박용만은 따뜻하게 맞이해 줍니다. 그런데 이승만이 무슨 짓을 했냐면요, 일본 정부와 절친했던 미국 정부가 박용만의 독립군 양성을 재판에 회부하쟈, 이승만이 증인으로 나와서 박용만을 배신하고, 박용만의 독립활동 계흭을 폭로해서 유죄판결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협회는 자기가 접수하여 개인적 자금줄로 사용, 결국 하와이의 독립운동은 거기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이건 좀 더 유명한 것으로, 상해 임정에서 초대 대통령을 맡으며 꼴같잖은 외교론을 주장하는데 결국 똥칠을 합니다. 미국 위임통치론으로요, 내용이 뭐냐하면 '미국이 일본 대신 조선을 통치해달라'였지요. 결국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실망하고, 임정은 거의 와해 될 뻔 합니다. 줄기찬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몇년간이나 더 해먹다가 결국 1925년에야 물러서는데요, 더 어이없는것은 이승만이 그동안 버티면서 임시정부의 자금을 계속 빼돌려 1925년 당시 임정은 파산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죠. 결국 임정은 김구가 결성한 한인 애국단의 활발한 활동으로 다시 지지를 받기 전까지는 거의 유명무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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