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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과거]산문-그의 사진 한 장
게시물ID : readers_80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프로페썰
추천 : 6
조회수 : 39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6/30 22:02:50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어머, 이 사진이 마음에 드세요? 컬러 사진이라고는 해도 좀 옛날 느낌이 나긴하죠?”
 전의 그 수다스러운 여자는 그녀의 옆에 딱 붙어 서서 이말, 저말 늘어놓으며 사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던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돌연 고개를 돌려 여자에게 질문했다.
  “이번 사진은, 어디에서 들여 오신거에요?”
  “네?그야..관장님이..”
 여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이라도 한 듯 이 조그마한 갤러리의 관게자로 보이는 여자는 남색의 쫙 펴진 스커트를 만지작대며 여자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무리 작은 갤러리라고 한들 저런 어설픈 모습으로 방문객을 대하는 것으로 보아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성과는 아는사이,그것도 꽤 친한 사이로 보였다.
 "무섭게 왜 그래요? 정말이에요.아무리 저희 관장님이 작품 관리에는 관심 없으시다고 해도 가끔 이렇게 저도 모르는 곳에서 사진을 구해다가 비밀에 부치신다니까요? 진짜 하나도 몰라요,정말로!"
 "하나도?"
 검은 머리의 여자는 가지런한 손가락을 들어올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꽂았고,그 모습에 으이-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반듯한 표정이었던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듣기에는 관장님 친척분이라는 것 같은데...그래서 저도 잘 몰라요.보세요,친척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90년대 달동네 사진을 이렇게나 형편없게
 찍었는데도 갤러리에 걸어주겠어요?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맹세해요!"
 손사래 치며 물러나는 반듯한 여자의 모습에 검은 머리여자는 알수 없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반듯한 여자의 팔목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방금도 정말 모른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딸랑-
고전 갤러리에서나 들을 법한  청아한 종소리를 들으며 갤러리서 나온 검은머리의 여자는 손에 그러쥔 종이를 다시 한번 펼쳐보고는 다시 그것을 잔뜩 힘주어 구겨버렸다.
  010-XXXX-XXXX 민유환
종이 안의 내용을 확인한 여자는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입에 걸고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아직 11월 초인데도 짐짓 겨울 흉내라도 내는 듯 매서운 바람이 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세차게 때려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기분좋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걸어갈 뿐이었다.
 .
 .
 
  '아,원혜씨?어쩐 일이에요? 이 번호는 어떻게 알고?'
 "한나씨에게 물어봤어요.왜요? 개인 전화는 역시 좀 부담스러우시려나?'"
 "꺅!그걸 말하시면 어떻게 해요!"
 한나라 불리운 반듯한 여자가 험악한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금세 울상으로 바뀌었지만 검은머리 여자에게 더이상 자신의 옆에 있는 존재를 상대할 여유는 없어보였다.
 '네?에이,아니에요.우리 사이에 무슨.그냥 좀 놀라서.앗,잠깐 혹시 그건가? 저의 매력에!'
 "뭐야,나오는 말이 고작 그거에요? 이번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어서 작가분이 누군가 하고 좀 여쭤보려고 전화 드린거에요.'
검은 머리의 여자는 반듯한 얼굴의  여자에게 '괜찮다' 라는 눈짓을 보냈고 그제서야 반듯한 얼굴의 여자는 안심한 듯 둘의 통화를 엿듣기 위해 휴대폰을 향해 다가왔다.
 '아,그런거 였어요? 그래도 원혜 씨 너무 단호하시다.나 약간 마음상하려고 해.그래서,어떤 작품이 원혜 씨 마음을 사로 잡았다는거야? 웬만한 건 한나씨가 다 알려줄텐데.'
 관장의 상투적인 표현에 한나라는 여자가 킥킥대기도 잠깐, 통화의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관장의 말소리에 자신의 상사라는 사실도 잊은 듯 목에 핏대를 세우고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검은 머리 여자가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는 시늉을 하며 제지시켰다.
 "제목이 '단발의 소녀'였어요.작가분이 관장님 친척분 이시라면서요?소개좀 시켜줘요."
 '네?그 사진이요?푸푸풉!'
순식간에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큰 웃음소리에 당황한 두여자는 서로 눈을 맞추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이내 한나라는 여자쪽은 곧 수긍했는지 약간의 웃음기를 담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아,죄송....죄송해요!솔직히 그 사진 정말 못찍었다고 생각했는데,이렇게 예비 추종자분도 만들 정도면....와,이거 대단한데요?'
 "네?왜요?"
 관장의 그 말에 조금 마음이 상한 듯 검은머리 여자가 반문했지만 여전히 들려오는 통화소리에는 웃음기 가득 배인 목소리 뿐이었다.
 '큭큭,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말 못 찍었잖아요. 제 조카녀석 작품인데,그게 95년도 사진이거든요?그 당시엔 꽤나 비싼 카메라 였겠지만 그 성능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았겠어요?그것도 그녀석이....11살 때 찍은거니까.지금이야 사진으로 먹고 사는 녀석이니 나름 쓸만해졌다만, 그 사진은 영 아니죠.'
 "그래요?하긴,각도도 엉망인데다 배경도 못살리긴 했죠."
 '그뿐만이 아니라 인물도 별로...아 물론 이건 별개의 문제입니다.하여간 그녀석이 다른 좋은 작품들도 많은데 꼭 그 사진만 갤러리에 걸어주기를 고집하더라고요.아무튼,그녀석 연락처 알려드려요? 여자에는 통 관심이 없는 녀석인데..오히려 그 방면에서는 제가 더-"
 이쯤 되니 한나라는 여자는 자지러질 듯 웃고 있었고,검은 머리의 여자역시 입가에 웃음기를 듬뿍 머금고 있었다.
 "됐어요.연락처는 문자,아니 그냥 지금 불러주세요.그리고 저 관장님 조카뻘이니까 더 이상의 작업은 사절이에요."
 '네???원혜 씨 그렇게 어렸어요?전혀 20대 중반으로는 안보였느-'
 "번호요."
 이젠 아예 배까지 접어 끅끅대며 웃는 한나를 노려보며 검은머리의 여자가 관장의 말을 끊었고,그 길로 신경질적으로 받아적은 연락처를 움켜잡고 갤러리에서 나올 수 있었다.
 .
 .
 .
오랜시간 동안 힘들여 얻은 연락처이기 때문인지 여자의 마음은 더욱 설레여왔다.
이젠 그녀의 붉은 두 뺨이 세찬 겨울바람 때문인지,그녀의 마음에서 비롯된건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로를 걸어갔고,종이 쪽지를 잡지 않은 다른 손에는 그녀다운 깜찍한 폰트로 문자가 쓰여있는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기다릴께,그 공원에서.'
이미 그들이 약속을 기약했던 추억속의 그 장소는 사라져버린지 오래였지만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또 다른 추억의 장소가 있는 한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올려 문자를 한참동안 들여다 보고는 사진첩을 누른 후 특별히 부탁해서 갤러리에서 찍어온 너무나도 촌스러운 사진 한장을 보면서 다시 미소지었다.
 이제는 허물어져 버린 백회색의 수많은 계단을 지나 하얀 골목길 정 가운데에서 푸른 하늘 아래 사진기를 향해 돌아서고 있는 소녀.
하늘과 대비되는,그래서 더 부각되는 자줏빛 원피스를 펄럭이며 약간은 화가 난 듯,놀라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뒤를 돌다가 사진기에 딱 포착 된 듯한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에 여자의 입가에서 '풋'하고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그리고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돌려 진열장의 큰 유리에 비친 긴머리의 여성이 된 자신을 바라보며, 사진속의 촌스러운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찾아내고는 이번에는 눈을 곱게 접어 웃어보였다.
오늘 ... 그를 만난다.이젠 밤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잠을 설칠 필요도,가끔 그일까 가던길도 멈추고 뒤돌아서 모르는 남자에게 눈길 주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그래....그 때 그녀는 그렇게 믿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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