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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walk님의 글에 대한 반론제기 및 답변
게시물ID : sisa_4129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11
조회수 : 29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7/09 20:40:54

http://todayhumor.com/?sisa_412927

우선 변변찮은 글에 송구스럽게 독후감 써주신 거, 관심 있게 읽어주셨단 점에 감사드립니다. 몇몇 부분에 대해 반론제기 및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근대성의 완전한 폐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는 하나, 사실 이는 중앙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비본래적인 것으로 취급 받아온 주변부의 반란일 뿐,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가 드러나는 곳곳이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 다시 말해, 우리는 근대성을 완전히 폐기할 수 없으며 근대성 위에 큰 그림을 덮어야 하는 것이다. 근대의 계몽이 실질적으로 폭력을 생산하였지만, 폭력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적'이라는 비판은 사실 그것이 '낡았다'라는 기의를 포함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계몽의 한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계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 그러나 이것이 '낡았다'라는 수사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좌-우익의 개념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비록 어원상 18세기에 파생한 상대성 개념이기는 하나 그것은 본질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 체제 외적, 내적 비판은 물론 그것의 개혁, 개량, 변혁 내지는 유지와 보수, 강화에 관련한 모든 담론을 포괄하는 것이 좌-우익 개념이다. 이것에 대해 '낡았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굉장히 무지의 소치 내지는 오만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나는 좌-우익의 개념에 대해 그것이 '근대적'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폐기해야 한다는 다분히 감성적인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2. 노동중심성?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노동중심성을 폐기하자는 어떤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노동 중심은 여전히 강력한 테제이며, 동시에 강력한 정치적 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급 연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노동중심을 벗어날 수는 없으며, 다만 우리는 이를 '수정'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예컨대, 최근 틈새담론으로 떠오르는 녹색 혹은 동성애 등등의 가치들을 노동이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지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이상, 그 안에 내재된 계급적 분열은 언제나, 항상 유물론적 진실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자본주의를 개혁 내지 변혁하고자 할 때에는 이러한 계급에 토대를 둘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노동중심은 언제나 강력한 테제이며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중심을 포기하자는 주장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 당신이 자본주의를 포기한다면 나 역시 노동중심을 포기하겠다.

3. 개량과 변혁 사이

개량은 제한적이다. 물론 단기적 시각으로는 나는 개량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 - 실질적으로 바뀌는 것이 없다면, 바뀌는 것 없이 공허하게 외치는 구호와 팔뚝질 뿐이라면 누가 진보정치를 이야기하고 선호하며 지지하겠는가? 이것은 본질적으로 정치의 문제이며, 이러한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립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 1번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좌-우익의 대립을 비웃는 모든 탈정치는 바로 여기에서 파산을 맞이한다. 여기에서 명백한 대립점이 생겨나고, 이로부터 우리는 구분점을 찾을 수 있다. 개량인가? 개량만을 지지하는가? 그것이 대안인가? 나는 '좌파적 정치'라고 수사되는 그 모든 것이 만약 이러한 단순한 개량주의적 관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단호히 '좌파적'이라는 수사를 폐기할 것이다.

4. 신자유주의의 문제

단지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악랄한 본질을 단순화해서 보여준 첨병 역할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외형적 껍질이 아니라 그것이 본질적적 측면에서 내포하고 있는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다. 진보정치, 나아가 좌파적 정치가 앞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눈여겨 보고 분석하며 비판해야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문제에만 국한해서는 안된다. "한국에는 신자유주의가 없다"라면, 대체 그 어디에 신자유주의가 있는가? 실제로 자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한 것은 어떤 시스템인가? 계급이 존재하고 적대가 존재하는 이상 신자유주의는 그 적나라한 민낯에 뿅망치를 맞을 수 밖에 없다.

5. "진보"의 실종

단순히 사회가 나아진다고 하여 그것에 대해 '진보'라는 수사를 붙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원칙 없는 진보이며, 강령 없는 발전이다. 떄문에 '진보'라는 수사를 붙이기 위해서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이 땅에 '진보적 대의'라는 것이 살아 있었더라면,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바로 '진보'가 실종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는 진보적 대의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하고 비판하며 실천해야 할 좌파들이 스스로의 직무를 유기한 까닭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진보정치"라는 것의 진중함이 사라졌다는 것 - 그리고 단순한 권력과 정치공학의 문제로 바뀌어 버렸다는 점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단순히 대립을 '소비'하는 것이 '진보정치'라고 한다면 난 그런 진보정치는 과감히 포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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