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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덩어리, 최
게시물ID : panic_532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9
조회수 : 15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7/21 09:19:51
 
 
 < 덩어리, 최 >
 
 
 
 
 최는 덩어리다.
 또한 대한민국의 남성이며, 세 자녀를 둔 가장이다.

 '덩어리, 최'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박동우라는 17세 소년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야, 덩어리! 물 좀 떠와라. 형님 목이 탄다. 시원한 물로 떠와!"
 "덩어리?"
 "살덩어리. 피둥피둥한게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지 않냐?"
 "하하하하! 그래도 그건 좀 심했다. 덩어리라니. 좀 짧긴해도 팔다리가 달렸잖아."
 
 친구들의 반응에 기세등등해진 박동우는 최에게 다가갔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최의 얼굴이 금세 공포로 물들었다.
 박동우는 포식자다. 그리고 최는, 이를테면 초식동물이다.
 박동우는 최 같은 부류의 아이들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귀신처럼 맡을 줄 알았다.
 
 "한번 굴려볼까?"
 "하, 하지마아..."
 
 17세의 최는 뒷걸음질치며 애원했다. 
 그러나 박동우의 패거리는 먹잇감의 약점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야생의 하이에나처럼
 그를 둘러싸고 통통하게 살집이 오른 옆구리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집보다 두배는 되는 최의 멱살을 끌고 학교 뒷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그를 넘어뜨렸다. 
기우뚱, 몸이 기울어지자 발목이 힘없이 꺾여졌다.
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흙먼지를 일으키고, 
큼직한 돌에 걸려서 잠시 주춤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계속 굴러갔다.
신기할 정도로 잘 굴러내려갔다.
그의 데굴데굴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철책을 넘어서기 직전까지 돌진, 또 돌진 했다.
 
 혹자는 묘사한다,
 그때의 최는 마치 볼링핀을 쓰러뜨리는 볼링공 같았다고.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주민이 외쳤다.
 
 "너희들 뭐하는 거니?"
 
 박동우는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심심해서 공 놀이 좀 했어요!"
 
 박동우한테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매력. 어떤 짓을 해도 미움받지 않고 호감을 얻는 어떠한 힘이, 그에게는 있었다.
 질문을 했던 주민도, 창문으로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도 박동우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하!!"
 "원, 녀석, 짓궂기는!"
 
 하하하. 하하하!
 
최는 철책에 걸린 채로 죽은 듯 늘어져 있었다.
부러진 발목을 부여잡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점차 웃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간 건가?

최는 고개를 들었다. 입속은 흙과 풀로 가득 차있었다.
그가 침을 퉤 뱉어내자 누군가 "살아있네?"하고 말했다. 박동우였다.
그는 아래로 내려와서 손수 최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조심 좀 하지. 심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장난... 장난이었던 거 알지?"
 
 그는 퉁퉁 부운 최의 눈꺼풀을 보면서 해맑게 웃었다.
 
 "그나저나 아까는 대단했어. 이젠 너를 덩어리라 불러야겠다. 덩어리, 최. 좋지? 미국식 이름 같고 말야."
 
 그때부터 최는 '덩어리, 최'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박동우는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그의 소문은 학교에 남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느니,
돈많은 유부녀를 건드려서 해외도피를 했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그의 빈자리를 메웠다.

박동우는 사라졌지만 최는 여전히 '덩어리'로 불렸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기로 작정한 것처럼.
누군가 그를 '어이, 덩어리!'하고 부를때면 박동우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솟구쳤다.

졸업을 하면 잊혀지겠지. 군대에 가면 잊혀지겠지. 사회에 나가면....잊혀지겠지. 
끝없는 자기 암시 끝에 최는 박동우의 이름 석자를 머리에서 지우는데 성공했다.
아니, 성공할 뻔했다.

그는 어느날 신문을 보았다.
해맑게 웃고 있는 박동우의 얼굴이 신문 일면에 인쇄돼 있었다.
 
 [볼링과 여심을 한번에 사로잡은 떠오르는 샛별, 박동우 선수를 만나다!]
 
 그때부터 최의 기묘한 폭식이 시작되었다.
 
산해진미를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고,
구토가 나올 정도로 음식을 쑤셔넣어도 공복감이 느껴졌다.
 
체중계의 바늘이 120kg을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도 불완전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로는 데굴데굴 구를 수 없어.
좀 더 동그랗게,
좀 더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살을 찌워야해!
 
 
"아빠! 이거봐요. 우리가 만들었어요."
 
 이제 일곱살이 된 막내 딸이 수줍게 접시를 내밀었다.
케찹으로 하트를 그린 오므라이스였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첫째와 둘째가 도와준 모양이었다.
 
 "엄마가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어때요, 아빠? 엄마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바보야! 엄마는 저기 멀리 여행을 갔다니까. 언니가 말했지."
 
 첫째 아이가 막내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최의 아내는 반년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동생들은 몰라도 첫째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니야! 엄마는 저기에 있어. 아빠 뱃속에. 그렇죠, 아빠?"
 "그만하래두? 엄마가 아기도 아니고 어떻게 뱃속엘 들어가? 그리고 아빠는 남자야. 아기를 가질 수 없어. 그렇죠, 아빠?"
 "그치만 나, 아빠가 엄마하고 얘기하는 걸 봤단 말이야. 그렇죠, 아빠?"
 "엄마는 여기에 없는데 어떻게 얘기를 해? 그렇죠, 아빠?"
 "아빠 뱃속에!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잡아 먹어버린 거야. 그렇죠, 아빠?"
 
 갑자기 막내가 달려들었다.
최의 배에 엄마가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려는 듯이.

 최의 비대한 뱃살에 달려든 막내의 손이 접힌 부분 안으로 쑥 빨려들어갔다.
흘러넘칠 듯한 최의 배가 막내의 팔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가 비명을 질렀다.
아빠! 아빠! 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최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배는 스스로 입을 가지고 혀를 가진 것처럼 막내의 몸을 점점 집어 삼켰다.

끝내, 막내의 바둥거리는 두 발만이 남게 되자, 최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포만감이 주는 행복이었다.
그는 꺼억! 트림을 하며 딸의 두 발을 마저 뱃속으로 집어 넣었다.
 
 "아빠!!!"
 "미안하구나, 얘들아. 그렇지만 아빠는 좀 더 살이 찌지 않으면 안돼요."
 
 기묘한 폭식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아내였고,
두번째로는 이웃의 참견이 심한 팔순 노인이었다.
 
 혐오스러웠지만 먹어치운 사람의 무게만큼 몸이 비대해짐을 느끼고 나자,
 그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사람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첫 타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고, 사랑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세 딸을 모두 먹어치운 최의 배는 그야말로 둥글둥글, 흘러내리기 직전의 아이스크림 같았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에는 탈 수 없었으므로 계단을 이용했다.
 무려 네차례나 벽 사이에 끼이고 나서야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성공했다. 그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먹어치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경찰들이었다.

 경찰들은 그를 신속하게 체포했다.
사실, 최의 다리는 이미 뱃살에 파묻혀서 사라지다시피 한 상태였기 때문에 도주할 수도 없었으니까.
 
경찰은 최를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대에 묶었다.
옷을 벗기고 나자 최의 배가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명치 부근에는 그의 아내의 얼굴이 있었고,
그 바로 밑에는 세 딸들이 울상을 지은채 의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왼쪽 갈비뼈에는 이웃집 노인이, 오른쪽 갈비뼈에는 그의 상사가...
 
족히 열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의 배에 새겨져 있었다.
아니, 부조물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배가 채 소화하지 못한 얼굴들이 제각각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분리수술이 가능할까요, 선생님?"
 "이건...불가능하겠는데요. 살다살다 이런 끔찍한 형상은 처음 보겠습니다."
 
 의사가 자신의 가운을 벗어서 최의 몸을 덮었다.
 경찰은 최에게 물었다.
 
 "사람들을 왜 죽였습니까?"
 "나는 아무도 죽인적 없습니다."
 "그럼 아내분은요? 따님들은 어떻구요. 그것도 부정하실 겁니까?"
 "나는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충동을 조절하는데 문제가 있을 뿐...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최의 거짓말을 밝히기 위해 거짓말탐지기가 동원되었다.
그는 동그랗게 누운 채로 질문을 받았고, 진실되게 대답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저 남자의 발언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해. 저 남자는 카니발리즘에 빠진 잔학한 살인범일세. 인육을 즐긴다고. 그러면서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이어왔지. 거짓말에 이골이 난 작자란 말일세. 거짓말을 잡아내, 잡아내서 목을 매달란 말이야! J사고 K사고 진실을 밝히라고 얼마나 쪼아대는지 알고 있나? 이건 전국, 아니 전세계가 주목할 일이야! 어, 어어? 저게 뭐지? 일어나려는 것 같은데?!”
 
 기기긱.

 최가 누워있던 철제 침대가 소리를 냈다. 경찰이 권총을 뽑아 들면서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미 최의 거대한 몸이 그를 짓누르려고 다가오고 있었다.
 
 타앙!
 
경찰의 손끝에서 불꽃이 발사되었다.
총알은 최의 두터운 살가죽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혈흔은 비치지 않았다. 총알마저 완전히 먹어치운 거였다.

경찰들은 겁에 질린 눈으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최의 그림자를 올려다 보았다.
마치, 최가 박동우의 손에 이끌려 뒷산으로 끌려가던 날처럼 말이다.
사람들을 먹어치우며 밖으로 나온 최는 어디론가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볼링 연습을 하고 있던 한 선수가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몸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이만 연습을 끝낼까, 그는 땀을 닦으면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무언가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뒤를 따라왔지만,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겠거니 치부하고 말았다.
 
그는 차키를 꺼내들었다.
가방을 고쳐들고 차로 걸어가려는 찰나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마치 거대한 공이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대한 몸집은 둘째치고,
저렇게까지 동그란 사람은 처음본다.

'거대한 공 같아'

공이 박동우를 향해 데굴데굴 굴러왔다. 아니, 걸어왔다.
 
 "네가 볼링선수가 됐다고 했을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박동우는 걸음을 멈췄다. 아아. 하는 탄성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로구나, 최? 덩어리, 최. 너는 여전히 잘 굴러다니네.
 
 "옛날 일을 꺼내려는 거야? 그때는 미안해. 너무 어렸고, 너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 줄 알았어. 왜 따라오는 거야?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
 
"아주 짜릿했어. 볼링과 박동우. 박동우와 나...떨어질 수 없는 것들이잖아?"
 
"이봐. 왜 이래? 나는 다 잊었다니까! 귀찮게 따라붙지 말고 꺼져! 경비를 호출하기 전에! 별 거지같은 돼지새끼가 찾아와선 행패람."
 
 최의 몸이 박동우의 차를 막아섰다.
 차의 보닛이 우지끈 소리를 내더니 흉측하게 찌그러졌다.
 
 압사당한다!
 
 박동우는 얼른 차에서 뛰어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네 말대로 굴러다니게 됐어. 이젠 완벽해진 것 같아. 다 네 덕분이야."
 
 박동우는 달리고 달려서 볼링장까지 뛰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문을 쾅 닫았지만 문마저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렸다.
구겨진 문 너머로 최의 거대한 몸이 천천히 굴러 들어왔다.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 무언가가 보였다. 절대 들키지 않을 장소였다.
박동우는 눈을 빛내며 볼링핀이 있는 곳으로 기어들어갔다.
작동이 꺼져 있으니까 괜찮겠지.
 
그는 다음 순간 아차 싶었다.
 좁은 곳으로 기어 들어가다보니 몸이 끼어버렸다.
최에게서 무사히 살아남는다고 해도 구조대원이 와서 구출해줄때까지 속절없이 볼링핀처럼 끼어 있어야될 운명이었다.
 
밖이 조용하다.

굴러다는 소리는 물론, 그 어떤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박동우는 꾸물꾸물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주머니 속에는 핸드폰이 들어 있었고,
그는 지금 경찰이든 구조대든 호출해야될 상황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주머니에 아슬아슬하게 닿은 찰나였다.
 
 "자, 이제 굴러갈 거야. 얼마나 멋지게 성공할지 봐줘. '한번 굴려볼까?' 너, 굴리는 거 좋아했잖아."
 
 거대한 볼링공이 자세를 잡고 있었다. 박동우에게 돌진하기 위해서.
 최라는 볼링공이 박동우라는 볼링핀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그, 그만둬!!! 무슨 짓을 할 작정이야!"
 
 저 덩치에, 저 무게에 눌리면 압사 당할게 뻔했다.
더구나 도망칠 공간도 없었다.
온갖 장기들이 모두 터져나간 꼴로 끔찍하게 죽고 말거다.
 
데굴데굴...
 
 ".....!!!"
 
 데굴데굴....
 
 "으으으으아!!!!"
 
 박동우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 하지마아....!!"
 
 언젠가 최가 애원했던 말이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쳐댔다.
 
 "미안해! 정말!! 웃자고 했던 거야!!"
 
 데굴데굴.....타앙!
 
 "!!!!!!"
 
 눈을 떴다.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물컹한 것이 코끝에 느껴졌다.
이마에, 입술에, 물컹하고 축축한 게 닿아 있었다.
 
무슨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피다.
웬 피? 그런데 왜 저 새끼는 조용한거지?
 아무리 기다려도 최는 반응이 없었다.

하기야, 저 커다란 몸으로 이 구멍에 들어올 수 있겠어? 저놈도 끼어버린 모양이군.
 
 "이봐!!"
 
 그는 이만 포기하라며 이죽거릴 생각이었다.
 그의 코에 닿아있던 물컹거리는 것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이죽거리고 말 거였다.
 
 "아빠! 여긴 너무 좁아요! 언니가 자꾸 발을 밟는단 말예요!"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는 코에 닿은 물컹거리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입이다. 입술이야.
 이건 최의 배인데, 어째서 여자애의 입술이 붙어있는 거지?
 
 "아녜요, 아빠! 발을 밟는건 쟤란 말예요!"
 
 그의 볼에 닿아있던 것이 움직이면서 또 소리를 내었다.
 하나가 아니다. 배에 붙어있는 것들은, 적어도 둘 이상이었다.  
 그 순간 그의 이마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조용히 안하니? 아빠 지금 중요한 얘기중이시잖아!"
 
 셋.
 
 "배가 고픈데, 뭐 먹을거 없을까?"
 
 넷,
 이번에는 노인의 목소리다.
 
 "제길. 이번 사건만 해결하면 승진이 보장돼 있는데, 어쩌다가!"
 
 다섯,
 젊은 남자의 목소리.
 
 "그러고보니 배가 고프네요."
 
 여섯,
 사투리 억양이 남아있는 여자의 목소리.
 
 "아, 정말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군! 뭐라도 좋으니 뜯어먹어야겠어. 응? 이건 뭐지?"
 
 일곱,
 사춘기 소년의 목소리.
 
 "가까운데서 무슨 냄새가 나는데? 킁킁."
 
 여덟,
 낼름대는 혀의 감촉.
 
 "으으아아아!!!!!!!!"
 
 "거기있었구나. 엄마, 나 배고파요. 한입 먹어도 돼요?"
 
 "아아악!!!! 야, 이 덩어리 새끼야!! 좀 움직여!! 비키란 말이야!!"
 
 아홉,
 두려움에 찬 남자의 비명소리.
 
 
 
 
 
 
 
 
  
 
 "끔찍하군."
 
 김 형사가 코를 쥐며 말했다.
그는 볼링장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범인이 이렇게라도 붙잡혀서 다행인데...참, 별일이 다 있네요."
 
 범인, 최는 붙잡힌 건 아니었다.
경찰이 들이닥치기도 한참 전에 목이 부러져서 즉사했기 때문에 사체를 발견한 게 다였다.
비대한 최의 몸은 단단하게 끼어있었다.
여러사람이 달려들어 그를 끌어내자,
더 끔찍한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가 볼링핀도 아니고 저길 왜 기어들어간거야?" 
 "박동우 선수 맞죠? 여자들한테 인기있는."
 "얼굴을 죄다 물어뜯겼구만, 어떻게 알아본거야?"
 "유니폼이요. 제가 팬이었거든요."
 "그래? 이렇게 돼서 유감이겠네."
 
 후배 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몰라요. 이 남자, 소문이 꽤 안좋았거든요. 그런데 뭐에 물어뜯긴 걸까요? 범인 입 주변은 아주 깨끗한데."
 
 김 형사가 최의 거대하게 솟은 배를 바라보았다.
살로 이루어진 동산이었다. 그는 슬쩍 옷을 들춰보았다.
최를 심문하던 경찰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주 황당한 일이 최의 몸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텐데.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배였다.
아주 커다랗고 동그랗다는 걸 제외하면.
 
 "과거에 자기가 놀린 입에 물어뜯긴 거겠지."
 "네?"
 "그냥 혼잣말이네. 가자고."
 
 최의 몸을 실을 화물용 트럭이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김 형사는 트럭의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안에 있는, 
 동그란 공처럼 누워있는 최의 마지막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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