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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의 전통 (깊은 빡침 주의)
게시물ID : sisa_4189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intaro
추천 : 0
조회수 : 39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7/27 13:06:46
임진왜란 관련 글보다 빡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재차 대마도주를 이용하여 교섭을 청하고 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조선을 침략할 뜻을 표시했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오랜 논의 끝에 1590년(선조 23년)에 교섭에 대답과 더불어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의 저의를 살피려고 황윤길을 통신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허성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하여 일본에 파견했다.

1591년 음력 3월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답서에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문자가 있어 그 침략의 의도가 분명하였으나 사신의 보고는 일치하지 않았다. 당시 서인을 대표하였던 정사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하고 동인을 대표하였던 김성일은 이에 반대하여 '그러한 정상이 없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민심을 동요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조신 간에 의견이 분분하였고 동인인 허성마저 황윤길의 명견를 옹호하였으나 당시 정권을 장악한 세력으로서 백성이 동요하면 자신이 향유하던 권력에 초래될 변화를 두려워했던 동인이 주도권을 주도하던 조선 조정은 김성일의 의견을 좇았다."

(출처: http://ko.m.wikipedia.org/wiki/임진왜란)


결론: 나라보다 권력이 우선인 건 조선시대부터의 전통이었음

김성일 인물평: 후에 깊은 뉘우침으로 의병들을 모아 최대한 땜빵질함. 여러가지 관련 자료를 보면 성격이 담대하고 강직한 능력있는 사람으로 보임. 하지만 백성 동요건 정치 싸움이 이유였건 최악의 크리티컬 미스테이크를 저지른 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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