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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성재기, 그리고 남성연대에 관한 몇 가지 비판
게시물ID : sisa_4208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12
조회수 : 58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8/01 07:00:13

Written by 무명논객


이 글은 본인이 일전에 썼던 글(http://blog.daum.net/liveinthought/46)에 대한 첨언 형식의 글이다. 성재기와 남성연대와 관련하여 그들이 지닌 언어와 그들의 태도 및 입장, 담론(?)의 수준에서 그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글이다. 몇 가지 주요한 쟁점과 사안을 중심으로 다루어보도록 하자.


1. "남성 역차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과대망상증에 가깝다고 밖에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성재기, 그리고 남성연대의 주장이 성립하고자 한다면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ㄱ. 한국 사회에서의 여권 신장이 매우 지나쳐, 남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ㄴ. 여권의 신장은 남성의 권리를 탈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ㄷ.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구조적 약자이다.

 ㄹ.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해진 남성'을 도외시한 채 여성의 권리만을 신장하려 한다.


실제로 그러한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주장들이 사실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째, 한국사회는 여전히 강력한 가부장제가 자리 잡고 있다. - 바꿔 말해, 남성에게 지워진 의무는 여전히 상당하다. 이러한 의무가 남성이 '권리를 잃는다'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의무들이 있음으로 인해 남성이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남성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권력이라는 것은 매우 공공연한 비밀이다." 본래 귀족들이 입는 옷이 불편한 법이다.


둘 째, 과연 한국사회는 '남성인권'이 '탄압'받을만큼 여권의 신장이 '충분히' 이루어졌는가? 경험적으로, 그리고 객관적 수치로써 확인되는 바로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 가깝다. - UN의 보고서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http://unstats.un.org/unsd/demographic/products/Worldswomen/WW2010pub.htm)


보고서에서 UN은 한국사회에서 남녀 불평등 - 특히 임금과 고용 차원에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듯, '남성 역차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으로 이러한 지배 구조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 당장 '남성 역차별'을 뒷받침해주는 논문 자료나 학술적 데이터 근거가 있는지 살펴보라.


셋 째, 여권의 신장은 결코 남성의 권리를 위협하며 탄생한 것이 아니다. - 종종 성재기의 죽음을 에밀리 데이비슨에 비유하는 이들이 있는데, 에밀리 데이비슨의 숭고한 죽음으로써 쟁취한 "여성 참정권"은 남성의 권리를 위협하며 탄생한 것이었나? - 지배 구조가 뒤바뀌지 않은 이상,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남성 역차별'이 성립하고자 한다면 여권의 신장이 남성의 권리를 뺴았는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하지만, 아주 단순한 추론으로부터도 이들의 조악한 주장은 붕괴되고 만다.


넷 째,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사이에서도 계급은 존재한다. 남성 사이에서도 이러한 유물론적 진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한국 남성은 '역차별'을 당할만큼 구조적으로 약자인가? - 단언컨대, 이는 사회경제적 문제로부터 기원하는 계급적 문제인 것이지 남-녀 대결구도 간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에게 지워지는 의무가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역차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회경제적 문제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하여, 남성연대가 주장하는 '역차별'의 근본은 무엇인가? - 위의 논증으로부터, 소위 '역차별'이라 주장되는 것들은 사실 남-녀 간의 권리적 쟁점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부터 기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연대, 그리고 성재기가 주장하듯,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라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환상이다.


2. "여성부는 우리의 적이다." - 페미니즘은 우리의 적?


이들은 소위 "꼴페미"를 문제 삼으며 소위 '된장녀'라 불리우는 이들의 의식의 천박함을 문제삼고 있지만 - 근본적으로 이는 이념상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은 명백히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여성부는 "꼴통" 페미니스트들이 장악한 집단이며, 남-녀 간의 불평등과 소위 '역차별'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한 극악무도한 집단이다. 과연 그러한가?


성재기가 사실 크게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청법 - 그리고 군 가산점 등의 문제에 있어서 여성부의 '헛발질'에 태클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아청법은 남성의 성을 억압하는 것이며 군가산점제를 폐지한 것은 남성의 권리를 없애고 자신들의 권리만을 높이려는 사악한 페미니스트들의 농간이다.


위에 제시한 두 가지 의제에 관해 여기서 깊게 다루진 않는다. 아청법에 대한 비판은 이미 예로부터 오래 진행되어 왔고, 나 역시 찬성하지 않는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성재기가 크게 호응을 얻었던 두 지점 - 아청법과 군 가산점 문제 등은 사실 '남성 인권'과는 크게 동떨어진 지점이라는 것이다.


성재기가 지적하듯 - 여성부의 큰 헛발질 몇 가지들이 기원하는 것이 과연 그들이 '페미니스트'라서 그런가? 이 쯤에서 남성연대의 창립선언문을 한번 살펴보자.


"가족

세계 꼴찌의 출산율, 최고의 이혼율.

미래의 희망은 세계 꼴찌로 희박해지고 가족은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습니다.

한국남성 가정 경제생활비 부담률 95.6% 세계 1위.

가족에 대한 남성들의 의무와 책임의 부담은 더욱 무겁고 다양해졌지만, 가정은 오히려 표류하며 침몰해가고 있습니다.

원인은 페미니즘.

남자는 영원한 가해자요 여자는 영원한 피해자라는 등식에서 출발, 공적영역은 돈과 명예를 쟁취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요, 사적영역인 가정은 보잘 것 없고 무능력한 여성들의 억압과 착취의 공간이라는 페미니즘의 이념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주체성을 상실한 노예로 만들었으며 남녀의 인간관계를 편협한 타산으로 갈등을 증폭시켰고 사랑에 대한 믿음을 상실케 함으로써 가정의 근본을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세계 꼴찌의 저 출산이 복지와 환경의 문제보다 분별없는 페미니즘이 이 나라 여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이 더 이상 행복이 아니라 착취요 노동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현모양처라는 말이 최상의 미덕이 아니라 무능함을 상징하는 말처럼 되어 버린 현실에서 세계 꼴찌의 저 출산과 최악의 이혼율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디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페미니즘이 여성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극소수 페미니스트들의 권력을 위해 대다수 여성들로부터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 사랑을 강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이 페미니즘을 선택한 순간, 당신은 사랑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사랑이라 믿고 싶습니다."


유럽 어느 극우정당의 창립선언문이 아니라, 한국에 존재하는 <남성연대>의 창립선언문이다. 이들은 전통적 가족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이제까지 그들이 주장해온 "남성 역차별"의 근본을 페미니즘으로 지목하고 있다. -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는 둘 째로 놓더라도, '극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은 도무지 논증이 되지 않는다. - 앞서서 질문한 내용이 여기서도 유효할 것이다. 과연 한국 사회는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페미니스트들이 득세하며 "여성이 우월한" 사회인가?


나아가 아청법, 그리고 군가산점제 등 여성부가 '헛발질을 했다'라고 여겨지는(나는 그것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안들은 과연 페미니즘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인가? - 망상증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 사회가 '꼴통' 페미니스트들의 소굴이라고 생각하는 그 천박한 사고로부터 망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성재기를 지지한다는 이들은 종종 "성재기는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야기했다"라고 강변하지만,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페미니즘으로 지목한 무지함과 더불어 그가 과연 '진정한 남녀평등'의 길로써 페미니즘의 올바른 모습을 재현했는지는 미지수다. - 그는 그저 자신의 망상에 기대어 여성들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고 다녔으며, 그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페미니즘을 제시하기는 커녕 전통적 가족주의로의 회귀와 남성우월주의로의 반동적 운동을 제시한 사람이다. 여성은 조신해야 하며, 현명한 아내로써 남편에게 봉사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반동적 사고관이 그의 창립선언문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 좀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가부장제의 부분적 붕괴로부터 발현되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역차별'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여성부의 헛발질들은 사실 관료집단으로써 실적을 내기 위한 행동일 뿐 그들의 행동이 근원적으로 페미니즘으로부터 비롯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 노동부는 맑스주의자들의 소굴인가?


3. 천박한 욕망, '인권운동가'?


사실 남성연대와 성재기의 언어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 자체의 무지함으로부터 비롯한다기보다는 그들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실질적으로 남성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여성의 권리 신장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제반 토대의 붕괴로부터 발생한다. - 당장 사회학에서 관심 있는 주제는 "빈곤의 여성화"이지, "여성우월주의의 도래"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성재기가 주장하듯,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열변을 토할 때 학계는 빈곤의 여성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제적 악화 및 붕괴 상황은 비단 여성의 빈곤화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성이 훨씬 빈곤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가사 노동과 육아를 책임지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로 인하여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집 밖에서 일할 동기와 능력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정규직보다는 시간제 일자리에 근무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따라서 소득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Anthony Giddens, 『현대사회학』, p.452, 제 12장, "빈곤, 사회적 배제, 복지" )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이러한 여성들이 밖에 나와 일을 하게 된 것이 남성의 권리를 "침해"하였는가? 제 정신이 박힌 인권 운동가라면 이 질문에 "NO"라고 할 것이다. 인권은 보편적 언어이기 때문에, 여성의 인권 신장이 남성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성재기의 언어는 여전히 여성들이 차별받고 소외되어 있다는 객관적 도표와 사실들을 '무시'한 채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안들에 대해 '불평등하다'며 투덜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남성들이 자신들에게 지워진 감당할 수 없는 부담과 책임의 원인을 과거보다 지위가 향상된(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여성들에게 '역차별'이라며 책임을 돌리는,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을 분노로 대체하는 저열한 유사 파시즘에 가깝다. - 기존의 남성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들이 과연 그가 주장한대로 그러한 몇몇 사안들에 의해 총체적으로 붕괴되었는가? 


성재기에게 '인권 운동가'의 타이틀은 사실 너무 과분한 것이다. 인권운동가라고 하기엔 너무도 혐오스러운 언어를 사용했고, 또한 인권에 대해 매우 무지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남성 인권에 관련한 객관적 진술보다는 '남성인권을 침해한다고' 여겨지는 허구적 환상을 비난함으로써 남성 인권이 보장되는 것인 양 행동했다. 속된 말로 '찌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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