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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새집증후군(bird's nest syndrome)
게시물ID : panic_576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3
조회수 : 292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9/16 23:41:15
 
 < 새집증후군 >
 (bird's nest syndrome)
 
 
 
 
 요란한 알람소리.
 쥐죽은 듯 고요한 집안.
 지끈거리는 두통.
 코끝에서 맡아지는 기묘한 악취까지.
 
 나는 가만히 누운 채로 눈을 깜빡거렸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천장의 무늬가 일그러지며 여러가지 형상을 만들어갔다.
 나의 머리는 최면에 빠지듯 무늬를 응시하며 술에 의해 잘려나갔던 기억을 복원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다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건 아닐텐데.
 
 그때 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였다.
 
 소리?
 
 누구지?
 
 그제야 내가 혼자 살고 있었던 사실이 생각났다.
 고향집을 떠나온지 2년차에 접어들었으니, 눈을 뜨자마자 타인의 기척이 느껴진다면 그거야말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조금전까지 숨막히게 만들었던 집안의 고요함이 절실하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도둑인가? 
 겁없이 문을 따고 들어온 집주인?
 고향에서 올라온 어머니?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며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차하면 신고할 마음으로 112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삐걱, 문은 눈치도 없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다시 방안으로 도망쳤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식은땀이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하나, 둘, 셋...열, 스물이 지나도록 밖에선 별다른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폭풍 앞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는 커튼 외에는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되지 않았다. 바람 때문에 집안의 물건들이 날리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밤새 활짝 열어놓았던 탓에 거실 공기는 싸늘했다. 나는 주춤거리며 방밖으로 완전히 걸어나왔다. 거실을 점령하고 작은 돌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바람 때문에 추위가 느껴졌다. 한겨울은 아니더라도, 밤이면 기온이 낮아지는 때였다. 그런데 온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잤다니, 추위는 둘째치고 도둑이 들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창문을 닫기 위해 걸어가다가 말고 멈칫했다.
 
 이게 뭐지?
 
 뭔가가 진로를 방해하며 발을 찔러대고 있었다.
 
 쓰레기?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건 나뭇가지였다. 긴 것, 짧은 것, 말라비틀어진 것, 통통한 것 가릴 것 없이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내 집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것들을 보지 못한 게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아직 술이 덜 깨서겠지.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것들을 왜 주워가지고 온 걸까? 한눈에 봐도 한두번 들어서 옮길 양이 아니었다. 캠프파이어를 해도 될 정도의 많은 나뭇가지들과 나뭇잎, 그리고 흙덩어리들이 거실 한 가운데에 탑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말이 나뭇가지지, 거대한 쓰레기 더미였다. 소름끼치는 사실은 인공물이 아닌, 오직 자연물로 이루어져 있었단 거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그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술에 취한 사이에, 어느 짓궂은 친구가 장난을 친 걸지도 모르니까. 몰래카메라처럼 말이다. 그러나 흙과 나무로 만든 더미를 확인하면 할 수록 점점 소름이 돋았다. 단순하게 탑처럼 쌓아올린 게 아니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사람 한두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잠깐. 
 이 모양은 마치...
 
 쾅!!!!
 
 그 순간 창밖에서 굉음이 들렸다.
 
 "무슨 소리지?"
 
 나는 얼른 베란다로 달려나갔다. 베란다의 사정도 그리 좋지 못했다. 어머니가 사오셨던 화분들이 텅 빈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여기 있는 흙까지 가져다가 쓴 모양이었다. 금세 발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밖에선 바람은 더욱 심하게 불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흩날리며 눈과 이마를 찔러왔다.
 굉음을 듣고 나온 사람은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앞 동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이 베란다에 매달려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래에 주차된 차의 지붕이 완전히 찌그러진 게 보였다. 여기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가 떨어진 게 분명했다. 높은 곳에서. 누가 뭘 떨어뜨렸던지, 내던졌던지 했을 거다. 고층 아파트에서 뭘 내던지다니, 누군진 몰라도 미친놈일 거다. 제정신은 아닐 거야. 차가 완파되다시피 한 걸 보라고.
 
 그런데 이상한 점은, 창문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은 있어도 차 주위로 다가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아니,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단 한명도. 경비 아저씨까지도 말이다.
 
 10분이 지나도록 구급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인명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찰차, 렉카라도 출동해야 정상일텐데. 차주인은 어디 갔을까? 작은 일만 벌어져도 슈퍼맨처럼 달려와 참견하던 수다쟁이 아줌마들은 다 어디로 간 거고? 
 
 한참동안 밖을 내다보고 있었지만 발견할 수 있는 거라곤 없었다. 말그대로 개미새끼 한마리 지나다니지 않았으니까.
 
 침묵, 고요...그러나 평화로움은 아니었다.
 명치끝을 불편하게 만드는 고요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파도소리 같은 바람소리만이 아파트 단지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기 시작해 도저히 밖에 서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귓바퀴가 얼어붙어서 아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안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같은 위치, 같은 높이에 있는 난간으로 누군가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앞동에 사는 사람이었다. 앞동에 누가 사는지 한번도 관심 깊게 지켜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다시 난간으로 바짝 다가섰다. 나온 사람은 여자였다. 아이가 있는 집인지, 베란다에 미끄럼틀과 장난감 텐트가 놓여 있었다. 여자는 망설임없이 그것들을 모조리 밖으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떨어진 미끄럼틀이 아래로 쿵!! 소리를 내며 추락했다. 조금전의 굉음 역시 여자의 소행인 듯했다.
 베란다의 물건을 모두 내던진 여자는 집안으로 들어갔고, 매트리스를 낑낑대며 끌고 나왔다. 아슬아슬한 난간 끝에 매트리스를 놓고 그 위에 이불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 모양은 마치, 내 집 거실에 위치한 거대한 흙더미 같았다.
 
 팔을 타고 온몸으로 소름이 옮겨간다.
 내 눈은 앞동 베란다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몇몇 집에서 베란다와 집안을 오가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커튼을 잡아 뜯는 사람도 있었고, 저 여자처럼 이불을 이용하는 집도 있었다. 옷가지와 박스, 찢어진 책... 사용한 재료는 제각각이었지만 모양은 모두 비슷했다. 작은 둔덕. 그 중심에는 사람 한두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게 분명했다.
 
 "...둥지도 아니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둥지, 새들이 알을 부화하기 위해 만드는 그것.
 
 내 집 한복판에 높게 쌓여있는 그것 역시 둥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참. 둥지라니...사람이 알을 낳을리가 없잖아? 멀쩡한 집을 놔두고 새집따위를 지을리가 없지."
 
 그때였다.
 미끄럼틀을 내던졌던 여자의 집에서 남자 한명이 걸어나왔다. 이불로 만든 둥지를 훌쩍 뛰어넘은 그는 난간에 올라섰다.
 거센 바람이 불자 그의 몸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이봐요!!!! 무슨 짓이야?!!"
 
 들릴리 없지만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난간에 선 남자는 양 팔을 쫙 펴고 날개짓을 하듯이 파드득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폴짝, 휙!
 남자가 뛰어내렸다.
 
 "!!!!!"
 
 망설임이라곤 없는 도약이었다. 나는 얼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박처럼 깨진 남자의 머리 주변으로 붉은 얼룩이 점점이 이어져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의 품에는 아이들 셋이 나란히 안겨 있었다. 아이들 역시 표정없는 얼굴로 아빠의 마지막 도약을 지켜보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벗겨진 손톱 아래로 연한 살이 빨갛게 드러나 있었다. 비릿한 피맛에 중독된 것처럼, 나는 방에 앉아서 온종일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모두 초조함 때문이었다. 전화, 인터넷, 텔레비전. 모두 먹통이었다.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하고 이 끔찍한 상황을 전해야된다는 건 알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파트 주차장은 말 그대로 피범벅이었다. 수십,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뛰어내렸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남자들이었다. 삼, 사십대, 또는 그 이상.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들이 난간을 밟고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어렵잖게 찾아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배를 채워줘야할 의무가 있는 가장이었다는 것. 저절로, 먹이를 찾아 둥지를 떠나는 수컷새가 연상됐다. 끔찍한 망상이었지만 그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 되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팔을 파드득 거리다가 뛰어내리고 있었다.
 여전히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집안에 틀어박힌 채 기묘한 둥지를 만들고, 새를 흉내내는 일에 빠져들어 있는 것처럼.
 
 전염볌 같았다.
 아니, 전염병이라고 해도 납득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감염된 걸까. 이 많은 사람들이.
 
 게다가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걸 보면, 단지 밖의 상황도 비슷할 거라 예상된다.
 
 이 끔찍한 정신병에 전 인류가 감염되었다고 하면 더이상의 희망은 없다.
 
 인간은 날 수가 없다. 아무리 새가 된 환상에 빠져있어봤자, 열심히 팔을 파드득 거려봤자. 아래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추락해서 목숨을 잃거나 치명상을 입는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부로 먹을 것이 거의 동이 났다. 혼자사는 사람의 집이었으니 먹을 거라고 해봤자 인스턴트와 간식 따위가 전부였다.
 다행인점은 물은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허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허기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게 있었다.
 
 완성되지 못하고 방치된,
 내 집의 그 빌어먹을 둥지를 마저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건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의무감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도 둥지를 완성시키고 싶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마침내 더이상 물어뜯을 손톱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더이상 집에 처박혀 있을 이유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고 비상계단으로 달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게 무섭다면, 위로 올라가자는 생각에서였다.
 옥상에 가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으니까 무슨 수가 생기겠지. 그래, 집안에 처박혀서 둥지 따위를 만드는 것보다는 낫겠지.
 
 벌컥.
 
 옥상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옥상에도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일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원주택단지, 그 옆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저 멀리, 옹기종기 붙어있는 다세대주택까지. 하지만 도로를 지나는 차는 단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것처럼.
 
 전원주택단지의 지붕에는 거대한 둥지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둥지는 집집마다 지붕 위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둥지의 정체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공포를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역시 밖의 상황도 여기와 비슷한 게 분명하다.
 
 "사, 살려줘!!"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발음도 불명확한 어린 사내아이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옥상에 누군가가 있다. 그것도 둘 이상,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어린아이다.
 
 나는 재빨리 코너를 돌아서 사각지대에 있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거대한 둥지가 있었다. 내 키보다도 높은 둥지는 옥상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져 있었다. 남자아이는 그 안에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부서진 가구와 옷가지가 뒤엉킨 둥지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2미터가 조금 넘는 높이였던 탓에, 어렵잖게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둥지 안에는 놀랍게도,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도 입지 않은 아이들이 엉켜있었다. 빼빼마른 아이들 세명과 피둥피둥 살이 오른 여자애였다. 아이들은 남매인 듯 비슷한 체형에,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덩치가 큰 건 여자애였지만, 그애가 첫째로 보이진 않았다. 나머지 아이들하고 닮은 구석이라곤 없었으니까. 다른집 애를 데려다 놓은 것처럼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표정은 얼마나 포악한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밀지마!! 제발!!"
 
 다시 남자애가 비명을 내질렀다.
 덩치 큰 여자애가 한 짓이었다. 자기 몸의 반밖에 되지 않는 남자애를 둥지 밖으로 떠밀고 있었다. 둥지는 옥상 끝에 지어져있었으니,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었다.
 
 "무슨 짓이야! 그만둬!!"
 
 나도 모르게 둥지 안으로 한쪽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덩치 큰 여자애는 나를 비웃으며 남자애를 점점 둥지 밖으로 밀어냈다. 얼른 손을 뻗어서 남자애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둥지 밖으로 떠밀려난 남자애는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살아남을 확률은 없어 보였다.
 
  "뻐꾸기..."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뻐꾸기.
 
 뱁새의 둥지에 자기 알을 숨겨놓는 뻐꾸기의 새끼는, 알에서 부화하고나서 뱁새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먹이를 받아먹는다. 뱁새는 자기 새끼를 죽인 놈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날라 놈의 살을 피둥피둥 찌우고 말이다. 뻐꾸기가 많은 곳에는 뱁새 둥지에 뻐꾸기 알이 몇개씩 발견될 정도였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둥지에서 내려왔다. 더이상 끼어들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여자애는 표독스럽고 뻔뻔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돌아왔을때엔 이미 일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오직 그 여자애만이 가만히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기쁘게 여자애의 입에 토사물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퍼억!
 
 단단한 둔기가 뒷통수를 내리쳤다. 날카로운 고통이 머리에 느껴졌다. 축축한 액체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비틀대며 뒷걸음질쳤다. 처음보는 남자가 쇠파이프를 들고 서있었다. 파이프의 끝에는 살점과 피가 묻어 있었다.
 
 왜...?
 
 의문이 떠올랐지만 가물거리는 시야 탓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뒷걸음질치던 나는 어느새 옥상 끝에 서있었다. 바로 뒤는 허공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오자 몸이 휘청거렸다. 남자는 쇠파이프를 쥔 채 살기를 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새들의 보편적인 특징. 부모새들은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나르고, 아비새가 떠난 사이에 어미새는 둥지 가까이에서 보초를 선다. 어미새가 먹이를 찾아 떠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아비새가 보초를 선다. 그들이 교대로 보초를 서는 이유는 단순했다. 새끼를 위협하는 침입자를 처리하기 위해서겠지.
 
 "!!"
 
 남자가 팔을 들어 올렸다. 나는 파이프를 피하기 위해서, 바로 뒤가 낭떠러지인 걸 알면서도 뒤로 도망치고 말았다. 떨어지는 순간 생각한다. 난간 위에 걸터 서서 팔을 파드득 거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나도 모르게 파드득 거리고 있는 내 팔의 모양새를.  
 
 이윽고,
 
 쾅!!
 
 굉음과 함께 내가 떨어진 차의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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