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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링’의 공포가 무서운 진짜 이유(스포없음)
게시물ID : movie_175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케
추천 : 2
조회수 : 420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0/04 19:11:39
<컨저링>은 소리 없이 강하다. 목하 조용히 관객을 모으고 있는 중. 추석 시즌에도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더니 마침내 역대 외화공포영화 최고 기록인 <식스 센스>도 넘어섰고, 지금은 주말 관객에서 <스파이>도 넘었다. 올 여름 유일한 공포영화였던 <더 웹툰: 예고살인>의 흥행을 넘어선 지는 오래다. 개봉관을 많이 잡은 것도 아니었고 홍보를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이런 흥행을 하는 것은 십중팔구 순전히 영화의 힘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추석 시즌에 흥행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추석 시즌은 전통적으로 가족영화가 흥행하는 시기이다. 올해의 <관상>이나 <스파이>를 보라. 그런데 이 시즌에 <컨저링>이 흥행하는 ‘공포스런’ 일이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영화 <컨저링> 포스터.

언제부터인지 여름 시즌의 단골 손님이었던 공포영화가 더 이상 극장가에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공포영화를 거의 구경하지 못했다. <장화, 홍련>, <폰> 같은 영화도 벌써 10년 전의 영화가 되었고, 외국영화 <링>이나 <식스센스>, <스크림>, <쏘우> 등도 과거의 영화가 된 지 오래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공포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제가 버젓이 여름에 성행하고, 공포영화 마니아들이 굳건하며, 공포영화 장르를 만드는 데 돈이 크게 드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것일까?

제작사는 공포영화가 흥행이 되지 않으니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관객들은 볼 만한 공포영화가 없다고 한다. 이 이상한 상호협조(?) 때문에 이제 공포영화가 관객 100만 명을 넘기는 것이 뉴스가 된 시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컨저링>이, 170만 관객을 넘어섰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컨저링>은 제대로 한방에 날린 영화이다. 

<컨저링>은 공포가 어디서 어떻게 등장하는지 그 법칙을 정확히 알고 있다. 먼저 공포는 지하나 밀폐된 곳에서 생성된다. 1971년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 해리스빌. 페론 가족은 꿈에 그리던 새 집으로 이사 오는데, 그 집 지하실에 무언가 있다. 지하의 그 밀폐된 공간에서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둘째, 공포는 어둠 속에서 등장한다. 지하는 어둠의 다른 말이고, 어둠은 두려움과 동의어이다. 공포가 등장하는 곳은 밤이나 어두운 곳이다. 셋째, 공포는 외딴 곳에서 등장한다. 페론 가족이 이사 온 집은 외딴 곳이다. 큰 연못이 있고, 오래된 나무가 아름답지만, 그곳은 외딴 곳이고, 외딴 곳이라는 말은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이다. 안락한 공간이 악몽의 공간으로 수직급강하하는 곳. 넷째,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즉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일 때 공포가 발생한다. <컨저링>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화라는 증명보다 더 확실한 공포가 어디 있겠는가! 

   
영화 <컨저링>의 한 장면.

<컨저링>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것처럼 영화는 주술을 그린다. 일종의 오컬트영화(Occult movie)인 셈. 귀신, 악령 등의 횡행. 초반은 동양적인 공포 분위기를 적절히 자아낸다. 감독이 말레이시아 출신의 제임스 완이라는 점을 눈여겨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시아 공포영화의 공통점은 귀신의 존재를 그리는 것. 영화 초반의 분위기는 철저하게 이런 분위기를 유지한다. 어둡고 지하에 있고 외딴 곳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아우라의 공포. 무서운 장면이 없이 무서운 것은 철저하게 이 분위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스토리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 촬영, 조명, 세트, 무엇보다 사운드의 조화가 적절해야 그 효과를 맛볼 수 있는데, <컨저링>은 이 부분에서 성공적이다. 

후반부로 가면 이내 오컬트영화의 공포로 변한다. 이제는 전설적이 된, 이 장르의 걸작들, 즉 <악마의 씨>, <엑소시스트>, <오멘> 같은 분위기의 생성. 악령이 들린 페론 부인이 가족을 해치려 할 때 초자연적인 현상만 연구해온 워렌 부부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엑소시즘을 한다. 특이하게도 로렌 부인은 유령의 존재를 눈으로 직접 보는 영매이다. 그 부부의 능력과 헌신으로 악령과 치열하게 싸운다. 결국 영화는 그 집의 뿌리 깊은 사연을 공개한다. 왜 그 집에 그런 무서운 악령이 깃들어있는지, 사연을 말해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악령의 존재는 오컬트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올 초 개봉했던 <마마>도 비슷한 경우였다.   

   
영화 <컨저링>의 한 장면.

여기서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컨저링>은 무서운 영화임에 분명하다. 초반의 동양적 공포영화의 분위기도 좋고, 후반부의 오컬트영화의 분위기도 관객들을 잡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지금 흥행하는 것일까? 다르게 질문하면 1970년대 흥행했다가 레이건 시대에 거의 사라진 오컬트영화가 지금 다시 등장한 것일까? 그것도 <쏘우> 시리즈라는, 문자 그대로 피 튀기고 살 튀기는 잔혹영화를 감독하고 기획했던 이가 왜 피한방울 나지 않는 오컬트영화를 만든 것일까? 

<악마의 씨>(1968)에서부터 <엑소시스트>(1973), <오멘>(1976) 같은 대표적인 오컬트영화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였다. 1960년대의 다양한 진보 운동이 서서히 무너지고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었던 그 시기. 많은 이들은 신비주의에 빠져들었는데, 이 신비주의적 상황이 적 그리스도나 악마와 연결되어 주술적 오컬트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 상황이 공포적 상황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일상을 파괴하는, 통제할 수 없는 악마의 등장이니까. 오컬트영화는 이 지점을 정확히 담고 있다. 그런데 지금 <컨저링>을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만약 서구와 같다면 우리는 혼란의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보다 근원적인 질문. 우리는 이 공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나는 영화보다 이 사실이 더 무섭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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