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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에 의한 감시 후유증
게시물ID : freeboard_7180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케
추천 : 0
조회수 : 3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04 19:20:43
ㆍ삶을 갉아먹는 ‘감시 후유증’
ㆍ“노크 소리에도 깜짝” 불안장애·우울증
ㆍ“e메일 쓸 때 ‘북한’ 단어 사용 안 해”

인천의 한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는 유동우씨(64)는 베란다 한쪽에 ‘개구멍’을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사람들 눈을 피해 현관문 대신 개구멍을 이용해 집을 드나든다. 집 거실에는 빈 상자와 쓰레기더미가 가득 쌓여있다. 유씨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상자와 쓰레기더미 사이로 몸을 숨긴다. 노동운동수기 <어느 돌멩이의 외침> 저자인 유씨는 유신정권·신군부 시절 노동운동을 하는 내내 사찰과 감시에 시달렸던 감시피해자다. 

그는 1974년 다니던 직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해고된 뒤 재야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이후 10년 이상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던 만큼 남들에게 말 못할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른바 ‘감시 후유증’이다.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하고,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까운 길도 멀리 돌아다닌다. 몇해 전에는 노크 소리에 놀라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발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나와 만나는 사람도 함께 감시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인기피증이 생겨 주변사람들과의 연락도 자연스럽게 끊겼다. 유씨는 “평생을 긴장상태에서, 쫓기는 기분으로 살았다”며 “가족들이 말해주기 전까진 내가 개구멍으로 집에 드나들고, 멀리 교통경찰만 보여도 가까운 길을 수백미터씩 돌아서 간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부터 인권의학연구소에서 국가폭력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집단상담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항우울제와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 

유씨처럼 국가기관에 의한 감시 피해를 겪은 이들은 공황장애불안장애대인기피증, 과다경계, 우울증 등 스토킹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후유증을 겪는다. 국가에 의한 감시를 ‘조직적 스토킹(Organized Stalking)’에 비유한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은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믿었던 국가가 오히려 자신을 감시, 사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겪는 후유증은 일반적인 감시 피해자들보다 훨씬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여전히 그들이 아파트 경비원에게 제 동태를 물으며 감시하고, 전화도 도청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유신정권 때 ‘울릉도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3년 동안 옥고를 치른 뒤 20년 이상 보안관찰 대상으로 살았던 이사영씨(75)도 감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재일동포인 둘째 형과 교류를 했다는 이유로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던 이씨는 교도소 생활보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보안관찰기간이 더 괴로웠다. 이씨는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늘 보고를 하고 전화로 확인을 받는 생활을 하다 보니 항상 누군가가 내 뒤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가능하면 밖에도 안 나가고 사람도 만나지 않은 채로 몇 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2009년 국군기무사령부의 불법사찰 피해자인 최준혁씨(44)는 지금도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e메일을 보낼 때 무의식적으로 ‘자기검열’을 한다. ‘북한’이나 ‘조선학교’ 같은 단어는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고, 꼭 써야 할 땐 다른 단어로 바꿔서 쓴다. 조선학교에 동화책을 보내주는 인터넷 카페 활동을 하다 기무사의 사찰 대상이 됐던 일이 떠올라서다. 당시 공개된 기무사의 사찰 수첩에는 며칠간 최씨의 시간대별 행적과 만난 이, 차량 번호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최씨는 “밥을 먹었던 식당에서 했던 대화내용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크게 받았다”며 “사건 직후 전화나 문자 한 통을 하는 것조차 너무나 두려웠고, 일하거나 밥 먹을 때도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SNS 등에 관심이 많았지만 감시를 당할까 두려워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과 페이스북 친구만 맺고, 트위터 계정은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무사 불법사찰 피해자 엄윤섭씨(45)는 사찰 사실을 인지한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다 지난해 8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엄씨 역시 자살 직전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우울증 등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엄씨의 지인 ㄱ씨는 “누군가가 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휴대폰도 없애고, 사람들을 피해 숨어다니곤 했다”며 “자살을 하기 불과 한달 전에도 ‘누군가 쫓아오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어 병원 신세를 지는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감시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책으로 “자신들이 겪는 공황장애, 우울증 등의 증상이 감시에 노출되었을 경우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정상적인 현상이란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며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감시 피해자들과의 집단심리상담 등을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0031941435&code=2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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