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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받아들일수 있는 용기 - 김구/ 독립협회'를 읽고
게시물ID : sisa_633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뜨아
추천 : 11
조회수 : 518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9/01/07 11:15:22
원문
http://todayhumor.paran.com/board/view.php?table=sisa&no=63360&page=1&keyfield=&keyword=&sb=
댓글을 달았으나 본문 자체에 반대가 워낙 많아 따로 게시글을 올리게됐었습니다.
이렇게 근거도 없고, 논리도 미약한 글이 계속 올라옴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겠습니다.

독립협회는 독립단체가 아닙니다. 계몽운동을 위한 단체로 국민의 계몽을 위한 독립신문을 발간하면서 한글과 근대민주주의와 인권사상을 전파하는 단체였습니다.
김구는 상해임시정부의 지도자였고, 독립운동을 지휘한 지휘자입니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죠.

조선말기에는 우리나라에는 두가지 큰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개혁개방을하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는(계몽운동) 흐름과 서양의것은 나쁜것이니 개방하지말고 우리의 것을 지키자는 흐름입니다.
당시, 독립협회는 계몽운동을 위한 단체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이미 문호를 개방하여 많은부분이 서구식으로 바뀌어 중국보다더 서구화를 이루워낸곳이기때문에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일본등지로 부터 서구의 문물을 받아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처럼 일본의 지원을 받아 갑오개혁등을 일으켰죠. 개방세력이 성공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일본의 국내세력이 커짐에 위협을 느낀 명성황후 등이 러시아에게 손을 벌림으로써 견제장치를 마련하려고 했고, 이때부터 친일파와 친러파가 갈리게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노리는 야욕이 노골화 되면서 눈에 가시가되는 명성황후를 죽이는 '을미사변'과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이동하는 '아관파천'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독립협회는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해있는 고종황제를 다시 황궁할것을 상소하고 서구의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를 전파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그러는중에 고종황제를 폐하고 공화정을 꾀한다는 역적의 모함을 받고 고종황제에 의해 해산하게 됐습니다.

이후, 일본과 을사오적에 의해 '을사늑약'을 채결하게되면서 광복을 위해 많은사람이 광복운동을 펼칩니다. 김구도 그런사람중의 한사람으로써, 상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를 만들게 된거죠..

그리고 김구가 아무것도 안했다는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을사늑약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인애국단이라는 독립운동단체를 결성하게됩니다.
그래서 이봉창 윤봉길과 같은 열사들을 모아 광복운동을 지휘하게됩니다.
당시 수개로 나눠져있던 광복군들의 전투를 효율적으로 지휘하기위해 광복군 총사령부를 설치하게 되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게돼죠.
가장안전한데서 아무것도 안했다고 하는것은 전쟁시에 대통령이 최전방에서 지휘하지 않았다고 말하는것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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