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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에 간 '심청전' 이야기를 읽고
게시물ID : lovestory_602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경구
추천 : 9
조회수 : 5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16 16:50:44
 
-1-
 
 벌써 십 수 년이나 지난 이야기네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꽤나 독특한 수업방식을 가진 국어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안 잊어 버립니다. '이인수'선생님..)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을 설명하고 밑줄을 긋는 방식이 아닌,
 하나씩 따지고 비꼬면서 "왜 이 글이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는가"
 라며 작품의 겉과 속을 까뒤집으며 가르쳐주는 방식이었습닌다.
 
 덕분에 꽤나 즐겁게 국어수업에 집중했고
 수능 때 언어영역에서 상당한 고득점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2-
 
 이 선생님의 국어수업 가운데,
 아직까지 유독 기억에 남아있는 수업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들이 가지는 숨은 의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흥부전'의 경우,
 착한 흥부와 못된 놀부의 대립구도로
 제비의 박씨에서 금은보화가 나온다는 판타지가 섞여
 결국엔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 는 것이
 일반적인 작품의 감상입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단순히 권선징악의 내용만을 가르치는 작품이었다면
  흥부전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 했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작품이 만들어진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하자면
 양반과 평민의 계급갈등이 존재했고
 지배층인 양반에 대한 평민의 불만과 불신이
 작품 내에 녹아들 수 밖에 없었다.
 
 놀부는 부와 안락을 위해 평민들의 힘겨움은 아랑곳 않는 '독한 양반'의 표본이고
 흥부는 재산도 능력도 없으면서 자식을 계속 가지는 '무능한 양반'의 표본이다.
 
 흥부전은 작품을 통해 두 양반을 희화화하여
 당시 판소리, 한글소설 등의 주 소비층인 서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것이다.
 
 제비의 박씨가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 준 것은
 당시 서민들이 '독한 양반'보다 '무능력한 양반' 쪽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상당히 신빙성있는 해석입니다.
 이 선생님 수업시간에 조는 친구들은 무섭도록 정확한 분필탄지공을 맞았는데,
 이 때의 수업만큼은 분필이 무섭다기보다 순전히 수업의 재미만으로
 조는 친구들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3-
 
 비단 흥부전 만이 아닙니다.
 
 '별주부전'의 경우 토끼와 자라의 간 쟁탈전에서
 영리한 토끼가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한 것 만이 부각되는데,
 이 작품 역시 당시 양반층에 대한 풍자가 깃들어 있다.
 
 단순히 토끼를 서민, 자라를 양반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토끼를 꾀어내서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자라가
 작품의 가장 큰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당시 서민들이 제일 미워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또, 원전에는 이런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토끼가 용궁으로 들어가자 수 많은 바다 생물들이
 각각 영의정, 좌의정 등으로 용왕 옆에 늘어서 있고,
 제 각각 한 마디씩 용왕에게 간언을 한다.
 
 당시 양반의 권력이란 절대적인 것이었는데
 그를 모두 생선이나 연체동물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서민들에게는 통쾌한 일이었으며,
 그 양반들이 토끼를 놓친 뒤 격노한 용왕에게 빌빌대며
 아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제대로 된 카타르시스였을 것이다.
 
 추가로, 별주부전에는
 용왕에게 뺨을 맞은 넙치는 눈이 한쪽으로 쏠리고
 용왕에게 밟힌 가오리는 네모납작한 모습이 되었다는 센스도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4-
 
 이외에도 춘향전에서 보여지는 변사또의 부패 행각이나
 몰락한 양반이 돈을 받고 딸을 파는 모습이 그려진 심청전 등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 '양반에 대한 질타와 조소'가
 때로는 은유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작품에 담겨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동화로 짧게 각색되어
 어린이들에게도 읽히는 고전소설들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반체제소설이라는 점,
 하나의 작품을 읽는 데 있어
 단순히 타인의(보통 학교 선생님)가르침에만 기대고 배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준 그날의 수업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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