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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지 못하는 코알라의 진실.jpg
게시물ID : humordata_14729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군대민영화
추천 : 3
조회수 : 347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11/21 20:25:10
1.
 
환경단체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환경을 보호하려 한다.
 
개발론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멍청한 것! 개발을 해야 잘살아!"
 
 
하지만 환경단체는 안다.
 
코알라의 진실을.
 
 
그러기에 오늘도
 
환경단체는 개발론자들과 맞서싸우며,
 
목숨을 걸어가면서 환경을 보호하려 한다.
 
환경파괴로 코알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코알라가 자기의 안식처를 잃을 때,
 
인류의 운명은 그 순간 결정되기 때문이다.
 
 
 
 
2.
 
호주에 한창 식민지개척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영국인들은 식용으로 토끼를 들여왔다.
 
그런데, 토끼 3마리가 그 과정에서 실수로 탈출하고,
 
그 토끼는 150억마리가 되었다.
 
 
수많은 토끼들은 떼거지로 다니면서
 
호주의 수많은 숲을 황폐화시키고,
 
이에 공포에 빠진 호주정부는 대대적인
 
군사력 동원으로 토끼를 소탕하고,
 
심지어 생화학무기인 바이러스까지 살포하여
 
토끼를 대량으로 박멸하려고 하였다.
 
 
호주정부는 알았다.
 
토끼들로 인해
 
코알라의 서식지가 상실되는 순간
 
150억마리의 토끼와
 
수백만의 호주인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3.
 
지리학적인 분석에 의하면
 
월리스 선을 기점으로
 
동남아시아 및 유라시아 대륙에는 코알라를 비롯한 유대류가 살지 않고 다른 대형포유류가 살며,
 
오세아니아 일대에는 대형포유류가 존재하지 않고 유대류만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코알라가 있는 곳엔 대형포유류가 존재하지 않을까?
 
 
 
 
 
 
 
rtvqe.jpg
 
4.
 
 
이 사진이 찍힌 카메라는
 
호주의 어느 한 숲속에서 발견되었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카메라로 추측하고, 그를 추적하였는데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주변엔 유칼립투스나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5.
 
모아이 섬은 한 때 나무로 울창하였다.
 
모아이 원주민들은 문명을 건설하고, 나무를 마구잡이로 벌채하였다.
 
그러한 결과 모아이 섬은 황무지 비스무리하게 변하였는데,
 
그러한 환경 변화 이후,
 
1세기도 안되어 식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누가 그 많은 두개골들을 내리쳤을까?
 
 
 
 
6.
 
 
영국정부는 사형수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정부는 그들을 보낼 장소로 호주를 낙점하였고,
 
사형수들을 배에 태워서 몇십년동안 호주로 실어보냈다.
 
 
왜 하필, 영국정부는 많고 많은 장소중에서 제일 먼 호주로 사형수들을 보냈을까?
 
 
 
 
 
7.
 
통계에 의하면, 호주에는 실종사건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호주에만
 
실종사건이 많을까?
 
 
 
=====================
 
 
<추가>
 
전투코알라의 서막
 
출처: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3278270&cpage=1&mbsW=search&select=stt&opt=1&keyword
 
코알라.  코알라, 숲, 자연, 자연의 아름다운 사진 : 바다, 호수,  숲, 모래, 동물
 
유칼립투스 숲의 파괴에 좌절하는 코알라.
 
 
 
 
 
 
 
 
 
<전투코알라에 대한 사설>
 
출처: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3128248&cpage=1&mbsW=search&select=stt&opt=1&keyword
 
 
<호주 전투 코알라>
 
전투코알라는 호주 건국신화에 등장하여 일반적인 코알라와 함께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괴랄하여 무리를 이루지 못해 실패했다. 이는 부족을 이루지 못하는 전투 코알라가 무리를 지어 사는 코알라 부족에게 패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삼국유사》에 후백제의 견훤이 유아 때 전투 코알라가 젖을 먹였다 하여 영웅의 보호자이며 창업의 조력자로 부각시켰고, 고려 태조의 5대조 호경(虎景)이 굴 속에 잠을 자다가 굴 입구에서 전투 코알라가 크게 울부짖었다. 이에 호경이가 밖으로 나왔더니 전투 코알라는 보이지 않고 굴이 무너졌다. 여기서 전투 코알라는 신의 사자 또는 신 자체로 등장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전투 코알라를 전군(戰君)이라 하였다. 호주에 다녀온 고려의 사신은 호주에서 전투 코알라 숭배사상과 전승 숭배사상이 융합되어 전신(戰神) 또는 전신의 사자를 상징하여 전신당의 전신도로 나타나 있는 등 호주 민족에게 신수(神獸)로 받들여 진 것은 오래 된 일이다. 전투 코알라의 용맹성은 군대를 상징하여 무반(武班)을 전반(戰班)이라 하였다. 전투 코알라는 병귀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져 전투 코알라 그림이나 전()자 심볼을 문신으로 그리면 이를 물리친다는 속신이 있다. 전투 캥거루의 목에 단 쇠방울이나 성당의 풍경도 같은 속신에서 나온 방편이었다
.

전투 코알라는 인간의 효행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고, 성묘하는 효자를 등에 실어 나르거나 시묘살이하는 효자를 지키며, 은혜를 갚기 위해 좋은 묏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는 속신이 있다. 이는 전투 코알라를 효와 보은의 동물로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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