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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면 생각나는 제설...
게시물ID : military_346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고등어
추천 : 3
조회수 : 5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1/22 11:34:24
겨울이 오면 눈이 생각나고

그 눈을 보면 염병할 제설이 생각납니다. 

제가 있던 곳은 계룡대... 특기는 공병 중장비 운전병... 

하... 니미럴... 



05년 겨울, 계룡대는 정말 욕이 나올 만큼 눈이 많이 내렸더랬죠. 

부대 주차장에 쌓아둔 염화 칼슘 140여 포대가 동나는게 순식간이었으니... 



계룡대서는 눈이 오면 정말 제대로 비상이 걸리는 곳이 딱 한군데인데, 그곳이 제가 있던 장비과. 

다른데는 다 30분 조기 기상이지만, 장비과는 새벽 3시 기상. 그것도 운전병과 장비병들만. ㅠㅠ 



일단 가을 막바지가 되면 구레이다 삽날을 죄다 고무로 바꿔낍니다. 쇠 삽날로 밀다가 

바닥의 중앙분리선의 야광물체를 다 긁어버리거나, 너무 구석에 붙어서 경계석을 해먹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체인 치는 훈련을 합니다. 구레이다에 체인을 1분내에 치는 훈련. 

뭐 별거 없습니다. 쫌 무거운 쇠사슬 꾸러미를 구레이다에서 꺼내서 바닥에 깔고, 

구레이다가 움직여 체인 중간쯤에 오면 구레이다를 멈추고 한쪽 바퀴에 2인 1조로 (즉 한차당 4명)붙어서 

체인을 결속하는 거죠. 



근데 문제는 제설에 차량도 운행을 하는데... 운전병들은 이 훈련을 안합니다. 

아니 못하죠. 우리가 훈련하는 시간에 운전병들은 다들 운행을 나가서 장비과에 없으니... -_ㅠ 

정비병들은 정비하느라 바빠서... 



제설 작전의 일과를 간략하게 일기형식으로 서술하자면... 



눈이 오면 새벽 3시에 당직 하사가 내무실에 들어와 장비병과 운전병들을 살포시 깨웁니다... 

행정반에 대충 신고하고 장비과로 도착하자 마자 구레이다 체인부터 치고, 전 차량의 체인을 다 쳐줍니다. 

제설차와 왕고가 탄 굴삭기, 그리고 장비병 3고 밑으로는 다시 연병장 부근의 흙더미로 갑니다. 

거기서 굴삭기가 제설차에 흙을 퍼 실어주면 나머지 병력들이 염화 칼슘을 들고와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칼로 난도질을 해 흙과 잘 섞이게 뿌려줍니다. 



3대의 구레이다에 장비관(중사) 장비병 2고, 3고가 한대씩 타고, 2고와 3고의 장비엔 선탑자가 한명씩 올라탑니다. 

저는 당시 3고... 

왕고는 라디오와 히터가 빵빵한 굴삭기에서 차 올때만 손만 까딱 거리지만, 2고와 3고는 하루 종일 뺑뺑이입니다. ㅡ_ㅠ 



드디어 대망의 4시. 

작전이 시작됩니다. 본격적으로 헬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 

당시 제설차량 4대와 굴삭기는 라디오가 나오고 히터가 나오며, 완벽히 외부와 격리되는 따뜻한 환경이지만

구레이다는 그딴 거 없습니다... 

운전석은 얇은 철판과 유리로만 되어있고, 핸들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10여개의 레버는 바닥에 뚫린 구멍을 통해 

차량 본체와 연결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경광등을 외부에 달기 위해 창문으로 선이 빠져 나가니 밑에서 들어온 바람이 운전석을 휘감고 창문을 통해 나갑니다. 

추워 죽겠는데, 앞에 김이 서려서 창문도 못 닫습니다. ㅡ.ㅠ 



4시부터 뺑뺑이를 돌기 시작하는데, 장비과 부근을 지나면 우리 병력들이 주변에서 너까래질을 하고, 

우리가 지나가면 바로 장비과 난로로 향합니다. ㅠㅠ 

아... 니미럴... 



제 앞으로 싸제 차량이 한대 지나갑니다. 

아마 부대로 긴급히 들어오는 간부나 군무원의 차량이겠지요... 근데 이 망할놈이 지나가는 바람에 

바닥에 눈이 눌러 붙습니다. 

그것 까지 다 까고 지나가야 하는데, 앞으로 가면 갈수록 바퀴자국이 더욱 많아집니다...

장비의 속도가 떨어집니다... 

아... 니미럴... 



드디어 새벽 6시. 

다른 부대서도 제설을 하려 병력들이 꼬물꼬물 기어나옵니다. 

제설을 하고 있는 그들 앞에 저희가 굉음을 내며 나타나니 눈삽과, 싸리비, 너까래를 높이 들며 환호를 합니다. 

얼싸않는 놈들도 보입니다... 백미러로 슬쩍 보니, 다들 막사로 갑니다.

아... 니미럴... 



해가 떴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뺑뺑이를 돌고 있습니다. 

드디어 제설 작전도에 있는 구역의 제설이 마무리 되고 선탑자가 무전을 때립니다. 

양말을 세겹을 껴 신었지만, 발은 이미 감각이 없습니다... 

무전이 날라옵니다. 눈이 너무 와서 계룡시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고... 영외 작업입니다. 

정문으로 향하며 지나가는 식당에는 밥먹고 나오는 병력들이 보입니다.

아... 니미럴... 



눈이 다 눌러붙은 영외 비오큐와 영외 도로 부근의 눈을 겨우 다 까고 막사에 선탑자를 떨궈놓고 

장비과에 복귀하니 아침 8시... 

바깥에는 칼바람이 부는데, 구레이다에서 내리니 언 발이 순식간에 녹아버립니다... 

모든 장비와 제설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갑니다. 

너무 늦게 와서 남은 밥을 다 짬시켰답니다. 

고생했다며 컵라면 1인당 1개씩 꺼내줍니다... 한개 더 달라고 꼬장을 시전합니다.

짜증을 내며 1개씩 더 줍니다. 아침 메뉴는 고기반찬이었는데... 

아... 니미럴... 



식사 후 장비과에 도착하니 과장님께서 장비과 주차장 제설을 지시하십니다. 

장비가 돌아다닐 사이즈가 아니라 눈삽과 너까래질을 해야 합니다. 운전병들은 다 운행나가고 또 장비병들만... 

페이로더 한대에 눈을 모아서 실으면 왕고는 그 눈을 슬쩍 딴데다 버리고 옵니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다 보니 열이나서 차라리 행복합니다. 

장비과 제설도 다 끝나자 장비 과장님께서 운전병 대기실에서 새벽에 제설 운행을 했던 인원들은 전원 오침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운전병 대기실... 컨테이너로 만든 대기실이지만 

여름에는 어디서 줏어온지 모르는 90년대 초반의 에어콘이 돌아가고, 겨울에는 뜨끈한 전기 장판이 달궈주며 

장기판과 TV가 있는 농땡이의 천국... 

점심도 건너뛰고 대기실에서 잠을 잘 계획으로 눕자마자 후임 행정계원이 들어와 저의 허벅지에 살포시 손을 올립니다. 

"00 대대에서 연병장의 눈 좀 치워달랍니다." 

아... 니미럴... 



졸린 눈 부릅뜨고 간신히 제설 다 해주고 복귀해서 대기실에 가니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끌려나간 상황... 저 구석떼기에 왕고가 둘둘 말고 있던 모포와 베게가 보입니다. 

잽싸게 들어가 스스로 모포말이를 하니 여기가 천국입니다. 

왕고가 들어와서 싸커킥을 날리기 전까지는... ㅡ.ㅠ 



일과 종료 때까지 눈 좀 붙일라 하면 연병장 눈치워달라고 연락이 오느라 몽롱하게 버티다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온돌과 24시간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막사로 돌아오면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합니다. 

뉴스에서 예쁜 기상 캐스터가 나옵니다. 

내일도 충남지방엔 눈이 미친듯이 내린답니다... 




아... 니...미...럴... 




전방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제설이라면 끔찍한 기억만이 남아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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