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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사 ] 닥터콜 15화 리뷰 (펌) - bgm
게시물ID : drama_49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궁디주차뿌
추천 : 11
조회수 : 179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12/09 13:35:39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2urL5




응답하라 1994, 신내림 보다 중요한 김슬기의 존재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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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하이킥 이후 김병욱 감독에게 웃음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강박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시트콤이라는 장르 때문에 드라마를 부정당하는 김병욱 감독을 보고 있노라면 아예 노선을 틀었으면 좋겠다가도 일말의 불안감은 남아있었다. 과연 그의 드라마에서 웃음기를 온전히 제거한 탈 시트콤 화가 가능할 것인가 하고. 그래서 내게 응답하라 시리즈는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자 해답이었다. 아아. 이런 방식으로도 드라마를 만들 수 있구나.

 

시간을 뛰어넘었다 다시 불러들이고 각종 장치를 복선과 암시 디테일로 흐트러뜨려 놓아 마치 퍼즐을 풀듯 결과를 추리하게 하는 파격적인 전개. 심지어 남자 주인공의 감정선을 무려 드라마의 절반가량 배우의 연기력 하나에 맡겨놓은 이 오만한 드라마. 그럼에도 드라마의 형식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이것은 드라마다. 그래서 내게 응답하라 시리즈는 김병욱 감독의 가능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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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오로 등장한 SNL 걸 김슬기의 일화는 내게 그런 이유로 몇 가지 의미가 되었다. 메인 커플의 앞날을 신기 있는 소녀의 악담으로 풀어놓다니. 정말 황당한 전개인데 그럼에도 시청자를 집중하게 한다. "태지 오빠야. 이제 두 번 다시 못 볼 거 같아서. 그래서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볼라고 넘었다." 1996년. 서태지의 은퇴까진 예지했지만, 그로부터 2년 뒤. 그가 돌아오리란 사실까진 예측할 수 없었던 소녀. "알았다. 알았다. 알았다. 열심히 해봐. 내도 가끔 틀릴 데 안 있더나. 내 그래도 서태지는 맞췄다이. 알재?" 전화의 내용으로 미루어보건대 소녀의 능력이 영험한 수준은 아니고 사람 잡는 선무당 짓을 몇 번은 했던 반쪽짜리 무당이었나 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야말로 시트콤의 유머 소재로나 쓰일 이 황당한 에피소드가 희한하게 아련하기까지 하더라는 것. "쓰오빠. 짱! 여자친구랑 끝까지 가야 될 낀데." 오빠야. 니 여자친구랑 헤어질 끼다! 꽥하고 소리 지른 김슬기의 한마디가 예언인지 쓰레기의 말마따나 화풀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쓰레기 오빠에게 받아든 용돈으로 악담이 염원으로까지 진화한 것을 보면 쓰레기가 건넨 것은 차비가 아니라 복채였던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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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말을 장난으로 넘기려 웃다 못내 밀려드는 찜찜함에 갸웃거리는 쓰레기의 섬세한 표정변화나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을 가로질러 유유히 택시를 타고 가는 김슬기의 뒤로 쏟아지는 한탄을 듣고 있노라면 다시 머리는 불안과 안도의 셔틀을 탄다. 제작진이 깨물어주고 싶게 영리한 것은 무당 소녀 설정을 넣으면서도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신기라는 여지를 남겨두어 그녀의 말을 아예 불신할 수도 믿어버릴 수도 없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만화 같은 장면에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인데 정말이지 진지하게 그녀의 존재 이유를 상기하는 나 자신이 놀라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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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내림 소녀 김슬기는 다름 아닌 쓰레기의 진짜 여동생이기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뭐. 누구? 쓰레기 오빠 나온단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사촌 동생인데 얼굴은 비쳐야 안되겠나." 그녀의 입을 빌리면 단 하나뿐인 사촌 여동생. 삼 형제의 막내로 자란 쓰레기에게 여동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그녀 하나뿐일 것이다. 그야말로 여동생인척했던 나정이의 관계와 달리 진짜 혈육을 대할 때 쓰레기가 어떤 종류의 남매애를 보여주는가를 나는 김슬기의 등장으로 알았다. 다르구나. 그야말로 이건 순도 백퍼센트 남매의 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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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공중전화. 따지고 보자면 쓰레기와 나정이 함께했던 공간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 아래 어쩜 이렇게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인지. 허리디스크로 울먹이는 나정을 내 허리 아픈 것보다 더 쓴 얼굴로 바라봤던 쓰레기가. 그 아이를 위해 40초 데운 우유와 주머니에서 꺼낸 서태지와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커튼을 쳐주는. 나정이가 했던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실천하는 이 자상하고 사려 깊은 판타지를 사촌 여동생 김슬기 앞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꾸짖고 힐난하고 한심해하는 사촌 오빠 쓰레기의 모습뿐.

 

분명 남매라고 불렀을 때 서로의 머리를 쥐어뜯는 그분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따금 부숴질 듯 애틋해하는 쓰레기의 목마른 감정이 진짜 사촌 여동생에겐 일 g도 느껴지지 않더란 말이다. 나정이가 지난 십여 년간 받아왔던 오빠라는 이름의 로맨스가 새삼 애틋해졌다. 장남도 아닌 삼 형제의 막내. 이런 그에게 친구의 죽음은 일찍이 그를 가장으로 성장시켰다. 오빠를 잃고 울먹이는 나정이를 본 그에게 나정 네 가족은 아픈 손가락과도 같았으리라. 새삼 태훈을 잃고 결핍된 그들을 오빠의 위치에서, 혹은 아들의 자리로 채워준 쓰레기의 존재감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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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정이를…. 많이 좋아합니다. 그냥 동생이 아니라 여자로서 많이 좋아합니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질펀하게 전라도식 욕설이라도 늘어놓고 등짝이라도 좀 때렸더라면 차라리 슬프진 않았을 것이다. 말끔하게 정장을 빼 입고 무릎을 꿇고 앉아 중대 발표를 하겠다 하는 이 듬직한 아들을 성동일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봤었다. 오냐. 나는 네가 무슨 부탁을 해도 다 들어주겠다 하고. 그런데 우리 아들 차려입으니까 참 근사하다며. 그랬으니 모든 소원은 다 들어준다 해도 차마 그를 아들 자리에서 밀어내는 일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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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신경질적으로 기가 차다는 듯 웃어버리곤 천천히 상황을 직시하는 나정 엄마와 달리 아빠의 표정은 스산해졌다. 소리를 지르거나 야구 배트를 들고 나타나거나 하는, 성동일이라면 떠올릴 만한 어떠한 격정적 거부 의사 하나 없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무릎 꿇은 쓰레기를 바라보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너그 아버지 이해해..." 그 열리는 문소리가 심장을 죄이는 것 같은 얼굴로 눈을 감으려던 쓰레기는 어머니의 염려 섞인 말에 울 것 같은 눈으로 웃어 보인다. "아유. 그럼요. 어머니." 누구보다도 그를 잘 이해하는 그였다. "나는 내가 나정이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만큼 밀어내고 부정하고 고민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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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능적으로 관계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이미 오래전에 상실감을 맛본 그들이기에 변화란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쓰레기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토록 오랜 기간을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내 딸의 남자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쓰레기가 타인이라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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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부모의 반대에 직면한 연인들을 보면 남주인공의 적극적인 구애를 기원하게 된다. 가족의 인연을 끊게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드는 행동력을. 분명 쓰레기와 성나정의 관계는 매우 특수한 상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그가 성나정과 그리고 그녀의 가족을 모두 지키는 방법을 선택하길 바랐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다른 누구도 아닌 선택의 순간 이전까지는 자신을 학대할 정도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정 이후부터는 무서우리만치 과감한 행동력으로 돌진하는 쓰레기라는 사람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라도 쓰레기만큼 성나정가의 결핍을 이해해줄 사람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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