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동안의 대자보들
게시물ID : sisa_4617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플레보이
추천 : 10
조회수 : 646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12/14 06:26:37
 
빠진것도 많고 이 뒤에 나온것도 많지만 처음 시작됐던 고대의 대자보들이 많아서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고려대에서 시작된 첫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경영 08 현우

**뒤이어 고대에 붙은 대자보들**



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

현우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이 시대를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말을 합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대운하사업? 내부 양심선언이 나오고 전문가들이 반대할 때 그칠 줄 알았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람이 24명이나 죽었으니 국정조사는 할 줄 알았습니다. 원자력? 일본에서 원전이 터지고 우리나라 부실원전은 전면 재검토할 줄 알았습니다. 시간강사? 학교에 텐트농성 2년이면 강사 임금 올려줄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솔직히 제가 대학 다닐 때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목도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21세기에!! 대정부 투쟁, 정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싸움, 이런건 옛날에 다 끝난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우린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환상은 철저히 깨졌습니다.

100만명이 넘는 지지서명을 받은 KTX 민영화 반대 파업. 3만명도 안되는 회사에서에 3일동안 6748명을 직위해제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들립니다. "더 이상 개기면 사회에서 묻어버린다." 그들마저 사라지면, 우리에게 정녕 희망은 있을까요? 이후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시대를 믿을 수 있게 해주었던 사람들이 이젠 거의 다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이 불안이 쉽게 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불안한 사람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뭉쳐 서로를 지켜주어야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1인으로서, 토요일 오후 3시 이곳에서(정대후문), 서울역으로 함께 가기로 말입니다. 여러분도 안녕하시겠습니까?

-07 철학 태경






즐거운 日記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바로 어제 코레일 직원 807명이 직위해제 되어 일자리를 잃은 직원이 7000명이 넘어섰지만,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국정원에서 121만 건의 트위터 글을 써서 선거개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제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제 침대에 누워 페이스북을 뒤적이다가, 친구가 공유한 어떤 선배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의 번쩍이는 화면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 지금 안녕하냐고, 정말 별 탈이 없느냐고.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가 시험기간이지만, 그래서 어서 잠들어야 했지만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습니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나는 안녕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입학하던 해 용산에서 여섯 명이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교수님은 선배들은 그리고 친구들은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 이렇게 사는가보다 생각했습니다. 나도 안녕했습니다. 그 해 5월에 전직 대통령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나는 그 날 괜히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녕했습니다. 내가 훈련소에 있을 때 제주도의 강정마을이라는 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섰습니다. 울면서 끌려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불쌍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녕했습니다. 진보적이라는 시사주간지를 구독하고, 선거에서 야당을 찍고, 친구들과 낄낄대면서 대통령이 멍청하다고 욕하면서 나는 그래도 ‘개념 대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지금까지 나에게 아무도 ‘너는 안녕하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진짜 안녕한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안녕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시험을 치고, 영어를 공부해도 내가 사는 세상은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곧 내가 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지금 분명 안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안녕하지 않습니다. 술은 왜 먹을수록 무력해지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답답해져만 갔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안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녕한 척 해왔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조그만 용기를 내어 고백하려 합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2013.12.12. 우리학교 09 강훈구




<누군가 내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면>

시국이 위기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세상과 나의 삶을 분리시킨 채 언제나 침묵했던
어제까지의 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당장 내일까지는 살만할 것 같다고 자위하며,
오늘의 낭만에 빠져 살았던 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살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꾹 참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요.

이렇게 ‘나는 아직 안녕하다’며 자기최면을 거는 동안에,
나는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잃은 것 같습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도, 원전 비리에도,
4대강 사업의 뒷통수에도,
언제나 나의 삶을 이런 문제들로부터 격리시켜온 것 같습니다.
그저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역할에만 목매온 것 같습니다.

정신차려보니 결국,
파업에 참가하는 6748명의 노동자가 직위해제 당하는
작금의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이해에 따라 불법/합법이 결정되는,
이에 대한 어떠한 저항도
불법으로 규정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지경까지 밀려난 상황에서 누군가 내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면,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렵니다.
더 이상 나의 분노를 유예하지 않으렵니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도 없으니까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권력의 횡포로 점철된 ‘저 세상’과 결국엔 하나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
사실상 거짓이란 것을 알게 된 이상,
고착화된 사회의 메커니즘안에서 사태를 판단하고 순응한다면
저절로 자본과 국가권력을 옹호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공공의 이익’이라는 위선 아래에서 횡포를 일삼는
자본과 국가권력에 나도 함께 저항하려 합니다.

따라서 저도 안녕하지 않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입대를 앞둔 시점이지만
조금이라도 나의 목소리를 보태고자 합니다.
현실의 끈이 썩은 동아줄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안녕하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지 희망의 끈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현실에 맞서 “노호”를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군입대를 앞둔 어느 사범대 11학번 학생



안녕들 하십니까!

공공산업의 민영화, 7608명의 직위해제, 밀양 유한숙 할아버지의 음독, 삼성서비스노동자의 자결, 줄어가는 일자리와 정리해고, 비정규직,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하수상한 시절에 어떻게 안녕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단 하루의 파업으로 인한 철도 노동자 수천명의 직위해제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웠습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나온 대자보 한 편이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것이 과연 우리뿐이냐고. 그에 연이은 새로운 자보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12일 정경대 후문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학우 분들은 80여개의 따스한 음료수와 수많은 핫팩과 간식으로 호응해주셨고, 아침 8시 20분 혼자로 시작했던 1인 시위는 언젠가부터 결코 혼자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의 열기는 “고대 대자보”를 포털 싸이트 다음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렸고, 경향신문,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 저희의 소식을 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우리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시냐는 질문은 우리가 가진 불안을 절절히 공감하도록 했나 봅니다. 결국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안녕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외쳤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녕하시냐고 묻지 않겠다고. 대신 왜 안녕하지 않은 지를 우리들이 직접 말하고 싶다고.

그리고 이제 안녕하지 못한 우리들의 행동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행동은 지금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억압에 대한 저항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4일 토요일 오후 3시,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서 함께 모여 서울역으로 갑시다. 우리 모두의 안녕을 찾으러 갑시다.

- 안녕하지 못하는 사람들 일동





<아니요, 안녕 못합니다.>

"이 미친 세상에 너만은 행복해야해"라는 가사처럼 미쳐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시베리아의 찬 바람이 부는 연말에는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라는 인사 대신 "부자되세요"가 최고의 인사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세상입니다.
자신에 대한 착취를 넘어서서 시민, 국민, 인민 전체에 대한 착취를 행하려는 국가와 자본에 대해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탄압의 칼바람이 몰아.닥치는 세상입니다.

그제에 이어 어제도 천명이 넘는 사람이 직위해제를 당했습니다. 직위해제, 절대로 해고는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파업하고 있는 철도 노동자들께 이를 전해드린다면 기뻐할까요. "나 안 짤리는거지?"하면서 기쁘게 파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 힘들게들 모두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요?
고작 하루만에 4천명을 직위해제 시키고, 파업 이틀만에 천명을 더 직위해제 시키고 주동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엄포를 놓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시지만 저한테는 "파업하는 놈들은 싹 다 목을 날려버리겠다"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결국 세상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보장되면 파업이나 한다고 안된다는 사람이 집권당 국회의원인 나라입니다. 근로기준법, 그 기초적인 권리밖에 담기지 않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어언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쌍용차, 콜트콜텍, 현대차 비정규직...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은 그 기본적 권리도,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기본권들마저도 인정받지 못하고 차디찬 곳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이 미친 세상에 여러분은 안녕하신지요? 행복하신지요?

바보들의 세상에서는 정신차리고 있는 사람이 바보가 됩니다. 이 땅에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소수가 되어버리는 세상은 결국 극히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억압받는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미친 세상에서, 전 결코 안녕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정치외교 09 춘희







<이제 좀 ‘미련’해지렵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1708 명을 직위해제하는 이 세상이, 정권에 반대하면 모두 종북딱지를 붙이는 이 세상이,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하는 이 세상이 안녕치 못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알고 있습니다. 안녕치 못한 세상을 바꾸기 보다 적응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요. 대입-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인생레일에서 한 번 삐끗하면 저 밑으로 떨어지는 가혹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익 점수를 1점이라도 높여서 대기업 정규직으로 사는 게, 좋은 학점을 받고 안정적인 공기업에 취업하는 게, 고시에 통과해 정년을 보장받는 공무원으로 사는 게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지혜’롭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안녕치 못한 세상에 적응하기가 점점 힘에 부칩니다. 청년실업은 갈수록 증가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은 더 높아집니다. CPA, CFO, 토익, 토익 스피킹, 한자 등등 따야하는 자격등만 여러 개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어떻게 취업을 해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야근은 기본이고, 월급으로 집세내기도 빡빡합니다. 또 하루 아침에 7680 명을 직위해제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안정적인 직장은 없습니다. 대기업은 더 유연화되고, 공기업은 민영화되고, 청년실업은 더 늘어만 갑니다. 많이 우울하고 힘든 세상입니다.

저는 더 이상 못 견디겠습니다.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세상에 적응하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요. 제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나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한다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세상을 맡길 수 없습니다. 우리 손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제 좀 ‘미련’해지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어느 경제학자의 글귀를 소개하며 말을 마치려고 합니다.

200년 전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50년 전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 당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 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by 장하준)
08 정훈
<아직...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안녕하십니까"라는 여섯 글자가 이토록 우리를 흔들어 놓을 줄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타인에 대한 영원한 무관심을 확신하고 있었나 보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죽음과 끝없는 경쟁 속에서 대화와 연대의 가능성을 잊고 있었나 보다. 되돌아보면 우리 한 명 한 명은 소외와 적대의 한 복판에서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서 있었나 보다.
많은 학우들이 다시, 지금, 여기를 주목하고 있다. 눈보라 몰아쳤던 정대후문에서 하루종일 학우들에게 뼈아프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치는 이들에게는 수십개의 따뜻한 캔커피가 전달되었다. "힘내세요, 멋집니다, 고생하십니다." 말들이 나타났다. 많은 이들의 입이 열렸다. 한 학우의 "안녕하십니까"라는 한 마디가 우리에게 다시 사유의 시간과 말할 공간을 열어준 것이다.
우리에게 열린 정치의 공간은 한편으로는 철도공사의 비이성적인 철도 민영화 추진과 공공성 강화를 외치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으로 가능했다. 벌써 7000여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한국전력의 기만적이고 폭력적인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으로 가능했다. 벌써 두명의 할아버지가 분신으로 음독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해고의 위협이, 죽음이 지금을 만들었다. 안타까울 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눈보라 몰아치는 이 겨울 다시금 정치의 공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철도 민영화 반대, 밀양 송전탑 반대에 대한 동의와 지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진실로 안녕하지 못한 우리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에 오기 위해 발버둥쳤고, 남보다 높은 학점, 스펙을 얻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여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끝없는 경쟁의 굴레일 뿐이다. 취업을 하더라도, 대학원에 진학하더라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사라진 삶과 여유는 되찾을 수 없는 듯 했다. 그래서 좌절했었고 눈물을 거두었고, 세상을 외면했다. 허나 계속 버틸 수만은 없었다.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한 마디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 공간이, 우리의 굳어버린 마음이 열린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 여기를 바라보고 있다.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 모여, 연결되어 있는 서로의 아픔을 확인하고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장을 흥분에 찬 눈길로 주시하고 있다. 아직,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기다리며 우리는 지금, 여기를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 세상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고통이 모임으로써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미친 세상에 안녕을 고하기 위해 이 공간은 우리의 진지가 되어야 한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여,
안녕하지 못함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밀양에 평화를, 철도노동자 파업에 지지를, 그리고 우리에겐 삶을.

미디어 06 박기홍




<살아남지 않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저는 당연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명, 인권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저는 그게 생각만큼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평생 살아온 터전을 지키겠다는 어르신들의 소망은 무시당하고, 짓밟혀도 될만한 일이고, 자신들의 일터와 관련된 사항에 ‘옳지 않다’라는 가치판단을 내리고, 정부와 회사의 결정에 반대하는 것은 ‘불법’이라 매도당하고 해고당해도 될 만한 일입니다. 비단 밀양과 KTX뿐만이 아닙니다. 올 한 해에도 쌍용, 삼성 등등의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삶을 잃었지만 그것에 관해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런반응이 더 ‘당연한’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안녕한 체 하고 사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저는 지금 최선을 다해 안녕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너무나도 안녕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안녕하지가 않습니다. 정대 후문을 지나칠 때 마다 늘어나는 대자보 앞에서 발이 멈추고, 괜히 타임라인의 수많은 ‘안녕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찾아 읽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라는 말이 한숨과 같이 허공에 흩어지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의심과 불안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나는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은데 이상하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괜찮지가 않습니다.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금 안녕하지 못합니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안녕해야만 합니다. 저에게는 풀어야 할 녹음파일들이 있고, 정리 해야 할 필기가 있고, 읽어야 할 교재들과 1000장에 가까운 PPT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말고사를 봐야 하고, 좋은 학점을 받아 부모님이 내 주신 등록금 값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다음학기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부담을 줄여보려 장학금을 받을 길이 없나, 어디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나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비단 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벅차, 그 외의 일들에 대해서는 안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안녕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살아남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게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한국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습니다. 안녕한 체 하는 우리가 정말로 안녕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는 살아남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 같이 진실로 안녕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애 첫 대자보를 씁니다. 뭘 할 수 있을지,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괜찮지 않다고, 안녕하지 못하다고 소리라도 질러보려고 합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들은 나에게 있어 남이 아니라고 고백하려 합니다. 안녕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저와 같은 이들에게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안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심리 12 예은





<송구스럽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

안녕하냐는 물음에 답해봅니다. 우리는 꽤나 안녕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대답하건데 우리는 안녕합니다.

연일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슈들로 정신 차리기 어렵고, 시험 때문에 골머리를 썩지만 친구와 밥을 먹으며, 술 한 잔 나누며 오가는 잘 지내냐는 인사에 답합니다. “별일 없지 뭐”

국정원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했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로 트위터의 “리트윗”으로 우리의 관심을 표명하며 마음의 짐을 덜었으니까요.

선서도 하지 않은 증인들을 심문하는 대신 용기 있는 고발자에게 ‘광주의 경찰’이라 불러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솔직히 방학 때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나 싶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은 사상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죄로 구속돼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자유도 좋지만 종북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닌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관심을 거두고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을 즐길 수 있었으니 실로 안녕했지요.

소신껏 수사지휘 중인 검찰총장이 낙마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수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직자의 품위는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서고, 주민들이 죽어나갔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원전에 반대하고, 공권력에 시민들이 탄압당하고 있지만, 우리는 밀양에 살지 않으니까요.

광주의 진실을 밝히다 테러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저는 신부에게 전두환의 사위였던 국회위원이 종북이라 욕하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 “또 종북몰이야?” 싶었습니다. 한 동안 저러다 말겠지 했어요.

행정부를 견제하라고 한 표 행사해 뽑은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을, 노동 3권을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진 국민을 용납하지 않겠다던 국회의원이 제명하겠다고 동의안을 제출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며칠을 시달렸던 과제를 오늘 막 끝마쳤으니까요.

철도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직위해제를 당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공부 좀 했네. 뿌듯합니다. 안녕하지요.

요컨대, 안녕합니다.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안녕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체제의, 정권의 부조리를 논하면서도 ‘변화’보다는 ‘적응’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적응을 위한 노력의 성과를 얻을 때마다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안녕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나도 불편합니다. 시험기간을 맞이하는 것도, 하기 싫은 공부를 손에 붙잡고 있는 것도 처음이 아님에도 불편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안녕할 것 같았는데, 우리보다 더 안녕할 것 같았는데 아닌가봅니다. 다들 안녕하지 못하다 하시며, 안녕할 수 없는 길을 걸으시려는 걸 보니 불편합니다. 지켜보는 우리는 안녕해서 불편합니다. 우리도 실제로는 안녕하지 못한 처지가 아닐까 싶어 불편합니다. 이 부족한 글이 여기 붙게 된 것도 우리의 불편함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안녕하지 못하다는 목소리 옆에 함께할 자격이 있나 싶어 염려되지만, 우리는 불편하기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안녕할 수 없는 이유를 듣고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어제도 안녕했고, 오늘도 안녕하지만,
불편한 요즘에 문득 내일도 안녕할지 몰라서 함께 하고자 합니다.


문과대 09학번 이종훈, 홍석호




고대에 힘입어 다른 학교에서도 시작된 대자보들



**성균관대학교 대자보**



<성균관 학우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
<성균관 학우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오늘부터 안녕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시험공부를 하다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니 ‘안녕들 하십니까?’라 는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용은 주변의 문제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잘못된 것을 향해 잘못됐다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수상한 시절을 살 아가고 있는 우리가 과연 ‘안녕한지’ 묻고 있습니다. 글을 읽고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펜대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휴대폰 알림이 울립니다. 860명의 철도노동자들이 또 직 위해제되었다는 속보입니다.

문득 처음 성균관을 들어설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입학할 때부터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이었 습니다. 입학하기 전,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진 컨테이너 산성과 국민들이 든 촛불에 쏘아지던 물대포를 보며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입학하던 해 겨울, 용산에서 여섯 명의 철거민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보며 이 세상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평택 쌍용자 동차 공장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모습을 보며 이 세상 무엇인가가 잘못됨 을 확신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현실에 맞서고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작은 힘이 모인다면 언젠가 세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 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되곤 했습니다. 과연 내가 믿고 있는 생각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했 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군 복무 후 복학을 하면서 과거의 나를 세탁하고 어느새 안녕 하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스펙을 쌓고 학점 관리를 잘한다면 좁은 경 쟁의 문을 뚫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언젠가 대성로에 취업 또는 고시 합격생 최 종학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휘날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너무도 안녕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세상은 안녕하지 않은가 봅니다.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대통령 선거에서 국 가기관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고, 참교육에 힘쓰시던 선생님들은 전교조를 지 키기 위해 학교가 아닌 거리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고자 하는 비정규 직 노동자들의 노력은 갑의 횡포에 수포로 돌아가고,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에 나선 7,000여 명의 철도노동자들은 불법 파업이란 낙인과 함께 직위해제를 당했습니다. 상식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지고 있는 시절입니다. 그간 안녕하지 못한 세상을 보면서 안녕하고자 했던 제가 부끄 러워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복학하고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안녕한 사람으 로 지내고자 노력해 왔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용기를 내 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다시 안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않겠습니다.

정외 09 최종학
<'성균관 대학교`는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년도 처음 대학생이 된 13학번 20살 신민주 입니다.
아직 무엇이 대학생활이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저는 성균관대 총학생회 선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선본 하나가 선거에 등록 거부당하고 지나친 학교의 개입까지, 처음으로 맞이한 선거는 안녕하지 못한 선거였습니다. 단과대 투표함을 열어 잘못 들어간 총학 투표지를 총학 투표함으로 옮기라는 학교의 말도, 군고구마 커피 노트등이 나누어진 지나친 금권 선거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러한 선거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분명 대자보,sns로 퍼지고 있지만 학교는 이 사태를 침묵으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결코, 부당함과 부정의에 침묵하고 있지 않습니다. 침묵을 통한 은폐와 외면은 오히려 정부와 사회가 자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주요 언론에서도 밀양 문제 투쟁을 하시다 음독자살하신 어르신에 대해 정확하게 방영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주요 언론에서도 지금도 투쟁하는 시청 앞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의롭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교육장`인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게시한 대자보를 무단으로 철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이 학문의 전당으로 정의로워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성대신문 사태등, 너무 많은 일들이 우리들의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대학은 이를 방관하기만 합니다. 사회, 정부, 학교는 과연 침묵을 통해 안녕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늘 학교와 사회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인문과학계열 13학번 신민




**용인대학교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하루 새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칼바람이 살을 엘 듯 파고드는 날씨입니다. 이런 강추위 속에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비상식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철도파업 노동자들입니다. 100만 명이 넘는 지지서명을 받은 민영화 반대 파업은 파업시작 나흘째인 12일 코레일이 조합원 860명을 추가로 직위 해제함으로써 직위 해제된 조합원 수는 총 7천608명이 되었습니다. 3만 명이 채 안 되는 회사에서 일주일도 안돼서 벌써 3분의 1에 가까운 직원들을 직위해제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서가 아닌 국민을 위해 대의를 위해 시작한 파업에 정부는 불법파업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때 용기가 필요한 사회, 그에 따른 희생을 감내해야하는 사회!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할 때 일자리와 신변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옳은 사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애석하게도 2013년 12월의 대한민국은 그렇습니다. 안녕치 못합니다. 우리가 계속 무관심하고 모르는 척 한다면 우리 또한 안녕치 못 할 날이 올 겁니다.


-나는 침묵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주의자를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카톨릭 교인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나와 함께 저항해 줄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도의를 갈고 닦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간이 되자' 는 교훈, 모두 잊으셨나요?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중국08 홍상우




**인천대학교 대자보**





<<인천대 학우님들은 안녕들 하십니까?>>

한 고려대 학우님께서 외쳤습니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그 소리에 많은 고려대 학우님들이 응답해주었습니다. “아니오, 안녕하지 못합니다!”

작금의 현실에 무력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지성을 갖춘 교양인이라는 대학생의 직분을 가지고, 말 한 마디 하는 것조차 아끼는 것은 수치스럽다고 생각되어서, 저희도 용기 내어 한 마디나마 꺼내려고 합니다.

저희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이름 내걸고 이렇게 자보를 써보는 것도 익숙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바로 저희가 이제껏 침묵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려대 학우님의 외침이 단순히 고려대로만 끝나게 된다면, 그 부끄러움은 더 커질 것입니다. 고려대 학우님의 외침은,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비록 다른 학교지만, “같은 대학생으로서” 작은 목소리나마, 고려대 학우님의 외침에 응답합니다. 저희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천대 학우님들께도 여쭙겠습니다. 모두들 안녕하신지요?

하루 아침에 철도 노동자 7000여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를 당해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학사의 교과서가 승인될 때에도 토익책을 들여다보기 바쁩니다. 밀양의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뉴스가 흘러나와도, 그저 먼 곳의 이야기로 여겼습니다. 핑계는 단순했지요. 먹고 살기 바빠서, 혹은, 그저 남의 일이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함께 파괴된 개인들만이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감히 저 파업현장으로 지지하러 나가자는 말조차 꺼내기도 무섭습니다.

그 누가 각박한 세상에서 안녕하겠습니까만, 그러나, 다만, 한 가지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리고 여러분의 이웃은 안녕하십니까?

이 각박한 세상에서, 여러분의 이웃은 정녕 안녕합니까?





**상명대학교(천안) 자보 내용**

<저는 안녕합니다.>

고려대 학우분들이 올려주신 많은 대자보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안녕합니다.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불에 타오를 때, 입시전쟁 속에서 수능을 위한 공부를 하며 저는 안녕하였습니다.

제가 사는 평택역 앞에서 몇 년이 지난 쌍용자동차 시위를 할 때,

4860원의 시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러가며 저는 안녕하였습니다.

국정원 선거개입으로 청계천 앞에서 시위를 할 때, 그 사실들을 방송해주지 않는 미디어를 보며 저는 안녕하였습니다.

코레일 철도파업으로 인해 7843명이 직위해제 되는 지금, 학점과 자격증을 위한 시험공부로 저는 안녕합니다.

각종 SNS에 올라오는 대자보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진정으로 안녕하십니까?

이 글을 보면서도 눈으로만 공감하며 지나가는 대학생 여러분들, 진정 안녕하십니까?

고대 09 강훈구 학생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진보적 시사 주간지를 구독하고, 선거에서 야당을 찍고, 친구들과 낄낄대며 대통령이 멍청하다고 욕하면서,

나는 그래도 ‘개념 대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말로는 깨어있는 척, 개념 있는 척에 최선을 다하는 대학생이었지만 그것은 오로지 말뿐이었습니다.

제 앞길이 급급하여 현실을 외면하였지만 잘못된 일 앞에서 저의 양심을 달래주기 위한 말뿐이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닌 모든 대학생들이 그럴 것이라고 자위하며 저는 안녕했습니다.

중학생 때 저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안녕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16살의 나는 안녕하지 못했는데 21살이 된 저는 너무나도 안녕합니다. 더 이상 안녕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대한민국, 이 안녕하지 못한 나라를 외면해가면서까지 혼자 안녕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다시 16살 촛불을 들었던 안녕하지 못한 사람으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안녕하지 못한 그 길은 험난하겠지만 그 길의 끝에는 영원한 ‘안녕’이 존재하기에 저는 이제부터 안녕하지 않으렵니다.

2013. 12. 13

상명대학교 12



**연세대학교 대자보 내용**

시험공부는 그렇다치고, 계속 정대후문의 대자보가 마음속에 간질거려서 도저히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부모님의 보호아래 생활하던 학창시절, 몸과 마음이 모두 안녕하여 정치와 사회에 눈을 크게 돌려 관심을 쏟던 날들이 있었다. 정부의 어리석음과 이기로움에 치를 떨며, 나 조그만 하나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전진하던 나는 더이상 안녕하지 못하여,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 한몸 간수하기 어려운데 어찌 세상을 논할 수가 있었겠는가. 나의 어린 꿈은 그 무게감을 견디지 못해 가슴 아래로 침잠하여 웅크리고만 있었다.

찬내나는 이 겨울, 웅크림에서 벗어나 크게 일어서고싶다. 그래서 외친다. 나는 지금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고개 높이 들어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싶다!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회앞에 보란듯이 일어나 나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에 떳떳히 고하고싶다.

안녕하지 못하게 만드는 너희들은 참으로 안녕하신가!

14일 낮. 시간 나는대로 바로 행진에 참여합니다. 작은 몸짓 하나, 삼각산을 일으킬 지 못할지언정 바람 한줌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 연세. 의학 11. 태경.
나는 정치고 사회고 모르는 무지랭이입니다.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안녕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지요. 모두들 그렇게 사니 나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한지 어느덧 3년이나 되었습니다.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자연재해가 닥쳐올 것을 예감하듯이 나는 세상이 이상하다는 걸 느낍니다. 세상 곳곳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쥐뿔도 모르는 무지랭이지만, 세상의 나사들이 어딘가 어긋나고 비틀어져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국정원이 121만 건의 트위터 글을 쓰면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고 합니다. 삼성에서 서비스직 노동자로 일하던 한 남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고압 송전탑이 생기는 것을 반대하던 밀양의 한 주민은 독극물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민영화 추진에 반대하는 7000여명의 코레일 직원들은 나흘 사이에 모두 직위해제를 통보 받았고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시험공부를 합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도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시험공부를 하면서 독일어 형용사 어미 변화니 전치사들을 외우고 있습니다. 내 동물적 감각은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고 나에게 수 천 번도 넘는 신호를 보내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신호들을 무시하는 것뿐 입니다.

나는 자꾸만 불편하고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비단 남일 같지 않습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에 휩싸여 자꾸만 불안합니다. 그리고 묻고 싶습니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책상 앞은 따듯하고 아늑하신지요? 혹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제 감수성이 지나치게 예민하여,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우리 나라의 노동자들이, 우리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인지요. 나는 올 겨울, 모두가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지랭이 양-


**광운대학교 대자보**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안녕하십니까?

[안녕] 아무 탈 없이 편안함.

저 또한 여러분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2일, 코레일 측의 강도 높은 대응에 현재 파업으로 인해 직위 해제된 노조원은 노조 전임간부 143명을 포함해 모두 7,60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으시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직위 해제를 당한 것입니다.
국토부는, 코레일이 경영상의 이유로 경영권을 반납하면 민간 개방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철도를 운영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이 몇 개나 되는지.
프랑스 파리에서 간행되는 일간 신문인 르몽드의 11월 4일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이, 박근혜 대통령님의 연설 중 한 부분이 나옵니다. ‘한국은 공공부문 시장을 외국기업들에 개방할 예정이다.’ 이에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의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어느 곳인지.
정부는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파업을 벌이는 철도 노조원들을 불법 파업으로 간주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라고. 하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철도 노조원 분들이 파업을 벌이시는 이유가 진정, 무엇 때문인지.

지난 6일 새벽,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유한숙 어르신께서는 끝내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밀양시는 사인을 ‘복합적 원인’ 혹은 ‘자칫 지역의 혼란 가중’ 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어르신께서 생을 마감하시기 전에, 어떤 말씀을 남기셨는지.
그리고 12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소속 30여 명이 음독 자살하신 어르신의 분향소를 서울광장에 설치하려다 서울시 청원경찰들에게 제지 당했습니다. 서울시 청원경찰들은 분향소 테이블과 촛대 등을 파손함은 물론, 분향소를 철거시켰습니다. 하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지난 9일, 국정원 직원 이모씨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트윗과 리트윗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즉, 상부에서 이슈와 논지를 전달하면 트위터 계정 40여 개를 이용해 트위터 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일, 검찰에서는 전파 목적의 트위터 계정을 2,270개 추가 확인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2,200만여 건의 트위터 글을 추가로 파악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선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며, 정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청소년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청년들은 대기업 취직을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직장인 분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해 힘쓰고 계십니다.
하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안녕하십니까?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은 사회,
당연한 것을 당연한 듯이 하면 칭찬 받는 사회.
다시 한 번 여러분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화학 12
권민재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배울 점은 배우고, 보완해야 할 점은 보완해서 다수를 위한 제 3의 대안을 창출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은 어떠한 정치적 성향도 띠지 않고 있음을 밝힙니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공익이 사익으로 변질 되어서는 안되며, 보다 하루 빨리 사람답게 사는 삶, 꿈 꾸며 사는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조성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귀중한 시간 내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앙대학교 대자보**


정치적인 공간의 복원을 염원하며

안녕하신가요? 27대 국어국문학과 학생회장 08학번 표석입니다. 이제 연말이고,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기말고사가 코앞입니다. 저처럼 과제를 하지 않아 다급해진 사람도, 느긋하게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새내기 여러분들은 이제 헌내기가 된다는 상실감과 바람처럼 흘러간 대학생활의 허무함, 내년은 잘해봐야지 하는 다짐과 후배들을 맞는다는 두근거림. 만감이 교차하는 시기입니다.

이 공간을 빌어 자축적인 퇴임사를 겸하여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테고,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실 테지만, 저는 학내 커뮤니티에서 운동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학교 공인 운동권 중의 한 명이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2010년 당시 문과대학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학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가 고공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학교에서는 유기정학을, 검찰에서는 기소유예를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남은 임기를 마치고 도망치듯이 군대로 향했습니다.

군대에 가서는 운이 좋았는지 대한민국 1%만 간다는 GOP 근무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근무 투입 직전에 기무대에서 신원 상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바로 뒤에 있는 이른바 FEBA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 내 공식적인 전출 사유는 ‘우울증’으로 명시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우울증으로 대접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가끔 기무대에서 소대장과 분대장에게 ‘건강’하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고 후에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들도 다 한다는 제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질문과 충고들을 들었습니다. ‘후회하지는 않느냐’,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겠느냐’, ‘앞으로는 너 자신도 생각하면서 적당히 해라’는 말들에서부터 ‘꼴.통, 좌.빨, 운동권, 학교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에 ‘중앙대 운동권을 회생 불가능하게 작살냈다’는 평까지 많은 말들을 들었습니다.

먼저,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저는 후회합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래에 타격을 미칠 줄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성찰하고, 반성하며, 발전해나가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자신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세계의 전부인 사람이거나,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저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신을 농락하여 영원히 돌을 산에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는 올리는 행위의 결과를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돌을 다시 올렸습니다. 학교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앞에서, 저희들이 했던 행동은 청룡탕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에 불과했는지 모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조차 사라지는 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애초에 인류의 역사에 비한다면, 이 우주의 영원에 비한다면,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반짝임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순간, 찰나를 위해 우리들은 사람을 만나고, 행복을 기원하며, 조금씩 바동거리며, 인생을 지탱해갑니다.

'연대와 공존'이 아니라 '효율과 수익'이 유일한 진리로 작동하는 오늘날, 타인은 언제든지 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할 객체로 존재합니다. 학점을 위해 타인을 희생되어야 하고, 대학을 위해 학과는 희생되어야 하고, 기업을 위해 노동자는 희생되어야 하고, 국가를 위해 국민은 희생되어야 합니다.
**가톨릭대학교 대자보**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니콜스관 4층 카페에 붙은 대자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학우 여러분

18대 대선으로부터 1년, 날씨가 얼어붙고 있는 요즘 민주주의도 같이 얼어붙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난 대선은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으로 인해 부정선거라는 얼룩이 드리워졌습니다.

18대 대선으로부터 1년, 국민이 반대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과 달리 앞장서서 철도, 가스 등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고 철도 민영화에 대한 파업으로 인해 현재 7,608명의 노동자가 직위해제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스 민영화 법안이 국회 통과 직전에 와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고통받아야 할까요.

18대 대선으로부터 1년, 공약과 민주주의는 모두 후퇴했고 우리의 관심도 함께 후퇴했습니다. 사람 관계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무관심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쩌면 민주주의에 가장 잔인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8대 대선으로부터 1년, 누구나 기회를 얻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이며 우리의 권리를 위해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바다에 물 한 방울 떨어트려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관심은 무관심을 이기고 상식을 비상식을 이기는 날이 오겠지요.

18대 대선으로부터 1년, 무관심으로 인해 세상의 일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진실입니다. 눅눅하고 그늘진 곳보다 밝은 곳을 보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지성인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인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지성인의 몫이며 의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민주 가톨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07 김호종 -

**서울대학교 대자보**

우리의 세상에서 여러분들은 안녕하십니까?

고려대에서 10일 오전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손글씨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그 전날 진행된 하루만의 파업으로,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4000여 명이 직위해제 되었다며 글쓴이는 자보의 서문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묻습니다.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만 하면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연히 안녕하게 인생을 살 것 같았습니다.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해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정치인들 사이의 일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나만 잘 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간혹 들려오는 정치적 이슈들은 그냥 한두 마디 비난을 하며 금세 잊어버렸습니다. 촛불이나 용산 사건도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을 뿐입니다. 그렇게 공부만 열심히 해서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는데 왜인지 해가 가면 갈 수록 숨이 막힙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내가 당장 입고 먹고 자며 발 딛고 삶을 살고 있는 곳이 내가 무관심했던 바로 그 세상이었습니다.

지금도 어쩌면 스스로를 안녕하다고, 혹은 앞으로는 반드시 안녕해질 것이라고 자기위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가 안녕하지 못하다고 인정하는 일은 굉장한 어려움과 어쩌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세상 사는 이야기’와 ‘세상 만드는 이야기’가 과연 정말로 다른 이야기인지,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가 이에 대해 물을 때 어떤 답변을 들려줄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뒤돌아봐야겠습니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것이 명백한데도 대통령에게 사퇴하라는 말 한 마디로 국회의원의 제명이 추진되고 있고,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단 며칠의 파업에 지금까지 임직원의 1/4에 가까운 7000명이 넘게 직위해제 당한 그런 세상은,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리고 만들어온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인지 말입니다. 과연 그들은 소설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하나의 이야기 속의 사람들일 뿐이며 나는 여전히 안녕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세상에서 여러분들은 안녕하신가요?

10 은수





**한양대학교 대자보**


여러분들은...‘안녕들 하십니까?’

조용히 손을 들어 글을 시작합니다.

몇 일전 고려대 학생 한 분께서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자보를 뉴스기사를 통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약 2분도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은 잊혀졌습니다. 철도공사의 직원 7000여명이 직위해제 되었고, 국정원에서 엄청난 양의 트위터를 통해 선거 개입을 했다지만, 여전히 저는 안녕하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렵사리 한양대에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성장의 엔진이라 자부하는 한양대의 학생으로서 매일같이 애국한양이라 쓰여 있는 88계단을 오른다는 것이 마냥 기뻤습니다. 그래서 한양이라는 브랜드에 기대어 내 인생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안녕하다 믿었습니다.

2013년에도 마치 1970년의 전태일처럼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대학입시로 인해 목숨을 던지는 수험생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등록금으로 인해 대출액이 쌓여만 가는 주위 친구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었습니다. 제가 일개 대학생으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그리고 저는 안녕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몇 일전 수업을 마치고 애지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애지문 앞에서 서명을 받고 있던 장애 학우들이 보였습니다. 본관 앞에서 체조부 해체를 반대하는 학우 분들과 학부모님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안녕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야금야금 우리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세상 앞에 침묵하니 어느덧 우리가 비정규직이 되어가고 있었고, 정치를 외면하며 정치에 침묵하니 우리의 민주적 권리가 농락당하고 있었습니다. 학교본부의 독단에 침묵하니 등록금이 오르고 우리의 권리는 사라져갔습니다. 전 두렵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았‘었’다고, 철도를 공공기관에서 운영했‘었’다고, 한양대에 사회대가 있‘었’다고 다음 세대에 전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이 글로 인해 ‘종북’세력이라는 낙인이 생길까 두렵기도 하고 망설여 지기도합니다. 하지만 저는 궁금합니다. 이 두려움이 정녕 저에게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에게도 존재하는지.

여러분들은...‘안녕들 하십니까?’


한양대 사회대 13 호준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