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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감상평 - 스포일러 없음.
게시물ID : movie_220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비를정지
추천 : 14
조회수 : 70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12/29 10:15:56
 
 
정말 오랫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지난번 회사에서 단체로 간 설국열차를 제외하고는 아이가 임신되기 전인 2년전에 갔던게 마지막 극장나들이었다.
 
한살된 아이를 재우고 처가에 맡긴뒤 아내와 극장에 가는데 둘이서만 외출하는게 어색할 지경이었으니 그동안의
 
육아가 대단한 일이긴 했었나보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딱히 설명할 거리도 없는 평범한 구성이었고, 상당히 잘 만든 법정이야기일 뿐이었다.
 
다만 영화가 다루는 사건이 오래전도 아닌 얼마전에 실제로 이나라 땅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 사건의 주인공 중
 
한명이 생각만으로도 우리들의 가슴을 때리는 사람이라 다르게 다가올 뿐이었다.
 
 
 
시대는 혹독했고 힘을 가진자들은 악독했다.
 
더럽고 악랄한 자들은 권력을 이어가며 지배자였고 상식과 정의는 비웃음 당할 뿐이었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계란과 바위의 이야기는 사실 상투적인 표현이다. 계란을 바위에 던져봤자 계란만 깨질뿐 바위는
 
깨지지 않는다는 속담.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나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에 나오는 계란과 바위이야기.
 
노무현 대통령 그 자신도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야 이놈아 너는 뒤로 빠져라.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평범하고 소심한 나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릴뿐일때 그는 대선후보 수락에서 이렇게 답했다.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청년들은 권력에 맞서 권력을 이겨내고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내가 싸운다고.
 
말뿐만 아니라 온몸과 일생을 다 바쳐 죽는 그날까지 불의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이 내질렀던
 
말이었기에, 영화속에서 계란이야기를 들을때 가슴이 시린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변호인 송우석은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고 정당성마저 부여받을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인권변호사의 길로 뛰어든다.
 
그것을 말리던 사무장에게 송우석은 이야기한다. 내 아이는 이런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겠다고.
 
당신은 스스로 편안한 삶을 걷어차는 것이라는 사무장의 한마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선택의 순간이 왔을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솔직히 나는 편한길을 택했을것이다.
 
나하나 뒤로 빠진다고 대세가 바뀌겠는가.부와 명예, 그리고 명분까지 있는 길로 나는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어려운 길로 갔다. 간단한 이유다. 그것이 옳다는 이유였다.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주위에서 항상 박정희는 위대한 영웅이고 전라도놈들은 빨갱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것을 당연한 이야기로만 여기던, 정치란 그저 싸움질이니 관심두지 않는게
 
옳으니 난 중립이다라고 생각하는 어린 학생이었다.
 
 
그런데 대학을 서울로 와서 하숙집에서 만난 전라도 출신 친구들은 말투만 달랐지 모두 선량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고,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일제시대 이후의 역사를 시험을 준비하며 깊이있게 공부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2004년 내손으로 처음 뽑은 나의 대통령이 탄핵당했고 그것을 보란듯이 비웃고 있던 국회의원들의 얼굴을 티비로
 
확인한 날.
 
나는 나와 나의 시대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날저녁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다가 여기서 술을 마실게
 
아니라 뛰어나가 싸우는게 옳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촛불과 마스크를 들고 여의도행 차를 탔었다.
 
그 이후 힘없고 돈없는 서민의 자식이지만 옳지않다고 생각되면 촛불이라도 들었고 비록 앞장서 물대포를 맞지는
 
못했지만 작은 힘이라도 항상 보태고 싶어 광화문으로, 시청으로 갔었었다.
 
 
 
 
이제는 집에서 자고있는 한살짜리 천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사치는 커녕 생활에 찌들어가는데도 이상하게
 
늘어만가는 빚의 이자를 보며, 추운겨울 거리로 나선 사람들에게 행여 내 아이가 굶게될까봐 같이 행동해주지
 
못하는게 항상 미안할 뿐이다.
 
 
 
 
 
 
나와 우리를 위해 대가를 바라지않고 죽을각오로, 실제로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온힘을 다해 싸워주었음에도,
 
사실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분은 강하니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합리화하며 짐짓 모른체 도울 방법을
 
찾지 않았던 내가 너무 비겁하고 미안해서 결국 마지막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며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를 들여다본 순간.
 
영화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이 시리고 무거워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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