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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정대후문에 올라온 2013년 마지막 대자보
게시물ID : sisa_4768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슈가스윗
추천 : 1
조회수 : 69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01 01:30:14
대자보2.jpg

<안녕들하십니까 에필로그>

  안녕들하십니까? 저는 졸업을 앞둔 25살의 남학생입니다. 저는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등록금이 비싸도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나라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켓을 들고, 촛불을 켜며 ‘나의 문제’를 위해 거리로 나서는 학우들에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저 이런 생각만 하고 졸업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부족한 필력이지만 이 대자보를 쓰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서울역에 갔는데, 그곳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안녕들하십니까’ 때문인지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기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시위 많이 하는데, 이젠 뉴스에도 안 나와요. 대단히지 않나보죠.”

  1년이 지났습니다. ‘대통합’을 외쳤던 대통령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신문사 사옥과 노조원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행태에도, 대화를 하지 않는 야만에도, 정부와 여당은 ‘태평천하’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채만식이 살았던 1938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13년.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왜 변한 것이 없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15년이 두 번 지나 다시 돌아온 ‘올드보이’는 우리에게 안부는 묻지 않고, 우리가 누구인지만을 묻고 있습니다.

“종북들 하십니까?”

  안부를 물었던 대학생에게는 정보과 형사들이 다녀가고, 대자보를 붙인 고등학생을 교장이 경찰에게 신고했습니다.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범죄가 되는 이 세상이 과연 안녕한 사회인지 묻고 싶습니다. 작용이 있는 곳에는 반작용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스스로가 최초의 이공계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법칙을 잊으신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비단 박근혜 정부가 불러온 비극은 아닙니다. 고작 안녕하냐는 물음에 터져 나오는 고름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의 이 아픔은 이미 예전부터 곪아왔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다툼에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정의를 이야기하면 잘난척한다고 놀림 받는다. 그저 권력자에게 고개를 숙이면 만사가 편하다.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들이 어느새 우리의 본능, 혹은 미덕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여운이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나라의 큰 씨름이 끝난지 1년이 지났지만 진영, 세대간의 반목은 여전하기만 합니다. ‘안녕들하십니까’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안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마주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화가 필요합니다. 말을 건네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어르신들에게 ‘수구꼴통’이라면 답답해하지만, 정작 그분들과 대화하고자 했던 마음은 있었는지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대통령 보고는 불통정치라면서 우리 스스로는 아버지, 할아버지와 불통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봅시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윤직원 영감’이 되도록 내버려 뒀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대통령은 주먹만을 내밉니다. 우리도 주먹을 냅니다. 하지만 주구장창 주먹만 내면 이 상황이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 대화는 아닙니다. 큰 소리와 작은 소리를 동시에 낼 수 있는 자세, 주먹과 이를 감싸는 보자기를 같이 낼 수 있는 태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안녕들하십니까’를 통해, 나의 아픔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평소에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그분들께 안녕하신지 직접 말을 걸어볼 차례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광장에서 가스통을 돌리시는 어르신도 추운 겨울 가스비 걱정을 마음 한 켠에 갖고 계실 겁니다. 그저 안부 묻듯이 우리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할아버지 연금 이야기, 아버지 직장 이야기, 우리 등록금 이야기... 다가오는 설날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안녕하신지 여쭤봅시다.·무엇 때문에 안녕하지 않은지 얘기도 하고, 서로 이해해보고 공감해 봅시다.

  핀잔 들을 수도 있겠죠. 뺀찌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용기 내어 말을 걸어드립시다. 세대간 화합, 거창한 게 아닙니다. 세대 간의 속삭임,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합니다.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다시 안부를 묻게 되는 때가 오더라도, 그때의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바랍니다.

안녕하길 바랍니다. 새해에는 안녕합시다.

-2013년 마지막 날의 끝자락에서, 학교를 떠나는 지구환경 08학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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