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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돼지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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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okary
추천 : 2
조회수 : 9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01 13:39:26

똥돼지 실종사건  - 심심할 때 읽는 조선후기 이야기

 
1. 아편과 인삼
조선후기사회는 중국의 변화를 빼고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둘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청나라시절, 강희제-옹정제-견륭제 순서대로 치세가 이어지며 크게 융성합니다.

중국인구가 억단위를 헤아리게 된게 이 시절부터입니다. 나라가 안정되니 요리문화도 발전, 드디어 먹을만해집니다. 중국요리를 흔히 청요리라고 부르는 게 이시절부터입니다. 
또한 유흥문화와 아편이 유행합니다.

정력제로 소문나고 아편치료약으로 유명해진 약재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고려인삼

영조도 인삼을 정력제로 맹신하여 한달에 스무근 이상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스무근이면 ㄷㄷㄷㄷ


2. 똥돼지 실종사건 

아시다시피 조선전기와 후기를 구분하는 사건이 임진왜란입니다. 
논밭이 전쟁으로 황폐하게 됩니다. 후기의 계몽군주란 별명의 정조에 와서도 논밭의 면적은 임란전에 비해 90%정도입니다. 전기에 비해 논밭은 오히려 준 것이지요. 

그런데 경제는 더욱 번성합니다. 그건 바로 담배,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이 널리 재배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명나라 때까지는 똥을 거름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개나 돼지 먹이로 쓸 뿐이었죠.
조선 역시 마찬가지
똥은 돼지키우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숙종이 등극할 무렵 
양반들 눈엔 꼴뵈기 싫은 사건들이 마구 등장합니다. 
한성의 똥만 모아서 재벌이 된 쌍놈들이 여럿나오는 거죠.

똥이 상업작물용 거름으로 쓰이면서 거래가 된 것은 물론 가격이 치솟은 겁니다. 
이러니 
돼지에게 똥먹일 일이 없어진 것이죠. 제주는 지금도 똥돼지가 남아있습니다만


3. 화폐경제의 발전과 소송의 시대
인삼 등의 수출로 돈이 마구 들어옵니다. 작물재배가 흔해져 촌사람들도 손에 엽전꽤나 만져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양반보다 더 잘나가는 상놈은 물론 천민들도 부지기수로 생긴거죠.

조선시대 노비는 미국의 노예와 다른 겁니다. 착각하시면 안되유. 
한 예로 정조때 행사에 동원된 견마잡힌 양반도 일당받고 동원되었는데 
말고삐 잡은 사람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양반의 1/4정도 수당을 줬습니다. 노비라고 해서 무임금노동이 아니었습니다. 

노비도 양반이랑 고소고발로 물고 늘어지는 일이 흔했습니다. 
영조때 박문수를 파견했던 일이 민중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배경이 바로 이러한 사회분위기였습니다.
숙종의 평복 미행(변장하고 성밖에 돌아다니는 일)이벤트도 엄청난 호응을 낳았습니다. 


4. 여론의 시대 태동
힘깨나 쓰는 거상들, 부자들이 많아지고
중산층이라 할만한 계층이 생겨납니다. 중인과 서얼의 권력강화는 물론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라고 표현하는 학자들이 많죠. 맹아란 싹이란 말입니다.

민중문화가 크게 흥성하며
민중의 여론 이란 것이 자연스레 정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민중여론의 흐름을 모르고 조선의 당쟁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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