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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이야기 (펌)
게시물ID : freeboard_7396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경sa
추천 : 1
조회수 : 4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08 22:02:37
제가 배낭여행 간 적이 있어요. 거지였거든요 그때. 배낭을 메고 원래는 하얀색 이었으나 더 이상 무슨 색인지 알 수 없게 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죠. 파리에 가면 루브르 박물관이랑 오페라 하우스 사이에 오페라 대로라고 큰 길이 하나 있어요. 그 대로 걷다가 양복점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이전까지 양복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 양복점에 걸린 양복을 보고 그 가게 들어갔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내 것인 양 그 양복을 꺼내서 입었습니다. 그리고 양복만 입으니까 안 어울려서 와이셔츠도 하나 꺼내 입고 넥타이도 하나 꺼내 입고. 이 모든 일을 한 30초 만에, 마치 내 옷을 맡겨 놨다 찾는 거처럼 했어요. 

다 입고 보니 너무 멋진 겁니다. 얘가. 그래서 난생 처음 양복을 사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12만원 정도였어요. 그때제가 두 달 더 있어야 했는데 120몇 만원 남았었어요. 살 수 있겠다 싶어서 사려고 벗으면서 다시 보니까 0이 하나 더 있는 거 에요. 120만원 정도였던거죠. 그때까지 내가 태어나서 샀던 몬든 옷을 합친 거보다 더 비쌌지만 그 옷을 벗고 나올 수가 없었어요. 평상시라면 벗고 나왔겠죠.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니까. 그런데 거울 속에 있던 아이가 너무 멋있어서 저 아이를 두고 나갈 수가 없는 거 에요. 
 
그와 함께 나가야겠다. 그래서 주저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전 재산 인데, 사고 나면 한 푼도 없는데, 아사할 수도 있죠.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이 남은 120만원을 남은 두 달 동안 하루 2만원씩 대단히 합리적으로 계획적으로 쪼개서 잘 소비하면 그럼 그날 하루 굶지는 않고 다음날 굶지 않겠다, 그 다음날도 예측 가능한 잠자리가 있다. 그러면 그날 하루하루 쌓이는 행복이 있죠. 그 행복을 60일치 다 더하면 이 양복 샀을 때 행복보다 큰가? 생각해보니까 아닌 거 같애요. 

그래서 두 번째. 만약 내가 지금 돈 없어서 이 옷을 못 사. 나중에 30대에 돌아와서 그 때 돈이 좀 있을테니까 양복을 사면, 그럼 내가 스물다섯에 놓친 이 행복은 그때 가서 돌아 올 건가? 서른다섯의 행복은 서른다섯의 행복인거죠. 스물다섯의 행복은 그때 사라진 겁니다. 

세 번째. 두 달은 아직 안 왔잖아요. 그렇죠. 아직 안 왔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그 양복을 샀어요. 120만원을 주고 그 양복을 사서 그걸 입고 파리에 룩상부르 공원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그 양복은 보스였어요. 당시만 해도 이름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두목. 뭐야 촌스럽게. 그러나 제 생각에 룩상부르 공원에서 노숙한 사람이 입었던 양복으로는 최고가가 아니었을까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낫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직전까진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어떡하나 이제. 아침에 돈은 5만원 남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행 다니다가 숙소 삐끼를 하면 되겠단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거 아르바이트를 하자. 로마를 갔습니다. 당장. 펜션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돈 내고 나오면서 내가 지금 갈수도 있고, 역으로 가서 손님 세 명 끌고 오면 그 방에 나도 재워줘라 공짜로. 만약에 다섯 명 이상 데리고 오면 한 사람 추가분부터 나를 얼마를 줘라. 그리고 아무도 못 데리고 오면 나는 그냥 가겠다. 주인 입장에선 와이낫이잖아요? 

역으로 가서 제 생각엔 최소 세 명은 데리고 오겠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날 한 시간 만에 30명 데리고 왔어요. 왜. 난 보스를 입었잖아. 거기서 일주일 있으면서 관계가 역전 됐어요. 호텔 매니저가 제발 떠나지 말라고 했죠. 그 당시 전 수중에 50만원 생겼습니다. 이 50만원이 생기자 내가 왜 남의 장사를 해주고 있나 했어요. 
 
그때 떠오른 게 뭐였냐면 91년이었는데 동부권 개방 직후였어요. 당시에는 숙소가 부족했습니다. 헝가리 체코 이런 나라들이. 그래서 체코로 갔어요. 체코에는 주인들이 살다가 집을 시즌에 통채로 내놓는 게 있었어요. 호텔이나 민박이 부족하니까. 그런 집 하나를 골라서 그날 하루 묵고, 일주일 동안 쓰겠다고 말하며 50만원을 줬어요. 그리고 2주째도 내가 50만원 당신한테 줄 수 있으면 한 달 계약을 하자고 했죠. 하루하루 다른 사람과 계약하는 것보다 한 번에 한사람한테 주는 게 편하니까, 저는 그렇게 그 집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이번에는 동양인만 상대하지 말고 서양인도 잡아보자. 그리고 역으로 가서 반반한 남자 놈 하나 잡았어. 내가 한 달 동안 널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줄테니 내 밑에서 일해라. 안할 이유가 없잖아. 난 보스를 입었는데. 그래서 그 영국 친구를 고용하고 둘이 알바를 시작했죠. 대박이 났습니다. 일단 다른 데 보다 가격이 쌌고 젊었으니까요. 한 달 정도 삐끼 사장을 했는데 매일 잘 먹고 잘 쓰고 그러고도 제가 체코를 떠나는 날 수중에 천만원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모든 건 보스를 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에요

제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삶의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당장 행복해져야 된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해요. 지금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도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고 열심히 뭔가를 모으거나 준비하거나 미뤄두거나 해서 나중에 행복해 질 거야. 행복이란 게 마치 적금을 들 수 있고 나중에 인출해 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때의 행복은 그 순간에 영원히 사라지는 거 에요. 그 날로 돌아가서 그때 행복을 찾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당장 행복해 지셔야 하는 거죠. 

정리하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내 욕망이 뭔지 생각하고 대면해야 되요.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되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찾았으면 그 일을 그냥해요.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실패도 하고 작은 성공도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 당장 시작해야 되는 겁니다. 행복이란 게 저축하거나 적금 들었다가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왜 지금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걸 유보해 두냐고. 미쳤어? 그러면 그게 잘 사는 겁니다. 

잘 사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 인거죠. 훌륭한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 아니고. 

제가 할 얘기는 여기까지 끝인데 그렇게 살면 그럼 어떻게 되는거냐. 이런 얘기는 해드릴게요. 어떤 기관에서 전 세계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하는 40대의 사람들을 조사 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한 가지 있었어요. 한 가지 일을 20대부터 시작해서 40대까지 꾸준히 해서 40대에 성공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 전혀 상관도 없는 일들을 많이 했답니다. 무작위로. 

그 사람들은 그 순간에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주저 없이 뛰어든 겁니다. 그러다가 아니면 다른 거 하고, 또 아니면 다른 거 하고. 미루지 않았던 거 에요. 그러다 30대 중반, 어느 시점쯤에서 자기가 잘하던 일을 깨달은 거죠. 그로부터 10년간 그 일을 했더니, 결과적으로 유명해져 있더라는 겁니다. 정해진 보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비정규직이에요. 

사람들은 계획들을 참 많이 해요. 계획만큼 웃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될 리가 없어요.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전 무신론자지만, 가장 사람에 대해서 비웃을 게 그 부분입니다. ‘계획을 세웠어 이것들이.’ 그렇게 될 리가 없죠. 행복한대로, 닥치는 대로 사세요. 욕망의 주인이 되십시오. 어쨌든 행복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글번호 1256609   글쓴이 브이뽀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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