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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야식 일기 - 돼지국밥
게시물ID : cook_763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이오네요
추천 : 7
조회수 : 125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1/13 06:28:39
야식 일기.

아까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저녁을 놓히고, 결국 과자 한 통으로 배고픔을 달랬다.

그 탓인지 밤이 깊어갈 수록 배가 고파와 견딜 수 가 없어 찬장이나 냉장고를 뒤져 보았지만, 야심한 새벽에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라면은 몇 개 있었지만, 최근 며칠간 야식으로 주구장창 먹어온 탓에 차라리 굶으면 굶었지 라면을 끓이기는 싫었다.

결국 편의점에 가기로 하고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 쓰고 깃이 높은 패딩을 입었다.

집 근처에는 새벽 영업을 하지 않는 슈퍼나 할인마트를 제외하고 편의점이 두 개가 있는데, 한군데는 편의점이면서 열시면 문을 닫고 나머지 한군데는 야간 알바가 구해지지 않아 종종 새벽장사를 하지 않았다.

이외에는 우리집을 중심으로 서로 대칭이 되고 각각 왕복 1km가 조금 안되는 위치에, 그러니까 서로 1km 떨어진, 편의점이 하나 씩 있었다.

배가 고파 편의점을 가는 것이지만 추운 새벽에 그 거리를 걷는 것은 도저히 내키지가 않아서 야간알바가 잘 구해지지 않는 그 편의점에 확률을 걸어보기로 하고 문을 나섰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던 중, 문득 집근처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음식집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야식이라면 편의점에서 도시락 같은 걸 사먹느니 24시간 분식집에서 김밥 몇 줄 사 먹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자 퍼뜩 떠오르는 것이 뜨끈한 돼지국밥이었다. 

돼지 육수는 하루 내내 끓이기 때문인지 유달리도 돼지국밥 집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잦았다.

이 동네에 돼지 국밥 집은 두 곳으로, 두군데 모두 확실히 24시간 영업을 했다.

돼지국밥을 취급하는 가게는 네군데 정도 되었지만 두군데는 기사식당으로 백반을 주 메뉴로 하는 터라 기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가 볼 만한 돼지국밥집은 두군 데로, 한 곳은 최근 몇년 들어 부산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프랜차이즈이고 나머지 한 곳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일반 식당이었다.

도보 한가운데서 잠깐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해 보았지만, 발걸음은 어느새 프랜차이즈가 아닌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에서 더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이전에 친구와 함께 밤새 놀다가 헤어지기 전에 잠깐 끼니를 하러 갔던 기억이 있어서이다.

당시에는 꽤나 취한 상태라 정확히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흐릿한 기억으로는 이곳의 돼지국밥 맛이 썩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멀지 않은 거리었기에 금세 가게 앞에 당도했다.

영세 식당 치고는 규모가 꽤 되어 아마 200석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은 공간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석유 난로 옆 탁자에 앉으며 '내장 하나 주세요.'를 외쳤다.

석유 난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아저씨 한분이서 옆에 소주 한병을 두고 새벽부터 반주를 드시고 계셨다.

돼지국밥에 소주라‥‥, 확실히 속을 뜨뜻하게 데우기에도 좋고 새벽 해장술로도 좋겠지.

그 생각에 나도 소주 한병을 시킬까 했지만 야식을 먹고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 그만두었다.

세 무리 정도가 더 들어오고 나서야 내가 시킨 내장 국밥이 나왔다.

일반적인 돼지 국밥이 돼지 수육을 고명으로 넣는 데 반해 내장 국밥은 순대를 시키면 으레 함께 주는 돼지 내장들을 고명으로 넣어 주는데, 이 내장의 쫄깃한 맛이 좋아 돼지 국밥집에 가면 종종 내장 국밥을 시키게 된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이 숟가락이 국밥 그릇에 넣어진 채로 나왔다.

궁금증에 숟가락을 들어보니 다대기가 있었다.

탁자에 올려진 수저통에 젓가락만 가득한 것을 보니 이 가게는 다데기를 푼 수저를 통채로 국밥 그릇에 담아 주는 모양이다.

수저에 묻어 올라온 다대기를 보니 붉은 색이 연하고 누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것이 이 된장을 주 재료로 쓰고 거기에 곱게 간 고춧가루로 매운 맛을 더한 것 같았다.

또 깨도 많이 들어간 것이 일반적인 다대기와 달라 아무래도 이 다대기가 이 가게의 비법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곧이어 나는 다대기를 국물에 풀고 정구지¹ 무침을 듬뿍 넣은 뒤 멸치젓갈로 입맛에 맞게 간을 보았다.

간을 보며 맛본 국물은 기대대로 다대기의 특성이 잘 묻어나와 상당히 구수했다.

돼지 사골은 누린내가 심한 편이라 대다수의 돼지 국밥집들이 매운 향이 강한 다대기를 사용해 누린내를 잡는데 반해 된장과 깨를 많이 쓴 덕에 다른 집에서 느끼기 힘든 독창적인 맛이 났다.

국물 또한 적당히 불투명하고 감칠맛이 도는 것이 새 사골을 사용하여 기름을 수차례 건져내어 맑게 우려낸 국물을 2차로 오래된 사골을 사용하여 다시 우려낸 것으로 보였다.

돼지 육수란 새 사골로 우려낼 경우 국물이 연하기 때문에 돼지로 끓인 설렁탕 처럼 되기 쉽상이라 새 사골에서 우려낸 육수에 여러번 육수를 우린 사골을 넣어 재차 육수를 우려내야만 제대로된 진한 돼지 육수를 만들 수 있다.

대개 돼지 육수를 사용하는 많은 음식집들이 맛집이 되냐 되지 못하냐가 이 돼지 육수를 우려내는 것에서 차이가 날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더 진한 것을 좋아하지만, 더 진한 것은 돼지 비린내 또한 진해지기에 된장과 깨를 사용해 잡내를 잡기에는 이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간단히 야식을 먹으러 나왔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맛을 보게 되었다.

횡재다.

이전에는 술에 취해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맛을 지금 다시 느껴보니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돼지국밥들과 비교하면, 지금은 없어진 집들을 제외하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 같았다.

토렴²을 해 주지 않는 것이 상당히 아쉬웠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 맛을 보자 아무래도 빈 속인데다 더 배가 고파져 급하게 두덩이나 나온 소면과 밥을 국밥에 넣었다.

그렇게 몇 숟갈을 퍼 먹고 나서야 밑반찬에 눈이 갔다.

국밥에 넣을 정구지 무침과 굵게 썬 무로 담근 깍두기와 새로 무친 김치, 마늘과 양파와 풋고추와 이를 찍어 먹을 양념된장으로 으레 돼지 국밥집들에서 내놓는 것들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깍두기와 김치로 이 또한 집집 마다 다 특색이 다른데, 깍두기 대신 시원 달달한 석박지와 적당히 익어 매콤 새콤한 김치를 내놓는 집이 있는가 하면 신 맛이 날 정도로 푹 익힌 깍두기와 매번 새로 담근 김치를 내놓는 집도 있다.

내가 아는 한 국밥집은 아주 진한 육수를 쓰는 대신 새콤한 김치와 시원한 석박지로 느끼한 맛을 반감시키는 식으로, 김치 두가지 만으로 국밥의 맛을 보완했다.

이 집의 깍두기는 엄지 한마디 정도 크기로 깍두기 치고는 큼직하게 썬 무를 사용했고 달달한 편이면서도 적당히 익어 새콤한 맛이 났다.

김치는 요즘 식당에서는 보기 힘든 경남식 김치로, 젖갈과 마늘을 많이 넣은 양념에다가 매일 새로 김치를 담그는 듯 입에 넣자 마자 퍼지는 내음과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았다.

구수한 것을 주로 삼다보니 돼지 육수가 사뭇 더 느끼하게 느껴질 질 수 있는 국물에 새콤한 깍두기가 나온것은 만족스러웠지만, 김치는 수육과 더 궁합이 좋을 것 같아 아쉬웠다.

정신 없이 먹다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반 이상을 먹은 뒤였다.

역시 소주를 한병 시킬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어 풋고추를 씹으며 마음을 달랬다.

석유난로 건너편에 계신 아저씨는 기분이 좋으신지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자꾸만 이뻐지는 것 같다며 농을 걸었다.

나는 물을 마시며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국밥으로 주목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상당히 많이 먹었던 터라 금세 내용물이 사라져 갔고, 다음엔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와서 반주를 하자는 말로 스스로를 달랬다.

이윽고 마지막 한 수저를 푼 뒤 물을 마셔 입가심을 한뒤 일어날 때가 왔다.

우연찮게도 석유난로 맞은편 아저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물을 한전 더 마시며 그 아저씨가 계산을 하고 나가는 것을 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나오자 주차장의 세단 한대에 시동이 걸려 놀라 바라보자 운적석에 그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1. 정구지: 부추의 사투리
2. 토렴: 밥을 끓는 국물에 넣었다 건지기를 반복하여 밥알 마다 국물이 잘 배어들게하고 국물과 밥의 온도를 같게 만들어 국물과 밥의 일체감을 늘려주는 것. 국물에 밥이 말려진 상태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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