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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공적 공간'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게시물ID : sisa_4819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1
조회수 : 23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15 23:03:33

Written by 무명논객


통상적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정치적 레토릭을 구사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일정한 규범으로 묶여 있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주권을 가진 인민으로서 공적 공간으로 호출되고, 그로부터 우리의 권리가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근대 이후 성립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요건들은 바로 이렇게 '공적 공간'으로 호출된 주권자들이 일정한 규범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요약해도 무방할 것이다. 최장집 선생님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끊임 없는 민주화"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이 테제가 보다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공적 공간의 끊임 없는 확대"라는 조건이 덧붙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본 일이 있다.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바(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20140113074907396)에 따르면, 폴란드에서 시민들이 '바지/치마 안 입고 지하철 타기'라는 운동이 일종의 문화적 현상으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공공 장소인 지하철에서, '바지를 입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은, 오늘날 공공장소조차 사적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는데, 스웨덴에서 벌어진 일이다. 버스 안에서 한 커플이 성관계를 맺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워하였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관심을 끊었다는 일화다. 공적 장소에서, 사적 행위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의문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위 두 사례는 오늘날 공적 공간이 얼마나 붕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단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누구나 개인주의를 좋아한다. 개인의 이익이 있으며, 개인의 공간이 있고, 프라이버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개인적 권리'들은 공적 공간에서는 잠시 유보되어야 한다. 가령,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방에 틀어박혀 포르노를 볼 수도 있고, 마음껏 울 수도 있고, 기타를 치건 토끼 인형을 쥐어패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 공간에서 그러한 '개인적 권리'를 행사한다면 당장 "공공장소를 존중하지 않는다"라는 비난이 되돌아올 것이다. 공공 장소는,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타인과 나의 관계가 성립하게 되는 타자성의 공간이므로, 우리는 서로가 타자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나의 개인적 권리가 있다 할지라도, 타자성이 성립하게 된다면 우리는 잠시 개인적 욕망을 억누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공적 공간이 무너지는만큼 민주주의가 유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디서나 사적 공간을 향유한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서핑하며 사적 공간을 유희하게 된다.(스마트폰의 사용과 인터넷 서핑이 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공적 공간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 우리가 논제를 던지고,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며, 문제를 이끌어내는 사유를 전개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고 고민하는 것이 오늘날 던져진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공적인 언어들은 모두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우덜식 민주주의!"는 그 단편적인 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불러 일으킨 훈풍도, 정치적 영감을 남겼다기보다는 소비되고 조롱되는 지경에 빠진 것 같다. 광고조차 "안녕들하십니까?"를 패러디하여 사용한다. 공적 언어로 표현된 질문을 사적 이윤의 논리로 전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공적 공간이 무너졌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공적 공간'이 소멸되는 딱 그만큼, 우리는 '공공의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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