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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의 아파트 (부동산의 역사)
게시물ID : economy_54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긴앙돼형아
추천 : 6
조회수 : 171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22 19:35:47
dealist.egloos.com/4892884

예전에 한국의 아파트는 닭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죠, 개성없는 네모 반듯한 모양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편리하다는 것 때문에 아파트를 선호했고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섰지요. 덕분에 도시 미관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변했습니다. 헌데 이제 돈이 좀 생기고 나름 생활의 여유를 찾다보니 아파트도 개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더군요. 서울시에서 같은 모양의 아파트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고 고향가는 동부 터미널에 들어오다 보니 다리 건너에 있던 아파트 (어떤 아파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의 모양이 마치 평면 삼각형을 닮은 듯한 모양도 있더군요. 정말 많은 변화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생긴것은 꽤나 오래전이죠. 이미 오래전 부터 인간은 절벽 바위에다가 굴을 뚫고 아파트식으로 여러 가구가 모여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또 중국의 복건성 서남 지역이나 광동의 동북 지역에는 토루라고 불리는 원형 가옥이 있는데 이것도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아파트와 같은 형식이죠. (이 형식은 최근 건축 디자이너들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현대적 건축물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국 소수민족의 토루형 주거>


헌데 로마시대에도 아파트가 있었어요. 이쪽은 정말 현대의 아파트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그런 건물이었죠. 이 아파트를 인술라(Insulae)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로마인들은 인술라라는 건물을 처음부터 짓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로마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은 네모난 단층 가정집에 중간에 빛이 들어오는 정원을 갖춘 그런 형식의 집이 대부분이었죠. 헌데 로마가 영토를 넓히고 외부에서 많은 부가 들어오자 자영농이 몰락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불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도시는 점점 비대해 지기 시작한거죠.

헌데 도시라는 것이 성곽을 둘러치고 있기 때문에 거주할 수 있는 인구의 수는 한정되기 마련입니다. 헌데 인구는 늘어나요. 이러다 보니 집 값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들은 존재했거든요. 그리고 집 주인들은 비싼 땅값을 부담하며 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집의 층수를 올린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벽돌과 회를 사용하여 단단하고 큰 건물을 올릴 수 있었거든요.
<위는 로마시대 아파트 '인술라' 아래는 일반적인 로마 단독주택>


그렇다면 이 인술라는 어떤 형태였을까요? 대부분의 인술라는 보통 3층 이상 7층 이하의 건물이었죠. 왜 7층 이상을 지을 수 없었는가를 살펴보면 철골 콘크리트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9층 이상의 집도 있었다고 하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네로 황제 시절을 거치면서 대략 17~20미터 정도로 제한되었죠. 왜냐하면 벽돌 구조는 고층으로 올라가면서 상층의 압력을 부담하지 못하여 구조 자체가 붕괴되는 위험성이 있었고 또 위로 올라가면 다른 조건들 (바람, 지진 등)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더 높아지기 때문이죠.

물론 집 주인들은 어떻게 되든 말든 더 높은 층수를 지어 더 많은 사람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높은 층수는 사람이 더 들어가는데다가 요즘처럼 건물이 붕괴해서 인사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로마의 유명한 법률가이자 웅변가인 키케로는 자신의 저서에서 악덕 건축업자가 부실로 지은 인술라가 무너지자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올려 더 많은 월세를 받아야 겠다며 기뻐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인술라는 보통 1층은 상가가 들어서고 2층 부터 주거 공간이 되었습니다. 2~3층 까지는 벽돌로 만든 건축물인 경우가 많았고 4층 부터는 중량을 줄이기 위해 목재로 올리는 경우도 있었죠. 현대로 치면 주상복합 아파트가 당시 인술라의 일반적인 형태였습니다. 당시 인술라 아파트는 2층이 가장 고가로 거래되었죠. 요즘에는 3층 정도나 완전 고층이 인기라고 하던데 이유는 요즘이나 그때나 비슷합니다. 2층 건물은 계단을 많이 올라갈 필요도 없고 물과 상점에 가기도 편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사실 당시에는 현대처럼 수도 시설이 집집마다 들어갈 수는 없었거든요. 로마가 관개 시설에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건 당시 기준이니까요. 로마에는 곳곳마다 우물이나 분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식수나 여타 용수로 이 물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인술라에는 취사 시설이 없었는데 집에 취사 시설이 있으면 화재의 위험성도 높은데다가 당시 중하류층의 사람들의 생활은 집에서 직접 밥을 해먹는 것이 아니라 빵가게 등에서 먹을 것을 사와서 먹는 형태였습니다.

이들이 사먹은 음식들의 면면은 그냥 화덕에 구운 빵 부터 이시시움 오멘타툼같은 일종의 햄버거 같은 것들 그리고 육류나 와인등을 구입했습니다. 그래서 이 인술라의 1층에는 거의 대부분 빵집과 식료품집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물론 아예 주방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물에 따라서는 2층에 공동 취사시설을 갖춰 놓은 고급형(?) 형태도 존재했으니까요.

이정도면 2층에 살만하겠죠? 물론 이것이 부족하다면 다른 하나의 더 큰 잇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2층의 면적이 다른 상층에 비해 더 컸다는 거죠. 당시 건축 기술 여건상 모든 층을 넓은 형태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높이도 낮아지고 넓이도 줄어들었죠. 그래야 하중을 버틸 수 있으니까요. 보통 2층의 경우 열 다섯평 정도인데 반해 위층으로 올라가면 점점 줄어들어 일곱평 이하였다고 하는군요. 어라? 이정도면 어느정도 살만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시죠?


<로마시대에는 요렇게 먹고 살았다네요>


그러나!! 당시 인술라에는 3~4 층 정도 되는 건물에 대략 40명 정도가 몰려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한 사람이 차지하는 면적은 고시원 방 정도 이상이 나올 수가 없는거죠. 거기다 바닥은 목재로 되어있고 위로 올라가면 천장도 낮아졌어요 그리고 바닥이 목재인 만큼 방음도 별로였죠. 그러니 여기가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죠. :D


그리고 당시 인술라에는 오늘날의 아파트처럼 여러가지 편의시설(?)들이 존재했습니다. 1층에 빵집과 고깃집 등의 기초적인 생필품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가 있었고 주변에는 세탁소와 목욕탕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세탁소는 더러운 강물과 낮은 수량 때문에 거의 필수였는데 세탁소 주인들은 인술라 주민들이 소변을 누면 그것을 수집해 와서 정제해 거기서 얻은 암모니아로 옷을 세탁했죠. 얼룩은 이 소변으로 해결하고 표백과 살균은 유황을 태워 그 연기로 해결했습니다.

로마의 공중 목욕탕이야 워낙 유명하니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정도인데 남녀 공용이기는 하지만 보통 여자는 오전에 남자는 오후에 이 시설을 이용했지요. 로마는 시민복지(?)를 위해 이 목욕탕 시설을 꽤나 저렴하게 대중에게 공급했습니다. 지금 돈으로 500원 정도면 로마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로마 목욕탕은 바닥이 따뜻하게 유지했는데 이것을 만드는 방식이 우리의 온돌 방식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목욕탕 이야기만 해도 포스팅 하나 꺼리는 나올 정도로 로마 목욕탕은 유명하죠)

참! 이런 상황이라면 화장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인술라에 화장실이 포함되어 있을리 만무하죠. 로마 시민들은 공동 화장실을 이용했습니다. (로마 화장실은 제가 예전에 했던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이 화장실은 칸막이도 없고 간격도 촘촘한 형식이었습니다. 다만 로마의 뛰어난 관개 시설을 이용해서 똥오줌을 물로 흘리는 시스템은 가능했지요. 
<로마 화장실과 이용모습 그림... 똥누면서 담소를~>


그리고 이렇게 인구가 늘고 건물이 밀집되면 자연스럽게 화재나 범죄의 위험이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비록 중하층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아예 가진 것이 없는 빈민이 아닌만큼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소방서는 당연히 존재하겠고 거기다 최근에 자주 보이는 개인 보안업체도 있었습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인술라 앞에 경비를 세워주거나 순찰을 돌아주는 방식이었죠. 물론 이것은 어느정도 돈이 있는 중산층의 아파트의 이야기입니다. 서민들 아파트에 이런건 사치겠죠.

그리고 이런 보안업체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나운 개를 길러 자신의 집을 보호했는데 이런 개가 있는 인술라 입구에는 모자이크로 개의 그림과 함께 카베 카눔(Cave Canem)이라는 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개조심" 이라는 표지이지요. :D
<바닥에 있는 로마식 '개조심' 경고문. 위에는 좀 사나운놈 아래는 좀 귀여븐놈>


사실 전 예전에 통일 신라 경주의 인구를 오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면적으로는 불가능 해도 상업 도시인 만큼 부양 능력이 있고 감포로 이어지는 항구와 연결되는 긴 면적에 사람들이 살면 그만한 인구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고대 도시들에 대한 것을 파고들어 보면 단순히 살 면적과 식량만이 있다고 되는게 아니었습니다. 인구가 백만이라면 백만에 따르는 각종 부대 시설물들이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런 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결국 제 생각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고대나 지금이나 사람의 생활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더군요. 쓰는 물건이 늘어나고 종류가 다양해 지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옛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다보면 참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한두번이 아니네요. :D

http://idealist.egloos.com/viewer/4892884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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