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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머브그누 이야기
게시물ID : readers_116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잉어킹크랩
추천 : 0
조회수 : 3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02 23:21:54
높아진 하늘 아래로 뜨거운 온기를 실은 산들바람이 내 옆으로 흘러간다.
나는 태양을 찌를 듯 삐죽히 솟아있는 등대위에서 구름속을 뚫어져라 바라 보았다.
새파랗게 세상을 메운 하늘에 곰팡이처럼 피어있는 구름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둥둥 떠가며 제 갈 길로 걸음을 재촉했다.

" 으 더워.. "

 태양은 리나의 하늘 한 가운데서 맹렬하게 빛의 화살들을 내리 쏟아 부었다. 뿌연 구름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것이 이 계절의 태양을 이길수 있을리가 없다. 날은 한달 째 과도한 습기를 머금은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리나의 몸 위로 운디가 비를 뿌리지 않은지 벌써 두달 째다. 비축 되어있던 물탱크의 물은 이제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 먹빛으로 변한 비구름은 땅위로 수십덩이나 떨어 졌지만, 구름 제련으로 짜낼 수 있는 물로는 리나 위의 모든 사람들이 목을 축일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의 속도 모른 채 운디들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 또 이러네.. "

 고글 안으로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비는 오지 않지만 공기 중의 수분은 여전히 분에 넘칠 정도다. 4월이면 리나와 에신 사이의 구름 섬에서 만들어지는 증기구름들이 동서풍을 타고 리나로 불어 들어오는데, 이는 리나를 찾아온 지옥의 계절의 시작을 말한다. 여름은 길고 그 긺은 리나의 후손들을 지치게 끔 만들며, 갈증과 더위가 떨치는 맹위는 아빠에게 들었던 신화 속 울루르의 노래 소리가 되어 몇몇 후손들을 바다 속으로 이끈다. 에신의 저주는 몇 백 년 째. 이렇게 그의 후손과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너무 덥다..

응?

" 엇? 이얏호! 제덴! 3시 방향 상공에이요!! "

" 운디 떼야? 장난 치는 거면 혼난다 신! "

 나와 같은 마을의 등대지기인 제덴이다. 그는 금빛 머리칼을 헤집고 있던 고글을 급히 내리고 내가 말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습기가 찬 고글 너머로 구름보다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우기 시작했다.

" 거봐요! 드디어 첫 발견이라고요! "

" 천둥탄은? 쐈어? "
  
" 아 맞다 "

" 으이구 화상아. "

 제덴은 나에게 소리가 날 정도로 딱밤을 세게 때리고는 주머니의 구름 총을 꺼내 하늘로 천둥탄을 쏘았다. 천둥구름을 제련해 만든 천둥탄은 운디를 유혹하는 소리를 뿜어냈다.

 우르르르릉 우르릉..

" 신! 뭐해 얼른 내려가지 않고, 이제 운디들이 급강하 할꺼야. 돌풍에 휩쓸리고 싶어? "

" 아, 응! 몇번을 해도 적응이 안되네, "

 나는 등대 꼭대기에서 난간을 아래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들이 조그만 점처럼 보이는데.. 으 현기증! 떨어지면 죽겠지? 제덴은 내 손을 잡고 등대를 내려 가기 시작했다. 텅텅거리는 철계단은 무식하게 튼튼해서 운디의 급강하가 만든 돌풍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딴 생각을 하고 있던게 들통이 났는지 제덴은 내 팔을 더 세게 끌어 당겼다. 제덴과 나는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철계단을 내려왔다. 숨이 턱 끝까지 찰 정도의 길이. 떨어진다면 진짜 죽을거야. 

 점들이 점점 커져 나보다 더 커다랗게 변할 때 쯤 내 소꿉 친구 짐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다.  

" 제덴! 신! "

 처음에는 귓바퀴를 맴돌던 소리가 고막에 까지 닿자 내가 첫발견을 하고 등대를 내려왔다는 게 새삼 자랑스러워 졌다.

" 글쎄 이녀석 때문에 큰일 날 뻔 했다고. 발견을 하고도 천둥탄을 안쏘면 어쩌자는거야?  "

 등대에서 내려오자 마자 제덴은 짐버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 휴, 정신 안 차릴래 신! "

" 에헤 미안해요 제덴.  "

 제덴의 잔소리는 언제나 듣기가 싫다니깐.

 둘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 순간 일식이라도 일어난 것 처럼 주변이 어두워지고 공간이 갈라지는 커다란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운디떼다.

 내가 기억하는 그 첫 모습은 다섯살 오늘 저녁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유난히 날이 좋아 짐버와 쥬리나와 함께 하루 종일 칼 싸움이나 구름 피리를 불어 조형을 만드는 연습을 했었다. 마지막으로 온몸을 시원하게 적실 물을 찾아 들린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이글거리던 태양이 그 몸을 식힐 곳을 찾아 수평선 아래로 빠져 들어 갈 때, 살라만의 피부색 같던 노을 너머로 바다속에서나 휘두를 수 있엇던 지느러미를 대신해 그 거대한 신체의 몇 배나 되는 날개를 저으며 날아오는 고래를 보았다. 그때 처음 운디를 보았다.
극지방의 크레바스보다 더 거대한 숨구멍에서 수억방울의 물방울을 내 뿜으며 펼친 날개로 하늘을 가득 메우던 신비로움.
단거리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뛰었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동경 또는 공포. 또는.. 단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슬픔.

" 좋아! 내려왔구나, 짐버! 얼른 마을로 가서 전해! "

 제덴은 그 거대함에도 주눅이 들지 않았는지 스스로의 본분에 열과 성을 다했다.(난 등대지기 일을 한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운디를 볼 때마다 심장이 뛴다.)

 짐버는 축복받은 다리를 쉼 없이 놀려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난 그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이제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운디들의 수를 보아 앞으로 세달은 제덴과 나를 등대로 보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그럭저럭 잘했다 신! 드디어 첫발견을 해냈구나. 마무리는 아쉽지만. "

" 뭐 어때요, 이제 저도 진짜 등대지기가 된 거라고요! 이 축복받은 눈으로! "

" 으이구.. "

 내가 이 등대지기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운디에 대한 동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타고난 시력 덕분이다. 무언가 특출난 재능이나 재주를 가진 이들은 리나에게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우연찮게 그 축복을 받은 거다. 그래서 아주 먼 곳에서 비행하는 운디를 처음 발견해 마을로 끌고 운디가 뿌리는 비를 받을 수 있게끔 준비 시키는 등대지기를 지원했다.

" 하하! 이제 저 혼자도 문제 없어요! "

 아직 신출 내기긴 하지만 마을의 그 누구도, 독수리나 매도! 나의 눈을 따라오진 못할 것이다. 딱 한명, 제덴을 빼고는.

" 마수걸이 주제에.. 그래 그래,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다 이놈아. "

"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요 제덴, "

 제덴은 아주 어렸을 때 부터 등대지기 일을 했다고 했다. 고아였던 제덴은 등대지기 할아버지가 주워 다가 길렀는데, 마침 제덴은 리나의 축복을 받은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본인이 알게 된 건 무려 스무살이 넘어서라고 한다. 등대지기 할아버지가 돌풍에 휩쓸려 등대 밑으로 떨어지던 날이었다. 

" 돌풍은 항상 조심해야돼, 알겠냐 이 화상아. "

 혼자의 힘으로 수백번의 발견을 해내고, 운디를 이끌었다.
난 아무리 노력해도 제덴은 이길 수 없을것이다. 내가 제덴만큼 자라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 어어? 이렇게나 낮게 나는 운디는 오랜만인데? "

 운디가 등대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날개를 펼친 운디는 비구름이라도 된 것처럼 리나 위로 떨어질 듯이 저공비행해 지나가고, 등대 위로 떨어진 것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물이었다. 마실수 있는 진짜 물.(지하수는 마실 수 없다.) 그 거대한 몸이 하늘을 뒤덮어 짙은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리나의 메마른 몸 위로 수많은 물방울 들이 내려 왔다. 우리를 에신의 저주에서 해방시켜주는 유일무이한 이 생명체는 채 한시간이 되지 않는 시간동안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고 무지개가 뜬 하늘 너머로 사라져 갔다. 그 장관을 넋 놓고 바라보던 나는 제덴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 예? 뭐라고 했어요? "

" 이제 집에 가보라고, 너희 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다. "

제덴은 조금 쌀쌀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고글을 벗은 그의 눈은 처음 봤을 땐 맹금류의 그것만큼이나 강인하고 날카로워 보여서 무섭고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제덴은 훨씬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두번째로 동경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제덴 일 것이다. 

" 쳐다보긴 뭘 쳐다봐. 아 참. "

제덴은 기지개를 한번 펴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검집을 째로 내게 건넸다. 난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려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던 모양인지 제덴은 내 얼굴을 보며 빙긋 웃었다.

" 선물이 맘에 들면 좋겠는데, 오늘 생일이라며? "

" 아니, 근데 이건 제덴 아저씨 할아버지가 주신 구름 검 이랬잖아요. "

" 바보야, 그런 중요한 물걸은 열다섯짜리 꼬마한테 맡겨 놓을 순 없지.
그것보다 한번 칼을 꺼내 봐, 그깟 구름 검보다 훨씬 놀라운 게 들어있을걸? "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가 제덴에게 들린다면 제덴은 쫄보니 꼬맹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또 한바탕 나를 놀리겠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검집을 받아 들었다.

" 생일 선물이기도 하고, 첫 발견 때 내가 네게 주려고 했던 선물 이기도 하지. "

 나는 손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함에 놀랐다. 구름검과는 다르다. 이 무게는 확실히 구름으로 제련한 검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조심스레 검 자루를 잡아당겨 검집 밖으로 그 검을 꺼냈다. 스르릉 거리는 소리가 손 끝을 타고 귓가로 전해졌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 어때? 15살 정도면 자기몸은 자기가 지킬 줄 알아야지? 내가 특별히 널 위해서 올든씨에게 부탁해서 만들었지. 요새 철검은 굉장히 귀하다고! 너도 알고 있지? "

 한없이 차가운 빛을 뿜는 단단히 제련된 철.
내얼굴이 비칠 정도로 날이 잘 벼려져 있다. 웬만한 몬스터는 칼만 꺼내도 달아나겠는데?!

" 화상아 멍때리지 말고! "

" 이거 진짜 주는거에요? "

" 그래. "

" 진짜죠? 고마워요 제덴!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어요! 제덴이 온다면 아빠도 분명히 좋아할 거에요! "

 제덴은 조금 고민하는 눈빛을 보이더니 이내 내 말에 대답해 주었다.

" 흠, 그럼 신세 좀 져볼까? 오늘은 너의 활약을 너희 아버지에게 아주 상세히 알려드려야겠다! 아, 그리고 니가 저번에 망가뜨린 내 고글 이야기도 "

 난 너무 기뻐 제덴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얼른 철검을 뽑아 이것 저것 베어가며 칼의 위력을 확인 할 생각에 매우 들 떠 제덴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등대에서 내려가는 길을 재촉 했다. 제덴에게 대련을 부탁해 볼까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도중 등대의 철계단 뒤편 문에서 등대의 주인인 메레몬도씨가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제덴을 불러 세웠다.

" 예, 무슨 일입니까. 메레몬도 씨. "

" 아 제덴, 그게 글쎄 아니 오늘이 마누라랑 결혼 기념일이라서 말이야, 나 대신 살라만 먹이를 줄 사람이 필요한데 신은 영 못 믿겠단 말이야. 저녀석이 또 마을에서 소문난 말썽쟁이 아닌가. 혹시 바쁘지 않다면 말야. "

 매번 느끼는 거지만 메레몬도 씨는 돌려 말하는 게 정말 서툴다. 메레몬도 씨는 끝까지 뭐라고 주절주절 거리더니 이내 등대를 벗어나 마을로 내려갔다. 제덴을 두고 가는 것이 싫었던 건지, 메레몬도씨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던 건지  내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 제덴.. "

 제덴은 메레몬도씨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다. 그가 마을 모두가 거절했던 제덴을 등대지기로 받아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 었으니까.(물론 등대의 살라만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일 뿐이다.)

 " 신, 미안하다 먼저가렴. 할 일이 생긴 거 같네. "

 제덴은 몇마디 말을 남기고 철계단 뒤편으로 돌아 등대 내부로 들어가 버렸다. 몇 분이 지나도 제덴이 살라만의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나는 오른손에 검집을 쥐어 보았다. 묵직한 감각이 다시금 느껴졌다. 그 무거움과 반대로 발걸음은 점차 가벼워졌다. 난 그런 걸음을 이끌고 마을어귀를 돌아 우리 집 쪽으로 향해 갔다. 우리 집은 꽤나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날이 저물기 전에 빨리 가야했는데, 여름이라 태양은 아직도 바다위에 머물고 있었다. 

 내가 검집을 매만지는 것에 빠져 콧노래를 흥얼거릴 지경에 빠졌을 때, 하늘이 점점 어두워 졌다. 태양이 바다에 몸을 담글 시간은 아직 한참 멀었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구름이 먹빛을 내며 하늘로 달려들고 있었다. 구름이 떨어 지려나? 

" 어?! "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저절로 발걸음이 돌려졌다. 구름이 먹빛을 내며 등대위로 몰려들었다. 구름이 검어지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왜 하필 그쪽 인거야.. 왜 제덴만 남아있는 등대 위에 구름이 저리도 많은건지. 난 속으로 그저 구름이길 빌고 있었다. 떨어지는 비구름이 아닌 그냥, 그냥 구름이길..!

" 이런! "

 구름 증후군은 리나와 에신, 두 대륙에 만연한 불치병이다. 가라앉는 구름을 맞거나 그 속으로 들어가면 생기는 이 정신 분열증은 초기에는 통상 2개의 자아로 분열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아는 몇 천 갈래로 찢어져 몸이 견디지 못해 죽어버린다. 아빠를 통해서 들은 적있다. 구름 증후군은 절대 나을 수 없는 불치의 병이라고.
 아빠는 구름 증후군에 대해서는 마을 누구도, 아니 리나를 통틀어 누구도 이길 수 없을 만큼 해박했다. 아빠가 진짜 엄마를 잃고 나서 부터였다.

우르르릉 우르르르르르..

 구름들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내 살갗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또 한번의 저주를 내리려는 듯 하다. 서로 부딪히고 맞물리며 내는 소리일 뿐인데도 나는 너무 무서웠다. 

 열다섯살의 내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다섯살의 내가 있었다.

 그때와 지금은 달라. 나는 다섯살의 신 머브그누가 아니야.
제덴은 엄마처럼 되지 않을 거야.


" 후우.. "

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짐버라도 된 것 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마을이 아닌 등대를 향해서.

" 하아, 하아.. "

 숨이 폐를 가득 채우고 입 밖으로 다시 나올 때 마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긴 거리를 달려본다. 몇 백 멜룸*이나 되는 것 같아. 다리는 쉬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고 뜨거워지는 몸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어서 등대로 가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구름과 맞서 싸우고 제넨을 구해 내고 싶지만 내가 엄마처럼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끈적끈적한 땀이 대야가득한 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흘러내린다. 이게 차가운 빗방울이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드디어 힘이 떨어졌는지 다리가 멈추어 섰다. 나는 넘어질 듯 멈추어 선 후 타들어가는 폐를 부여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암세포처럼 내 몸에 퍼져나가는  심장을 비틀어 짜는듯한 고통을 어찌해보려 후덥지근하게 데워진 산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갈증에 목이 타 들어간다. 바다에 뛰어들어 바닷물이라도 마시고 싶을 정도야.

 정신없는 와중에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신, 여기서 뭐해? "

 흐릿해진 시야를 애써 고치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서있는 것은 짐버였다. 마을로 갔다가 다시 등대로 가는 모양이다.

 " 헉, 허으으 짐버, 바, 빨리 돌아가..  "

" 뭐라는 거야. "

 숨이 찬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 야 너 뭔일있냐? "

 짐버는 평소와 같이 퉁명스런 말투로 대꾸했다. 바보같은 녀석. 이제 곧 등대에 구름이 떨어질 거야. 너도 구름 증후군에 걸리고 싶어?

 " 머, 먹구름들 안보여? 이제 등대에 구름이 떨어질 거야! "

 간신히 숨을 삼키고 삼켜, 누군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소리로 발음으로 말을 뱉었다. 난 내 나름 진심을 담아 이야기 한건데 짐버의 표정은 영 아니꼬았다.

" 그냥 구름일 뿐이잖아, 이렇게 짧은 시간안에 비구름이 떨어진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 왜그래 너? "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아닌 것 같아. 저 구름은 분명히 떨어질 거야.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든다. 짐버, 너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냥 내 말을 좀 믿어줘 제발!

" 제덴이, 등대 안에 있어.. "

" 걱정 말래도! 넌 가끔씩 이상하단 말야. 그냥 구름이라니까. "

 짐버는 나를 부축하면서 자꾸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난 있는 힘껏 짐버를 밀쳤다. 이자식아, 니가 방금 한말은 소꿉친구에 대한 모독이야!

" 니 다리. 오늘 처음으로 부럽네 진짜. "

" 무슨 헛소리야 자꾸! "

 나는 다시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등대까지 별로 남지 않았는데도 길은 달려온 길보다도 길게 느껴진다. 저 거무튀튀한 구름에 태양이 가려지지 않았다면 아마 난 열사병에 쓰러져서 황천길을 헤메고 있을거야.

" 야! 신! 니네 아빠가 찾는다고! "



 아, 괜히 검을 들고 뛰었나. 이 검 몇 천 벤*은 되는 거 같다.
내 심장소리 말고는 아무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등대는 바로 앞인데, 정신이 몽롱해진다.


 무겁다. 다리도 무겁고, 어느 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쥐고 있는 철검의 무게도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온몸이 온통 땀범벅인거 같이 찝찝하고 끈끈해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거 같다. 숨쉬기도 벅차다 폐는 그 좋아하던 산소도 버거워서 들이마시고 내 뱉길 힘겨워 하고 있고, 내 목은 쌕쌕 소리를 내며 겨우 숨을 쉰다.

으.. 아, 제덴은? 구름은 떨어진건가? 땀에 절어 끈끈하게 달라붙은 눈을 힘을 내어 떴다. 환한 빛이 쏟아지고, 그 앞에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에 나는 표정이 밝아졌다.

" 제덴!! "

" 얌마 넌 또 왜 여기서 자고있냐? "

" 구름.. 떨어 졌어요? "

" 무슨 소리야? 헛소리할꺼면 그냥 누워서 더 자라 신. "

 나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그의 얼굴을 몇십 초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멀쩡하다니! 정말 다행이야. 난 너무 힘들지만 멀쩡한 제덴의 모습을 위안 삼기로 했다. 이야호! 
 나는 제덴과 함께 등대를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마을 바닷길을 경유해 집으로 가기로 했다. 하늘은 어느새 살라만 빛으로 물들고 악몽같은 먹구름은 꿈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뭉게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꿈만 같은 구름. 첫 발견의 날은 이렇게 기분좋게 저물어 가는구나. 암 그래야지.
 난 뭉게구름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문득 아버지가 해주셨던 태고 신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제덴에게 물어 보았다.

" 제덴, 태고신들 이야기 알아요? "

" 그럼 알지. 너보다 13년이나 더 살았는데 태고신 이야기를 모를까. "

" 리나와 에신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잖아요? "

" 그래. "

" 근데 왜 서로 싸우고 서로의 후손들에게 저주를 내린거죠? "

 제덴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해보였다. 그리곤 바보같은 질문을 한다는 듯이 나에게 대답해 주었다.

" 야 신, 너 쥬리나를 좋아하지? "

" .. 흠..  "

 제덴은 역시 대단하다.

" 다 알아 멍청아. 표정에 보인다고 보여. "

" 그게 어쨌는데요. "

" 너 쥬리나랑 싸울때 뭐 때메 싸우냐. "

" 글쎄요. 안싸워 봐서 모르겠는데, 앞으로 싸울일이 있다면 서로의 의견이 다르거나 뭐 쥬리나보다 더 소중한게 생겼을 때 아닐까요..  "

 내가 말해 놓고도 좀..

" 그럼 그거겠지. "

" 더 소중한거요? "

" 뭐, 그 둘은 신이 었으니까. 뭐가 소중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소중한게 뭘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제덴과 함께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 제덴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니 어마어마한 졸음이 쏟아졌다. 아, 오늘은 내 생일 이었지. 마을 외곽에 도착하니 생각이 났다. 아빠가 내 걱정 많이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아빠한테 한대 얻어맞을것 같았고,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제덴에게서 받은 검을 가지고 푸치 숲으로, 어? 검이 어딨지?

 내가 더 깊게 생각하기 전에 시야가 흐려지고, 나는 잠이 들었다.



  무겁다. 다리도 무겁고, 어느 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쥐고 있는 철검의 무게도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온몸이 온통 땀범벅인거 같이 찝찝하고 끈끈해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거 같다. 숨쉬기도 벅차다 폐는 그 좋아하던 산소도 버거워서 들이마시고 내 뱉길 힘겨워 하고 있고, 내 목은 쌕쌕 소리를 내며 겨우 숨을 쉰다.
 내가 쓰러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억 나진 않지만 악몽을 꾼 것 같다. 나는 땀에 절어 끈끈하게 달라붙은 눈을 힘을 내어 떴다. 환한 빛이 쏟아지고, 그 앞에 서있는 누군가의 뒷 모습이 보였다. 제덴?.. 아니.

" ... 아빠? "

" .... "

 내가 쓰러진 땅바닥 위로 탁한 먹빛을 띈 수증기 같은 것이 계속해서 흘러 갔다. 수증기는 의지를 가지고 내게 다가오려했지만 무언가 단단한것에 걸려 흘러내려 갔다. 난 분명 이걸 본 적이 있다. 이 먹빛 수증기는 몹시 신비로웠지만, 나는 그것을 즐길 여유를 갖지 못했다. 등대는 바로 앞이었고, 내가 들은 것은 아빠의 목소리나 다른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죽어가는 짐승이 내는 포효소리와도 같은 것이, 증기 속에서 메아리쳐 내 귓가를 찌른다.
 그 소리에 맞춰 제덴과 함께했던 그 동안의 추억이나,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쪼아댔다. 나는 그 기억들 속을 수차례 헤매다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일어 날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다섯살의 나와 전혀 달라진게 없다. 물에 젖은 휴지 조각 마냥 바닥에 철퍽 달라붙어서 하염 없이 울고 있다. 

 그때와 같아도 너무 같아.

" 거기 가만히 있어 신. 빠져나오면 너도 위험하니까.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 흐아아! ]

그만해 아빠. 제덴을 보러 가야겠어.

" ... 아빠..  "

" 말하지마 알아. "

 그 몇 멜룸 안 되는 거리를 놔두고 왜 제덴을 등대 밖으로 불러 오지 못했는가에 대한 자책이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 깊고 크게 다가온다. 일어 설 수 없다. 운디의 숨구멍으로 몸에 묶은 밧줄하나 없이 뛰어드는 기분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운디가 뿌리는 물방울 보다 더 많이 쏟아지는 것같다. 한참을 그렇게 볼품없는 꼴로 아빠의 그림자 뒤에 숨어 있었다. 오랜만에 의지와 몸은 하나가 되었다. 더이상 그의 비명소리를 듣는 것은 나에게 그 어떤 고문보다도 더 깊은 흉터를 남길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스스로의 힘으로 가늘게 이어져있던 나의 의식의 선을 끊어냈다.


 시간은 감은 눈 너머로 천천히 흐르는 듯 하더니 이내 멈추었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다섯의 나와 열다섯의 나는 서로 손을 잡고 어디로 발걸음을 돌릴지 헤메다 다섯의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 1. 등대지기 끝.


* 멜룸 : 이 세계에서의 길이의 단위. 1 멜룸에 1.33M
* 벤 : 이 세계에서의 무게의 단위. 1 벤에 0.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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