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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아래의 세계 (스압주의)
게시물ID : panic_637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15
조회수 : 5204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2/05 02:16:51
기철은 넋을 놓고 물 속에 서 있었다.
그것은 물 이라기엔 너무나 고약하고 걸죽하기까지 한, 버려진 오수. 깨끗하고 우아한 도시는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그 아래에 이런 끔찍한 독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기철이 서 있었다. 그가 하수구에 빠진지 하루가 지났다. 깨끗한 물에서도 사람이 오래 몸을 담그면 살이 불어서 찢어지기 마련인데 더럽고 역한 오수야 오죽하랴. 하루만에 기철의 온 몸에는 온갖 수포와 진물 따위가 솟아올랐고, 피부는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처음에는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철거지역을 돌며, 어떤 건물을 시공할 것인가에 대해 시찰을 하는 것이 그의 일정이었다.
그는 건축설계사였고, 유능했다. 그렇기에 회사도 본인 혼자서 건물을 자유로이 돌아보고 싶다는 다소 이색적인 의견을 묵묵히 받아 준 것이었고, 기철은 혼자 철거지역을 방문했다. 하지만 철거지역이라는 것이 항상 낡고 부스러지는 것 따위의 것들이 쌓여있는게 대부분이라 기철은 땅을 한번 잘못밟아 그 아래 하수구로 떨어진 것이다.
 
외국의 하수구야 넓고 지상으로의 출입구도 많지만 국내의 하수구는 딱 물만 흐를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어디 물 위에 올라설 곳도 없고 앉거나 누울 곳도 없는 탓에, 오수의 한가운데 기철은 그냥 서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3일이 더 지났다.
 
 
물은 계속 흘러갔고, 지독한 악취와 가스에 기철은 폐가 병들어감을 느꼈다. 기침이 부쩍 심해졌고, 피부는 문둥병 환자같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끔찍한 순간은 너무나도 질기게 그의 발목을 부여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차라리 기절해서 자는듯이 죽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제는 물에 담궈져있는 부위만이 아니라 가슴 위의 물에 닿지 않는 부분까지도 수포가 올라오고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피부를 통해 독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걸까.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며 수 없이 기절하지만, 물에 머리를 담그면 숨이 막혀서 다시 깨어나 일어서게 된다.
아무래도 철거지역에 누군가 와서 구해줄 것 같지 않았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기철은 좁디 좁은 수도관을 통해 몸을 옮기기로 했다. 수도관을 대충 만져보니, 물 속이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는 몸을 낑겨넣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수도관이 길지만 않다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을 터였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바에야 물에 빠져 죽는 편이 나을수도 있다는 자포자기한 심정도 한 몫을 했다.
 
 
'꼬르르르륵'
 
 
물 속에서도 악취가 느껴질 정도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뚱아리는 잠시도 숨을 참기가 힘들었지만 끔찍할 정도로 더러운 이 똥물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그의 강한 의지가 단지 얼마의 시간을 더 견디가 만들었다. 수도관은 의외로 지나가기가 쉬웠다. 몸은 좁아서 살짝 끼는 정도였지만 워낙 수도관 내부가 오물에 의해 미끄러워서 몸이 잘 빠져나가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구가 보였다.
 
 
"푸흐어으컥!! 커억!! 으허억!!!"
 
 
숨을 들이쉬는 순간에도 오수가 입 안에 들어갈까 싶어 있는대로 침을 뱉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는 자신이 떨어진 구멍으로부터 빛이 들어오는 까닭에 주변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지만, 현재 이곳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어둠뿐이었다. 기철은 주머니에서 작은 플래시를 꺼내 들었다.
레이저 포인트에 부착되어 있는 다용도 플래시였는데, 레이저 포인트는 건축시공에 대해 설명할 때 사용하는 필수품이었다. 핸드폰은 물에 잠겨 못쓰게 되었기에 현재로써는 유일하게 빛을 낼 수 있는 물건인 것이다.
 
 
"으어……."
 
 
자신이 들어온 곳은 그저 하수관의 연결부분이 터져서 생긴 지반 속의 공간에 불과했다. 흙 속에 묻었을 하수관 사이가 터지며 주변 흙들을 갉아서 다음 하수관에 오수와 함께 조금씩 흘려보내며 만들어진 좁은 공간인 것이다. 당연스럽게도 출구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한 결속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흙의 방이었기에 작은 충격에도 언제 무너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철은 다급히 다음 하수관을 찾아 몸을 밀어넣었다.
 
이번 하수관은 꽤 길이가 길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다급하게 몸을 밀어넣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수관도 조금 더 좁았고 길기까지 했다. 결국 오수를 들이켜버렸다. 세상을 살며 단 한번도 맛본적이 없는 끔찍함 그 자체였다. 그 악취와 그 혐오스러운 맛!
기철은 발작하듯이 서둘러 하수관을 기어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수관의 또 다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어어어억!! 커어거억!! 우어어억!!!"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숨을 들이킬 수 있게 되자마자 사정없이 구토한다. 썩을대로 썩은 물이 위장에서 토해내진다. 토사물의 시큼한 냄새따위는 원래부터가 최악의 악취를 가지고 있는 하수구 안에서는 향기로울 지경이었다. 눈물 콧물 쏙 빼며 계속해서 위장 안의 내용물을 게워낸 기철은 조금 정신이 들자 다시 플래시를 꺼내어 주변을 살폈다. 이 곳은 아까보다는 훨씬 넓었다. 아무래도 다른 주변의 하수관들이 한곳에 모이며 오수들을 모아 흘려보내는 장소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반가웠던 것은 무려 올라서서 몸을 말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온갖 오수가 모이는 곳이다 보니 쓰레기의 덩어리도 한데 모여져서 쌓이게 된 모양이었다.
모여든 많은 오수를 다음 장소로 이동시키는 다소 넓은 하수관을 사이에 두고 쓰레기 더미는 양쪽에 산처럼 쌓여, 바다위의 작게 솟은 바위를 생각하게 했다. 기철은 서둘러 그 쓰레기더미에 올라섰다.
평소 생각했던 쓰레기 더미는 우아할 지경이었다. 끈적끈적하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건더기가 대부분이었고, 군데군데 잘 썩질 않는 플라스틱 세제통이나 알루미늄 캔 따위가 박혀있었다.
 
 
", 으아아아악!!!"
 
 
그 질척이는 고약한 쓰레기 더미에 올라서는 순간, 쓰레기 더미의 틈새 사이사이로 바퀴벌레들이 우글우글 기어나왔다.
기철은 그 혐오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물로 뛰어들었다. 수 백만은 될 것 같은 바퀴벌레 무리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기어나와 하수구 벽을 타고 꾸물꾸물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개중에는 일제히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들도 있었다.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 것 같은 구역질나는 장면이었다.
온 몸이 오수의 독에 의해 쓰라린 기철이었지만, 새삼 손가락 끝이 따끔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플래시를 가져가 비춘다.
 
 
"으아, 씨발!! , , 으아 씨발!!!"
 
 
바퀴벌레가 헤엄을 친다는 말은 듣도보도 못했다. 하지만 기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수를 헤엄쳐와, 기철의 손가락부터 물어뜯기 시작한 바퀴벌레 무리였다. 마치 장어나 미꾸라지 따위를 기르는 가두리양식장에서 사료를 줄 때, 몰려드는 물고기들같이 바퀴벌레들은 물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며 기철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서로간에 몸이라도 부대끼는지 사각사각거리는 소리가 기철의 귓 속을 온통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다니던 바퀴벌레들이 기철의 얼굴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온통 날카로운 돌기가 자라 따가운 바퀴벌레들의 다리가 맨 살에 들러붙어 그를 찌르기 시작하자, 기철은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기철은 비명을 지르며 넓은 하수관을 따라 몸을 던졌다.
유속이 엄청나게 빨랐다. 기철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물에 몸을 맡기기만 하는데도 빠른 속도로 하수관을 지나갈 수 있었다.
단지 하수관이 매우 길었다.
 
 
 
하수관은 길었지만 넓은만큼 공간 또한 여유가 있는 편이었기에 숨을 참지는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너무도 좁은 공간에 고개를 연신 하수에 처박으며 숨을 몰아쉬자니, 고약한 악취에 아주 오래전부터 잃어버린줄만 알았던 감각을 잃은 후각이 새삼 다시 악취를 느끼고 있었다.
꿈이라면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다. 미끌미끌하고 질척한 하수관의 느낌도 싫고, 코를 도려내고 싶어지는 미칠듯한 악취도 싫었다. 벌레가 피부를 타고 오르는 것 같은 발진과 온갖 통증과 쓰라림을 갖고있는 수포와 너덜너덜해진 피부도 끔찍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도망치고 싶다. 호흡이 자유롭지 못한 숨막히는 환경과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간신히 서 있기만 해야하는 현실이 차라리 죽는것보다도 괴롭다.
 
그리고 하수관의 출구가 보였다.
 
이번에는 물을 따라 하수관을 나오자마자 무언가에 부딪쳐서 신체의 움직임이 멎었다. 기철은 플래시를 다시 꺼내어 눈 앞을 비췄다.
눈 앞에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올라설 곳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삼일 동안 잠도 못자고 서서 온갖 고통에 괴롭힘을 받은 기철은, 콘크리트 위로 올라가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철은 엄습하는 추위와 전신에 흐르는 통증에 잠에서 깨었다. 그나마 몽롱하던 정신은 조금 맑아졌고, 고통이 다시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꽤 여유롭게 수면을 취한 것 같았다. 기철은 자신의 옷을 걷어 피부를 살폈다. 온갖 알 수 없는 것들이 두둑두둑 올라와 돋아나고 뭉그러진 끔찍한 살가죽이 기철의 눈에 눈물을 가득 맺히게 만들었다. 눈으로 보니 더 아픈것 같았다. 전신이 추위에 와들와들 떨린다. 끊임없는 오한에 울렁거리는 속 사정까지 겹치자, 곧바로 구토를 시작한다. 삼일이 넘도록 먹은것이 없어서 위액밖에는 나올것도 없었지만 구역질은 질리지도 않고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플래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자신이 올라선 콘크리트는 하수구 벽에 붙은 작은 길이었다. 그 공간은 끝이 안보이는 긴 통로였는데, 양쪽 벽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길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오수가 함께 흐르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벽은, 끈적끈적한 무언가로 코팅이라도 한 듯 온전한 곳 없이 뒤덮혀 있었고 길 위에는 몇몇의 바퀴벌레나 쥐 똥같은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중에는 하얗고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벌레들이 서로 뭉쳐서 덩어리를 이룬 것도 보였고, 흐르는 하수 틈틈이 고인 물에는 수 많은 실지렁이가 게임에나 나오는 슬라임마냥 뭉쳐져서 움직이는 것이 기괴하기 짝이없었다.
뭐 하나라도 자신의 몸에 닿으면 정신이 아찔할 것 같았다. 기철은 서둘러 한쪽 방향을 정해서 무작정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으… 으으, 하으… 나가기마 해바… 아쥬 다 다 다 듀, 쥬거… 써어어어……."
 
 
추위 때문인지 오수가 입 안으로 들어와 혀까지 마비가 된건지 발음도 바르지 못해서 말이 자꾸 새고 있었다. 기철의 의미없는 말들은 좁디 좁은 하수구에서 메아리로 변해 기철의 귀로 몇 번씩 흘러들어갔다. 한 마디의 말들이 나올 때 마다, 몇 마디의 말들로 새끼를 쳐 귓 속으로 들어오지만 그때마다 공허한 느낌은 더해져만 갔다.
 
땅 위에서의 삶이 간절해졌다.
맛있는 자장면도 먹고싶고, 숯불 돼지갈비나 기름진 참치회 따위도 먹고 싶었다.
시원한 맥주나 상큼한 레모네이드 따위로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깨끗하고 뜨끈뜨끈한 물이 가득한 스파나 찜질방에서 목욕도 근사하게 하고 싶었다.
푹신하고 포근한, 갓 말린 뽀송뽀송한 이불 위에 누워 늘어지게 잠도 자고 싶었다.
친한 사람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
 
 
 
'쏴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낙수(落水)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철은 그 곳을 향해 절뚝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리도 제멋대로 통제를 잃고 잘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그는 다리를 질질 끌어서라도 빨리 가고 싶었다. 기철은 머지않아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해 비틀비틀 거리면서도 땅을 손으로 연신 짚어가며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눈 앞에 펼쳐진 곳은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이었다.
도시 한복판 하수도에 이런 말도안되는 공간이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곳은 여전히 악취로 가득했지만, 하수도라기엔 너무나 정돈이 잘 된 어떤 처리장 같았다.
하수는 깊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고, 눈 앞에는 난간이 생겨있었다. 눈 앞은 허공이었고, 돔 형태의 공간을 벽을 타고 난 철제 길로 빙글빙글 돌 수 있게만 되어있었다. 그리고 기철이 나온 곳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군데에서도 오수가 세차게 뿜어져 나오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철은 위를 올려다 보았다. 위에는 돔 형태의 공간을 가운데로 가로지르는 철제의 다리가 몇 개 나 있었고, 더 위에 회백색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천장에는 군데군데 미약한 빛의 백열전구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왠지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길이 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왕래가 잦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출입구도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철은 사방을 샅샅히 살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기철은 계단이 있는 곳 까지 달렸다.
 
'텅텅텅텅텅'
 
계단 역시 철제로 되어져 있어 디딜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어놓았다. 계단을 올라서니 이 거대한 공간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이어져 있었다. 기철은 역시 다리 위로 올라섰다. 다리의 양 끝에는 문이 나 있었는데, 한 곳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라는 표식이 붙어있는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설명같은 것은 일언반구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튼튼하고 육중해 보이는 철문이었다. 기철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씌여져 있는 문으로 먼저 향했다. 왠지 이런식으로 금지가 되어있는 방은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구헥… 구어어억…!!"
 
 
문이 열리질 않아서 미친듯이 문을 흔들었다. 기철의 입에서 더는 사람의 말이 나오질 않았다. 혀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고, 입 안이 온통 욱씬욱씬한 통증 뿐이었다. 그러다 문이 열리질 않아 화가 난 기철은 문을 있는 힘껏 밀어찼다.
 
'카아앙!!!'
 
경첩이 부러진 채 떨어져나가며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곳은 큰 모니터 몇 개와 컴퓨터 한 대, 그리고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진 빈 방이었다. 기철은 혹시나 인터넷이라도 될 까 싶어 컴퓨터의 전원을 넣었다. 하지만 컴퓨터는 작동하질 않았다. 책상 서랍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게 있을까 싶어 책상을 뒤졌다. 책상에는 필기도구나 잡동사니들 뿐이었다. 그러다 노란색 파일 하나가 책상 한켠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펼쳐보았다.
파일을 펼치는 기철의 손은 둔할대로 둔해져 잘 펼쳐지지 않았고, 노란색 파일은 기철의 몸에서 흘러나온 갈색의 진물에 푹 물들어갔다.
 
 
 
 
 
 
 
 
 
 관리 일지
 
소장 : 이영석
 
 관리 일지를 놈들에게 빼앗겼다. 이것은 더이상 관리 일지가 아니다. 다만 내가 이 비어버린 파일을 이 종이 한장으로써 채우는 것은, 누군가 이 파일을 본다면 비밀을 알리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이 곳은 세상에 나와서는 안될 위험한 것을 취급하는 곳이다. 도시 아래의 비참한 하수처리장에 어울리지 않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그 '생물' 을 위해 제작된 하나의 동물 우리다.
놈은 악취나는 더러운 물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그 생물을 이 자리에 몰아넣은 것이 아니다. 하수관을 증설하다가 '발견' 한 것이다. 그것은 하수구에 눌러앉아 썩은 유기물을 쓸어먹으며 주변을 '오염' 시켰다. 우리는 그 생물을 생포해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을 만들어 가두어 두었다. 위에 보고하자 연구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두터운 방호복을 입고 이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생물의 피부조직을 구해 연구를 진행했고, 관찰도 끊임없이 진행했다. 그 생물은 흉포하고 강하며 굉장히 위험한 까닭에 한번이라도 생포를 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그 생물 자체를 끌어내어 연구하진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내 부하 경수라는 놈이 구역질을 하며 쓰러졌다. 연구원들은 방호복을 절대로 벗지 않았다. 절대로. 벗지. 않았다.
아아, 하느님. 혹시 저는 있어서는 안될 곳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디 자비를….
그 이후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모든 직원이 원인 모를 벼에 거ㄹ따 오느모매 수ㅍ가 ㅁ지비 새ㄱㄱ나ㅅ… 아ㅇ ㅅ려ㅈㅈ바… 아대 ㅈ고ㅅ…………
 
 
 
 
 
 
기철은 눈을 연신 비벼댔다. 글을 읽기 힘들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봤다.
이 글자가 뭐였지? 내가 뭘 읽고 있는거지? 글? 글이 뭐지?
 
 
 
 
기철은 파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대로 방에서 나갔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의 육중한 철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철문을 두들겼다, 있는 힘껏 당겼다.
철판이 찢어지고 짓이겨지는 소리가 나며 거칠게 열어제껴졌다.
기철은 문 밖으로 나서기 전에, 돔의 맨 밑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온갖 오수가 쏟아져 고인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더러운 물의 수면 아래에는 연신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듯 격한 움직임을 보였다.
기포가 올라오고 물이 솟구쳤다가 파도가 생기기도 했다.
 
 
기철은 그것을 뒤로 하고 문을 나섰다.
길고 긴 복도가 이어졌고, 계단도 몇 차례 나왔다. 그리고 얼마 뒤, 작은 문이 하나가 나타났다.
손잡이를 거칠게 비틀어 열고 나간 기철의 눈 앞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기철이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보았던 도시의 일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테리아에서 버터를 올려 구운 식빵에 커피를 곁들여 먹는 젊은 아가씨. 흥에 겨워 목소리를 높여가며 수다를 떠는 노인들. 이어폰을 꽂고 걸어가는 여학생.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게임이 한창인 남자. 공사로 시끄러운 건물과, 도로 위를 일사불란하게 질주하는 버스와 자가차량들.
 
기철은 아무 반응도 않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철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역한 냄새에 숨을 참으며 급히 지나쳐가는 사람들도 있다.
기철은 그런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일주일 뒤, 유행성 피부염 환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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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겍 더러워 ㅋㅋㅋㅋㅋ
 
결말은 열린결말이겠구요, ㅎㅎ 재미나게 봐주쎄요.
 
친히 읽어주시는 분들 다 사랑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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