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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와서
게시물ID : animal_78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왕신세계당
추천 : 17
조회수 : 72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2/10 06:44:58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비오는 7월, 너는 한 오피스텔 단지 내 상가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듯 가만히 앉아 있었더랬다.
비를 피해 상가 처마 밑, 그 작은 몸으로 한껏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듯. 그렇게 가만히.
자그마한 너를 차마 지나치지 못 한 행인은 잔뜩 젖은 너를 안고 4층까지 올랐지.
 
어느 누가 너를 봤더라도 그냥 지나치진 못했을 것 같다. 일단은 '주인을 찾아줘야지.'하는 마음에.
아니면 이런 비 오는 날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를 그냥 두지 못 한 타인의 측은지심에.
 
그러나 그 측은지심도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1주일이 넘게 아무리 노력해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유기견 센터에 보낼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나는 너를 임보하겠다 이야기했다.
 
처음 만난 너는 너무도 아파 보였지. 무섭기까지 했다.
나는 태어나 반려견이라는 것을 접해본적이 없었기에, 그저 동정심만으로 너를 데리고 왔기에.
아픈 반려견, 심지어 유기견과 함께 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더 무서웠는가보다.
 
이름이라는것이, 무언가에게 명명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두려움이었다.
말이라는게 참 구속력이 있어서 이름을 지어주면 정말 나에게서 너를 떼어놓지 못 할 것 같아 무서웠던 것 같다.
너가 나에게 온지 꼭 3주만에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지.
그 이름을 들으면 귀를 쫑긋 세우며 꼬리를 살랑였지.
 
첫 1주일.
책상 밑, 밥상 밑, 싱크대 밑, 현관 앞. 그 곳이 너의 공간이었다.  
잔뜩 주눅들어 눈치만 보는 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 것 뿐이라, 가끔 막막해지기도 했다.
나에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며,
네가 나에게 마음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지진 않을까. 네 그런 모습에 내가 상처를 받고, 그런 나의 모습에 네가 상처를 또 받는다면 견딜수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여러모로 처음이었기 때문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었지.
진지하게 다른 입양처를 찾아볼까 고민하기도 수 날.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강아지에 무지한 내가 봐도 넌 충분히 노견이었고, 아파보였는데 너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 덜컥 너를 데려간다고 할 것 같진 않아서.
주인이 널 왜 버렸는지.. 이가 빠지고 턱이 틀어지고 몸통마저 틀어진 널 본 나는
너를 처음 본 타인이 어떻게 느낄지 조금은 공감이 갔기 때문이었겠지.
 
지금은 그 때 보류한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안다.
 
그래도 밥 챙겨주고 예뻐한 사람이라고, 어쩔수 없이 지인에게 잠시 널 맡겨뒀다 찾아온 날 꼬리를 한 껏 흔들며 내게로 달려와 주위를 빙빙돌던 네 모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그 때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이제 정말 너에게 나도 가족이 된 것 같아서. 기다리고, 반가워 할 사람이 너에게도 아주 오랜만에 생긴 것 같아서.
 
넌 사실 아픈곳이 많지.
그런데에 드는 돈,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저 오래만, 몇 년 만 더 버텨줬으면 하는 내 이기심이기도 하지만...
주인에게 버려진 기억, 그 상처가 치유되고 바래질때까지만...
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더라도 나 하나쯤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기억해 줄 수 있었으면...
네 생에 마지막 몇 년은 정말 남 부럽지 않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그래서 행복했다 느낄 수 있다면.
그 것 하나만 정말 간절히 바랄 뿐.
 
일주일 전,
갑자기 네가 거칠게 숨 몰아쉬며 힘들어 할 때, 이 지역에 동물병원 문 연 곳 하나 없을텐데 벌벌 떨리는 손으로 여기저기 전화했던 내 모습이 너무 아찔하고 그 시간이 너무 끔찍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낀 생명체에 대한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아기 안듯 널 안아 토닥이며 눈물만 흘리는데, 20초 남짓한 그 시간에 내 심장은 몇 번이나 땅 속으로 곤두박질만 쳐대서.. 내 스스로가 산 건지, 죽은건지 분간이 안 가더라. 이게 꿈이었음 좋겠고, 꿈인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아무것도 구분이 안 가더라.
 
네가 나에게 이렇게나 큰 존재였구나.
너의 코 고는 소리가,
때때로는 귀찮았던 너의 치댐이,
항상 내 베개 옆의 니 자리가.... 이렇게나 큰 존재였구나.
새삼 깨달았다.
 
다시는 널 멀리 보내지도, 혼자 두지도 않아야지.
호흡을 되찾고 다시 나에게 꼬리를 살랑이는 너를 보며 수 백 번 다짐했다.
지금도 이렇게 예쁘게 내 옆에 잠 든 너를, 내가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날이 풀리면 산책을 하자.
너와 처음 만난 7월, 더운 여름을 둘이 힘겹게 함께 보냈지.
봄이 오면 우리 처음으로 벚꽃을 보러 가자.
다시 맞이하는 여름은 계곡도 가서 시원하게 바람을 쐬자.
가을엔 지는 낙엽도 한 껏 밟으러 다니고,
겨울엔 소복소복 눈도 함께 밟아보자.
그렇게 온전히 사계절을 너와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보내고싶다.
 
너는 나에게 와서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되어 주었지.  
나는 아직 너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네가 나를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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