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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이등병
게시물ID : military_383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51
조회수 : 8520회
댓글수 : 54개
등록시간 : 2014/02/10 15:20:47
 
가을도 어느덧 지나고 날씨가 쌀쌀해 지고 있었다. 해안 투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평화롭기만 하던 부대 안이 조금 시끌벅적 해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병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것도 네명이 한꺼번에 전입을 온 것이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신병을 받아보기는 우리들도 처음이라
일단 뭐부터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내 머리속에 번뜩 스쳐가는 생각은 그럼 과연 어떤 아이가 우리 분대로
올 것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한두명이 오는 경우는 머릿수가 모자란 분대로 배치되기 마련이었지만 네명이라면
아마도 각 분대에 한명씩 배치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부터 나를 비롯한 각 분대 중간짬 병사들의 눈빛이 예리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모두 같은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왕 신병을 받는거라면 기왕이면 똘똘한 아이를 받는게 더 편한 군생활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소대장에게 배치에 관하여 물어보니 일단 신병대기기간이 끝난 후에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신병들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사지는 멀쩡한가. 치열은 고른가. 눈빛에 총명한 기운이 감도는가.
매서운 바닷바람을 이겨낼 강인한 기개를 지녔는가. 꼼꼼이 신병들을 살펴보는 고참들의 모습은 마치 날 로마시대의 노예시장 한가운데
있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간단한 스캔을 끝낸 후 우리는 늘상 물어보는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부터 시작해 입대 전엔 무엇을 했는지.
신병들 모두가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다 입대한 아이들이었다. 일단 좀 더 디테일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무슨 과를 나왔는지 물어보았다.
너는 무슨과를 나왔니? 영문과를 나왔습니다. 영어라.. 길 잃은 미군을 만나지 않는 이상 이곳에선 쓸모없는 일이지.
너는 무슨과를 나왔니? 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이곳은 얄팍한 자본주의 따위는 통하지 않는 곳이란다. 어치파 월급은 똑같거든.
너는 무슨과를 나왔니? 산업디자인과를 나왔습니다. 진지공사때 진지를 이쁘게 만들수 있겠구나.
너는 무슨과를 나왔니? 토목과를 나왔습니다. ... 신병에 대한 호감도가 50 상승했다.
사실 토목과를 나왔다고 작업을 잘한다거나 삽질을 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군대에서 그런 일반적인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토목과를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신병은 벌써부터 우리모두의 워너비이자 드래프트 1순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대강의 통성명이 끝난 후 나는 남들보다 발빠르게 신병들에게 접근해 대화를 시도했다. 바싹 얼어있을 신병들의 긴장감을 풀어줌과 동시에
나는 너희들을 해치지 않아. 나는 좋은사람이야. 라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몇일 후에 있을 분대배치에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해 볼 심산이었다. 한참을 대화를 시도한 결과 신병들의 긴장한 얼굴도 처음보다 한층 풀어졌고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짧은 시간안에 어느덧 우리들 사이엔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른 분대 고참의 PX가고쮜뿐쏴뢈~ 이라는 한마디는 나의 백마디 말보다 더 진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것 같았던 신병들의 표정은 어느새 그 고참을 향해 있었다. 십상시 같은 자식들.
결국 냉동앞에선 그 어떤것도 무용지물 이었다.
그날 저녁 점호를 앞두고 총기수입을 하고 있는데 건너편 침상에 각잡고 앉아있는 신병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훈련소에선 본적없는
기관총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런 신병들을 향해 신병. 이총을 봐줘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었다.
다들 대답이 없었고 그런 그들을 향해 너희들중 누군가가 부사수... 하지 않겠는가? 라고 물었다. 이미 신병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그때부터 신병들이 나를 기피하는것 같았다.
 
몇일 간 신병들을 관찰한 결과 우리들의 생각은 처음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역시 밖에서 뭘 했던간에 신병은 신병일 뿐이었다.
다만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말끝마다 예? 부터 시작해 요. 까지 그리고 왠지 편지쓰기를 좋아할 것 같던 아이였다.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다들 같은마음 이었을 것이다. 제발 이아이 만큼은 안된다고. 평소에 이런저런 말이 없던 고참마저도 나에게 넌지시
저 얼굴은 역모를 꾸밀 상이라며 앞으로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고 싶다면 절대로 저아이만큼은 피하라는 조언을 남겨주었다.
마침내 대기기간이 끝나고 이제 운명의 시간이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대장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소대장이 들어오고 신병들과 함께 내무실로 들어섰다. 우리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일까 기적이 일어났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소대에도 사람이 부족해 두 명만 우리소대로 배치가 되고 나머지 두명은 다른소대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고참의 눈은 정확했다. 그 아이는 채 일병을 달기도 전에 옆소대 인원의 3분의 1을 영창에 보내고 우리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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