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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연재중인 판타지 소설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게시물ID : readers_118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음악쟁이
추천 : 2
조회수 : 5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11 06:03:23

안녕하세요.

친구가 연재중인 소설한편 소개할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인것 같은데 묻히는것 같아 홍보를 하게 되었어요.

잠깐 작가 약력을 소개하자면

물리학 전공, 한국 전통 무예동아리 출신, 인체묘사를 위한 해부학 공부, 특전사 중사전역 후 현재 글 집필중입니다.

그리고 제 친굽니다. ㅋㅋㅋㅋ


좋게 말하면 소개, 대놓고 말하면 홍보가 되겠습니다.-혹시 문제가 되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중이구요, 현재 50여편이 연재중입니다.

본인한테 물어보니 스스로 하기에는 너무 쑥쓰럽고 없어보인다고 부끄러워 하더군요 ㅋㅋㅋㅋ


재주가 많은 친군데, 어느날 원고 초고를 보내줬어요.

위에도 썼듯이 그림도 그리는 친구라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삽화가 들어간 이 책을 출판하는게 목표라고 하더라구요.

원래 책은 상상력으로 읽는거지만, 가끔씩 나타나는 삽화들은 부족한 상상력을 채워줘서 저는 좋더라구요.

물론 시작은 개인적인 이유로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매주 기다리며 보고 있습니다. ㅎㅎ

매주 토요일에 업로드가 되구요.

여기에 있는 분량은 3회분이고, 그 이후는 링크 걸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hn?novelId=56203&volumeNo=4






{ 쿰 둔 하 카 이 룬}

 

 

-어느 이야기꾼의 이야기

 

  “∙∙∙∙∙∙. 먼저 무엇부터 시작 할까요?”

산골 마을에 부는 저녁바람은 쌀쌀했다. 마을에서 하나뿐인 여관에는 지금 오랜만에 찾아온 이야기꾼 덕에 전에 없이 사람이 들끓었다.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 여관에 묵고 있는 나그네들도 모두 벽난로 주위에 모여있었다. 벽난로 옆에는 안경을 쓴 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이야기꾼 특유의 익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육십여 년 전의 마인전쟁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제일 많더군요.”

  그는 자루를 뒤적이더니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마물들은 아스칼리아력612년에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해부학적 구조는 그때까지 학계에 보고된 그 어떤 생물들과도 달랐습니다. 학자들은 그들을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결론 내렸죠.”

  모여있는 청중들은 그의 일관된 어조와 딱딱한 말투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처음 공격을 받은 나라는 렌바니아였습니다. 그것도 수도에 직접. 때문에 당시의 렌바니아 왕성은 바로 무너졌고, 지금의 렌바니아 신 왕조가 들어서게 된 것이죠.”

  사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청중들 몇은 벌써부터 졸고 있었다.

  “마물들의 공격에 인간 왕국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한번도 마주친 적 없던 존재에 대한 불리함보다도 더욱 무서웠던 것은 마물들의 강인함 그 자체였죠. 그들은 렌바니아 왕국을 거의 궤멸시키며 서쪽으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지금의 북부 혼 대륙을 이루는 아스칼리아-발세룬-렌바니아 삼국의 균형은 이미 조각난 상태였습니다. 발세룬마저 무너지고 난 뒤 서쪽으로 진군하는 그들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어 보였습니다.”

  그때 마을사람 몇 명이 하품을 하며 여관을 나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강력한 마물의 군대 앞에 아스칼리아는 멸망만 기다리는 꼴이었죠. 혼 대륙 전역을 통틀어 남부의 시안 제국만큼이나 역사가 긴 나라. 혼 대륙 제일의 학문과 상업의 나라는 그렇게 사라져 버리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때 이야기꾼이 청중을 둘러보자 이미 대부분은 나가버린 상태였다. 그나마 남은 사람들은 골아 떨어지는 바람에 미쳐 나가지 못한 듯 보였다. 이야기꾼은 책을 덮고,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로 그때였다네! 삼인의 영웅! 그들이 나타났다네!”

  그가 힘껏 내지른 소리에 졸고 있던 청중들은 깜짝 놀랐다.

  “동에서 온 대마법사, 메를렌!”

  “우오!”

  몇몇 렌바니아 출신이 환호성을 질렀다.

  “북에서 온 대장군, 흑기사!”

  “만세!”

  발세룬 출신으로 보이는 나그네들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이는 발세룬에서 왕과 국가에 대해 갖추는 예로, 지금의 발세룬 왕이 바로 흑기사인 것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는 렌바니아의 경우와는 달리 신 왕조가 아니었는데, 여기에는 당시 신분을 숨기고 활동했던 흑기사의 정체가 발세룬의 제1왕자였기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었다. 어쨌거나 싸늘하게 식어있던 분위기는 이야기꾼의 갑작스런 분투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탄력 받은 그의 목소리가 한껏 올라갔다. 이제 삼 인의 영웅 중 나머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를 차례였다.

  “어디에서 나타났나, 무적의 전사! 전투의 신!”

  청중들은 다음에 터져나올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불멸의 성기사, 에일!”

  “크오오오오!”

  청중들의 환호가 좁은 여관 일층을 가득 메웠다. 이야기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과장된 말투와 동작을 써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네. 마물들은 삼인의 영웅 앞에서 한낱 낙엽더미에 지나지 않았다네. 이년 동안 펼쳐진 지옥은 삼 인의 영웅의 지도아래 삼 년에 걸쳐 물러갔다네.”

  “삼 인의 영웅!”

  청중들은 오랜 세월 민간에 내려온 순서와 형식에 맞춰 삼 인의 영웅을 외쳤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네!”

  “삼 인의 영웅!”

  “대마법사는 렌바니아로 돌아갔다네. 대마법사 메를렌 젠 하르디엔 만세!”

  “만세!”

  “흑기사는 발세룬으로 돌아갔다네. 위대하신 발세룬의 왕, 발자스 본 프리지드 발세룬 폐하 만세!”

  “만세!”

  “그리고 에일!”

  그가 에일을 부르짖자 장내는 조용해졌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모습을 감추었다네. 그는 아무런 부귀영화도 바라지 않았다네. 삼 인의 영웅! 삼 인의 영웅!”

  “삼 인의 영웅! 삼 인의 영웅! , 거룩하다, 그 이름∙∙∙∙∙∙.”

  이야기꾼과 청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삼 인의 영웅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다. 산골 마을에 부는 밤바람은 점점 더 차가워졌지만, 작은 여관에서 피어난 열기는 점차 뜨겁게 달아올랐다. 노래는 한참 동안이나 계속 되었고, 자정을 넘어서야 여관의 불이 꺼졌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가고 불이 꺼진 여관 일층에 이야기꾼만 남았다. 그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역사학자인 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매번 내용도 문장도 억양도 똑같은 시조에 맞춰 추임새 넣고, 끝나면 노래 부르는 일련의 행위들 중 어디가 즐겁다는 건지 전혀 이해 못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마치 어둠 속에 누군가 있기라도 한 듯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느 이야기꾼의 이야기 끝

 

 

 

제1부   -대마법사의 발자취


  파란 하늘.

  높이 떠가는 흰 구름.

  꽃과 풀이 가득한 언덕 위를 키 큰 노인과 손녀가 오르고 있었다. 노인은 손녀를 위해 천천히 걸었지만, 손녀가 워낙 어려 그녀는 금새 뒤쳐졌다. 노인은 그런 손녀를 기다리며 잠시 멈추었다. 남동풍이 불어와 언덕 위를 가득 채웠다. 손녀가 가까이 가자 노인은 한 팔을 들고 하늘을 보며 서있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친구를 부르는 거란다.”

  그때 남동풍에 수많은 나뭇잎이 실려왔다. 그에 휩싸여 노인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손녀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노인을 향해 힘껏 달려갔다. 그러나 노인과의 거리는 오히려 점점 멀어졌다.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마리엘.”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흩날리는 잎사귀에 가려 노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남동풍에 실려오는 짙은 풀 냄새와 온기 너머로 노인의 목소리가 메아리 쳤다.

  “잠시 이별이구나, 마리엘. 그러나 안심하려무나. , 메를렌 젠 하르디엔은 꼭 돌아올 테니.”

  “할아버지!”

  이윽고 잎사귀들이 사라졌다. 바람이 잔잔해지자 노인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마리엘의 외침은 바람에 실려 언덕 위로 울려 퍼졌다. 그녀는 더욱 목청껏 소리질렀다.

  “언제 돌아 오시냐고요!”

  그러자 남동풍이 대신 그녀의 귓가에 소근거렸다.

  ∙∙∙∙∙∙아주∙∙∙∙∙∙오랜∙∙∙∙∙∙후에∙∙∙∙∙∙

 

 

{1}

 

오월의 어느 저녁. 은은한 햇살이 들어오는 도서관. 하르디엔가의 집사 자멜은 한창 독서중인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은발에 푸른 눈, 그리고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다리 위에 올라가 높이 꽂혀있는 책들을 살피는 중이었는데, 집사가 다가온 줄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삽화.jpg

  “또 사다리 위에서 독서 중이시군요, 라고 말하려 했지요, 자멜?”

  하얀 소녀. 마리엘은 눈을 여전히 책에 고정한 채 태연하게 말했다.

  “아가씨께서 다치기라도 할까 이 늙은이는 걱정입니다. 주인님 내외분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로 하르디엔가의 유일한 버팀목이셨던 메를렌공께서도 십 년 전에 행방불명. 이제∙∙∙∙∙∙.”

  “, , 하르디엔가의 후계자는 저 뿐이죠. 매일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 자멜.”

  그녀는북부혼대륙 전쟁사커버를 덮었다. 꽤 두꺼운 그 책을 그녀는 요령 있게 책장에 꽂아 넣었다. 그 다음 곧바로 뛰어내렸다.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였지만 소리하나 내지 않고 사뿐히 내려섰다.

  “아가씨!”

  “, 치마 입었을 땐 조신하게 굴어야 했죠?”

  “그도 그렇지만, 아가씨도 올해로 열 네 살이십니다.”

  마리엘은 집사의 꾸지람에 고개를 숙여 반성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내가 잘못했어요, 자멜. 그런 의미에서 저쪽에 꽂혀있는렌바니아 귀족가문 계통의 역사좀 읽어도 되죠?”

  “안됩니다, 아가씨.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그러자 마리엘은 대뜸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았다.

  “내가 이렇게 반성하는데도요?”

  하르디엔가의 현 당주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지만 집사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한 달에 한 번뿐인 만찬회입니다. 저택의 모든 구성원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한자리에서 식사하며 의견을 말하는 시간입니다. 메를렌공께서 남겨주신 중요한 관례란 말입니다.”

  그러자 마리엘은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힘없이 책장에 기대어 섰다. 그녀의 뺨 위로 눈물 한 줄기가 흘러 내렸다.

  “그래요.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소중한 관례를 내가 망쳐서는 안 되겠죠∙∙∙∙∙∙.”

  “알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어서 만찬회장으로 가시죠.”

  “뭐야, 자멜! 여자가 우는데 반응이 뭐 그래요?”

  “너무 자주 쓰시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게 그런 건 평소에 참고 참았다가 결정적일 때 터뜨려야만 위력이 있다고 누차 말씀 드렸잖습니까?”

  “.”

  눈물 연기에 실패한 마리엘은 투덜거리며 도서관을 나갔다. 집사는 그런 그녀가 도망이라도 갈까 걱정되어 바짝 뒤따랐다.

 

  만찬회장은 저택에서 가장 큰 홀에서 치러 졌다. 이 행사에는 모든 저택 사람들이 신분에 상관 없이 참석 가능했다. 마리엘이 회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준비된 모든 자리가 꽉 차 있었다. 그들은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 당주가 오기만 기다리던 눈치였다. 마리엘은 모두의 눈길을 받으며 비어있는 최고 상석에 앉았다. 모두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숨을 죽였다. 마리엘은 그런 그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치 보지 말고 어서 먹어요.”

  “우오오오오!”

  그 한 마디에 여태 얌전하던 모든 사람이 돌변하여 음식에 달려들었다. 회장은 삽시간에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차며 소란스러워졌다. 마리엘은 음식에 손대지 않고 식탁 위에 엎드려 턱을 괴었다.

  “나 참, 이럴 때만 당주인 게 실감이 난다니까.”

 

  만찬은 늦은 밤까지 계속 되었다. 그 동안 저택 사람들은 저마다 고충을 이야기하고 각자 담아온 생각을 자유로이 말했다. 마리엘은 의견이 나올 때마다 간략히 받아 적으며 가끔씩 충돌이 있을 때만 끼어들어 조율했다. 이는 귀족이 득세하고 있는 렌바니아에서 원래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르디엔가의 경우, 대대로 마법을 연구하며 공화국 아스칼리아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이런 가풍이 렌바니아의 다른 귀족가문 입장에서 볼 때 별로 좋을 것이 없었으나, 뛰어난 마법학자를 배출해온 하르디엔가의 지위와 유명세 때문에 함부로 간섭하지 못했다. 마리엘은 하르디엔 가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렌바니아 귀족이라면 의례 가지고 있는 권위의식이 전혀 없었다. 지금 만찬회에서도 그녀는 단지 최고 상석에만 앉아있을 뿐, 실제로 하는 일은 회의석상에서의 사회자 정도에 불과했다.

  “이번엔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하르디엔 영지 내에서 가장 큰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도빌 이었다.

  “최근 외곽 농가에서 가축이 짐승의 습격을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가씨.”

  “계속하세요, 도빌.”

  마리엘은 여전히 턱을 괸 채 종이에 간단히 몇 줄 적었다.

  “원래대로라면 그저 경비대에 말해서 보초 몇 명 지원 받으면 될 일이지만, 습격을 받은 가축들의 상태가 너무 이상해서∙∙∙∙∙∙.”

  도빌은 끝말을 흐렸다.

  “어떻게 이상하다는 거죠, 도빌? 단순히 늑대 같은 게 아닌가요?”

  그러자 도빌은 손짓으로 일꾼들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아가씨께서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꾼들이 홀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천으로 덮은 작은 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열려있는 홀의 정문으로 차가운 밤바람이 조금 밀려들었다. 찬 공기는 홀 중앙을 가로질러 반대편 끝에 앉은 마리엘의 어깨까지 흘러갔다.

  ∙∙∙∙∙∙위험해∙∙∙∙∙∙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자멜?”

  말소리는 갑자기 귓가에서 들려왔다.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마리엘은 자멜이 뭐라고 한 줄 알았다.

  “?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아가씨.”

  “그래요? 방금 누가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글쎄요. 저는 그런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들렸는데∙∙∙∙∙∙.”

  마리엘은 손등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몸이 편찮으시다면 그만 할까요, 아가씨?”

  “아니, 아픈 건 아녜요. 고마워요.”

  마리엘이 어딘가 아픈 줄 알고 멈칫했던 일꾼들은 자멜이 계속하라는 손짓을 보내자 수레를 홀 한가운데까지 끌어다 놓았다.

  “보십시오, 아가씨.”

  도빌은 수레를 덮은 천을 걷었다. 천 아래의 물체가 드러나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수레에는 머리가 통째로 뜯겨나간 말의 시체가 있었다.

  “보통 늑대라면 양을 빤히 놔두고 무리하게 말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공격해도 몸통부터 물어뜯죠. 그러나 이 말은 정확히 머리만 뜯겨나갔습니다.”

  그는 목이 뜯겨나간 부위를 가리켰다.

  “더 큰 문제는 여깁니다. 목의 상태를 보면 무언가 커다란 턱을 가진 짐승이 한 번에 물어뜯은 것 같지 않습니까?”

  말의 시체는 목 부분이 안으로 오목하게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정말 입이 커다란 짐승이 한 번에 물어서 머리를 자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마리엘은 그 정도로 큰 턱을 가진 산짐승을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중에는 없었다.

  “자멜. 아무래도 왕립 아카데미에 편지를 써봐야겠어요.”

  “아가씨께서도 모르십니까?”

  자멜의 눈이 커졌다. 마리엘은 어릴 때부터 메를렌이 저택에 만들어 놓은 도서관에서 꾸준히 독서를 해왔다. 그 곳은 메를렌이 평생 읽어온 장서를 보관해 놓은 곳으로, 마리엘은 비록 열 네 살이었지만 장서의 대부분을 읽은 터라 이미 지식 량은 웬만한 학자 수준이었다. 그런 마리엘조차 짐작을 못하니 자멜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대답은 내가 해주겠소.”

  아직 열려있는 정문으로 낯선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저택에 있는 누구도 그 사내를 본적이 없었다. 사내는 검은색 망토로 온 몸을 가리고 검은 후드 아래 입가만 내놓은 차림이었다.

  “누구냐? 멈춰라!”

  그 수상한 행색에 자멜이 더 들어오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사내는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벽과 정문 근처에 서있던 경비병들이 그를 둘러싸러 왔다.

  “그건 일종의 시험이었소.”

  사내는 앞뒤 모두 자르고 그렇게 내뱉었다. 자멜이 손짓하자 둘러싼 경비병들이 일제히 창을 겨눴다. 마리엘은 그 사내에게서 이유 모를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겉으론 최대한 태연하게 굴었다.

  “하르디엔 저택은 허가 받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대는 누구 인가?”

  마리엘의 말투는 이제까지와 달리 위압적이고 힘이 실려 있었다. 자멜은 그녀를 거들었다.

  “네 신분과 이름을 밝혀라!”

  경비대는 사내를 향해 더욱 위협적으로 창을 세워 보였다.

  “우린 이름이 없소.”

  사내는 자신이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그는 입고 있던 망토자락을 벗었다. 그는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는데 몸 위로는 문신이 가득했다. 그리고 배에는 단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모두 놀란 나머지 말을 잃었다. 사내는 단검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배에서 피가 한 가득 흘러나왔다. 홀 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내를 포위한 경비대원들 역시 당황하여 주춤거렸다.

  정작 사내만이 평온한 얼굴로 단검을 잡아 옆으로 당겼다. 단검은 그의 배를 횡으로 길게 갈랐다. 마치 통으로 물을 붓는 것처럼 많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사내의 창자가 바닥에 쌓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마리엘만이 사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주문을 읊는 것 같았다. 이내 그녀는 오래 전 책에서 읽었던 구절 하나를 기억해냈다.

  ‘마력이 없는 자가 다른 세계의 존재를 소환하려 할 때, 가장 효력이 강한 재물은 자기 자신이다.’

  그녀는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모두 도망쳐요!”

  그때 바닥에 널브러진 창자 위로 사내의 몸이 쓰러졌다. 그러자 그의 피와 내장이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거품은 점점 크고 검게 변하더니 이윽고 커다란 짐승의 입 모양으로 변했다. 그 입은 쓰러진 사내의 몸을 뜯어먹고는 수많은 촉수를 내었다. 촉수는 길게 자라나며 그 끝이 다시 입으로 변했다. 경비대원들은 창으로 그 괴물을 찌르려 했다.

  “공격하면 안 되요, 달아나요!”

  마리엘이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수많은 입들은 창 자루는 아랑곳 않고 경비대원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미 저택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었지만 괴물은 매우 빠르게 자라났다. 홀에서 사람들이 얼마 빠져나기도 전에 이미 홀의 반을 메울 정도로 커져 있었다. 마리엘과 자멜은 사람들이 질서 있게 빠져 나가도록 지휘했다.

  “아악!”

  그때 밖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렸다. 마리엘이 놀라 돌아보자 무언가에 쫓겨 되돌아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뒤로 시뻘건 덩어리들이 굴러다녔다.

  “안돼!”

  마리엘은 절규했다. 덩어리는 모두 달아났던 사람들의 시체였다. 대부분 몸의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마리엘은 급기야 자제력을 잃어 눈물을 터뜨렸다. 여태까지 당주로서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했으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미 하르디엔 저택 사람 중 대다수가 죽어버렸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자멜이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

  “아가씨. 피하시죠.”

  자멜은 마리엘을 억지로 잡아 끌며 뒷문으로 갔다. 그 쪽은 아직 안전해 보였다. 그는 뒷문으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가지 않고 잠시 멈추었다. 힘없이 딸려온 마리엘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를 쳐다봤다. 자멜은 복도에 세워진 갑옷 하나를 힘껏 밀었다. 그러자 갑옷이 있던 자리에 작은 통로 하나가 드러났다. 당주인 마리엘조차 몰랐던 비밀통로였다.

  “자멜! 이게 대체∙∙∙∙∙∙.”

  “지금껏 숨겨서 죄송합니다, 아가씨. 저는 원래 캐스번의 전사였습니다. 메를렌님의 부탁으로 그 동안 아가씨를 지키며 집사 노릇을 해왔습니다. 제 임무는 아마도 오늘까지 인 듯싶습니다.”

  자멜은 마리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다짜고짜 그녀를 통로에 밀어 넣었다.

  “잠깐! 자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멜은 갑옷을 다시 움직였다. 그걸로 비밀통로를 막으며 말을 이었다.

  “이 통로는 밖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통로 끝에 놓인 상자를 꼭 열어보십시오. 그리고 꼭∙∙∙∙∙∙.”

  “자멜!”

  “살아야 합니다!”

  마리엘은 입구를 막은 갑옷을 치우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자멜은 갑옷을 단단히 고정 시킨 뒤 품 속에서 작은 검을 꺼내어 쥐었다. 괴물은 어느새 홀을 모두 잠식하고 복도까지 자라나 있었다.

  “내 비록 늙었지만 나를 죽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통로 안의 마리엘은 자멜의 목소리가 들리자 더욱 떠나기 싫어졌다. 계속해서 입구를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밖에서는 이미 괴물의 울음소리와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된 것 같았다. 마리엘은 갑옷과 통로 사이의 틈에 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이 상해서 피가 나기 시작했지만 손이 아픈 줄도 몰랐다.

  “자멜! 어서 들어와요! 같이 도망치면 되잖아요!”

  그러다 별안간 싸우는 소리가 그쳤다.

  “∙∙∙∙∙∙자멜? 살아있죠?”

  그때 갑자기 으적 하고 고기 씹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의 틈으로는 피가 흥건하게 스며들었다.

  “!”

  마리엘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았다. 이 많은 피가 누구의 것일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멜은 마리엘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하르디엔가의 집사였다. 그녀에겐 선생이자 부모 같은 존재였다. 그런 사람의 피가 지금 마리엘의 눈 앞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피에 손을 갖다 대었다. 피는 아직 따뜻했다. 밖에서는 우적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렸다. 이 모든 게 마리엘에게 너무 급작스러웠다. 아무런 예고도 낌새도 없었다. 그녀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멍하니 서있는 그녀의 귀에 돌 긁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입구를 막아 놓은 갑옷이 지지대 째 흔들리고 있었다.

  ‘꼭 살아야 합니다!’

  자멜의 마지막 부탁이 떠올랐다. 역시 일단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멜이 말한 대로 통로의 반대편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최대한 힘을 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커다란 쇳소리가 났다. 어쩌면 갑옷이 복도에 쓰러지면서 낸 소리일지 몰랐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었다. 더 큰 위기를 느끼자 오히려 몸의 떨림이 멈추면서 다리에 힘이 생겨났다.

  ‘살고 싶어.’

  그녀는 어두운 통로를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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