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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ve (3)
게시물ID : panic_640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윈스턴
추천 : 23
조회수 : 165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4/02/12 11:10:41
늘씬하고 키가 큰 남자 하나가 철제 배트를 들고 서 있었다.
말끔한 것으로 보아 절대 좀비 따위는 아니었고, 오히려 생존자 치고는 너무나 깨끗하고 혈색도 좋아 보였다.
 
", 뭐시여. 시방 여서 사시는것이여?"
 
"그런데요."
 
중저음으로 무겁게 깔리는 목소리로 짧게 대답하는 남자.
일행은 남자의 나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예상했듯이 너무나 좁은 그 집 안의 공간은 남자 혼자서 누우면 딱 알맞을 정도의 크기인지라, 서로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야만 했다. 그렇게 좁고 밀폐된 공간에 서로가 살을 맞대고 붙어있다보니, 목욕을 하지 못해 나오는 퀴퀴한 쉰내가 코를 괴롭게 찔러왔다.
 
", 목욕 하실래요?"
 
"목욕 할 수 있어요!?"
 
민아가 가장 먼저 달가워하며 대답해왔다.
남자의 집 뒤에는 돌 더미에 시멘트를 발라 만든 조금 높은 크기의 축대가 있었고, 그곳 갈라진 틈에서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물이 흘러나오는 곳 아래에는 남자가 구덩이를 파 매끄러운 돌들로 바닥을 만들어놓은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을 식수로 쓰고, 그 아래 고인 물로 빨래나 목욕을 하고 밭에 물을 준다고 했다. 민아가 가장 먼저 목욕을 하기로 했고, 뒤를 이어 인건과 종수가 목욕을 했다. 남자가 왜 그렇게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저는 이영선이라고 합니다. 야구선수구요."
 
"어째, 테레비에서 본적이 없는듸 어디 선수요?"
 
", 한화쪽에2군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어요."
 
뭔가 안좋은 얘기로 흘러가는 듯 해서 말을 아끼기로 했다.
하지만 영선은 선뜻 이야기를 서슴없이 이어갔다.
 
"제가 힘은 좋은데정확도가 없어서 영 볼을 칠수가 없어서, 연습하러 산에 들어왔거든요."
 
요즘 세상에 산중수련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천연기념물 감이었다.
알고보니 그가 처음 들고 나온 배트도 철제 배트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했는데, 말 그대로 무쇠로 만든 배트였다. 뭔가 선수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따, 이런 배트로다가 휘둘러대면 어깨 안나가쇼?"
 
영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실 없는 소리로 치부하고 싶은데, 영선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뭐라 말은 못하겠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종수는 밖의 탐스러운 밭의 작물들을 바라보며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래 저런거 심어가지고 연명하고 계셨소?"
 
"원래는 제가 밥을 많이먹어서, 좀 여기 쌀도 쌓아놓고 통조림같은 반찬도 많았는데요새는 먹을거 사러갈데가 없으니 취미로 기르던 옥수수 같은거나 따 먹으면서 버티고 있네요."
 
종수는 영선이 차츰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짚어서 가는 길을 함께 하자고 종용했다. 텃밭이 한 열배 정도만 넓었더라도 먹고 살 수는 있을텐데, 병아리 오줌만한 텃밭으로는 며칠 간식거리밖에 안되는 일이었기에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그리고 야구선수 출신의 건장한 사내가 함께 한다면 길이 더욱 수월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선은 잠시 고민하느라 침묵했다. 밖은 확실히 위험했고, 차라리 여기서 땅을 더 개간해 농사나 지으며 같이 사는것은 어떻겠냐고 말했다. 경계만 잘 서면 좀비도 별로 없는 산 속인지라 습격받을 위험도 적다고 했고, 위험하게 도심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시국에 안락함만을 생각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큰일이라고, 이러다 어느날 운 나쁘게 좀비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면 어찌하며 태풍이라도 불어 작물이 싹 다 죽어버리면 꼼짝없이 굶어 죽는 것 아니냐고 종수가 이야기를 덧붙였다. 종수의 이야기가 꽤 잘 먹혀들어가는 것 같았다.
영선도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고, 현재의 삶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안전해보이는 장소를 찾은 터라, 그것을 잃기가 싫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위협받을 수 있는 불안한 장소였고(오히려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산에서 이토록 안전하게 살아온 것이 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더 좋은 장소를 찾고 식량을 찾는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바뀌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영선은 집 안에 있는 생필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일 손을 도와, 남은 작물을 모두 수확했고 비누나 라이터, 얇은 담요나 아껴둔 참치 통조림 따위는 모두가 나눠서 들고 영선에게는 아주 조금의 짐만 배낭에 넣어 들려주었다. 영선에게 짐을 가볍게 들려주는 이유는 유사시에 빠른 기동성으로 신속하게 해결해 달라는 의미였고, 영선은 일행중에서 가장 먼저 앞장서며 나아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맨 후면은 종수가 맡아 혹시나 뒤에서 습격당할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했고, 민아가 지도를 들며 길을 살폈다.
가장 무거운 짐은 인건이 들게 되었는데, 차라리 인건은 좀 힘들더라도 이런 일이 편했다.
영선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었고, 종수처럼 싸움을 잘하거나 생존 노하우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왠지 자신이 없어지는 본인이 싫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수심을 읽은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민아가 한번 뒤를 돌아보며 웃어주니 '그냥 앞으로 잘 하지 뭐.' 라고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남산의 꼭대기는 관광지라 넓은 부분을 보도블럭을 깔아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기에 좀비들도 많을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형 마트 따위에나 몰리지 이런 높은 지대의 관광지는 올라오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행여나 라는 것이 있어서 긴장을 하고 올라갔지만, 좀비는 거의 없었고 그런 좀비들은 영선의 배팅 몇 번에 피를 흩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내려가는 길을 잘 선택해야 하기에, 남산의 전망 좋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미군 부대를 찾았다.
저 아래에 국방부와 녹사평 방면의 이태원이 보였는데, 하얏트 호텔의 거대한 건물과 부지를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남산을 내려가면 치열하게 좀비들을 피해가며 전진해야 한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걸어서 삼 십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가까운 거리였지만, 지금은 경계에 경계를 거듭하며 천천히 이동해야 했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감히 시간을 예상할 수 없는 거리였다.
 
 
"자, 이제부터… 저 도로를 넘어서, 호텔 부지까지 도착만 하면. 그 다음은 사람들이 적은 주택가 골목들 사이사이를 통해 이동하면 돼. 유사시엔 낮은 담장들이 많으니까 담을 넘어서 피해버리면 그만이고, 우선 도로만 넘어가면 괜찮다는 소리야."
 
지도를 펼쳐서 설명하는 종수는 길을 잘 외우도록 재차 일행에게 설명했다.
이 곳에서 벗어나는 순간, 도중에 쉴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탓이다.
 
 
 
 
 
 
 
 
 
 
 
 
 
 
걱정하던 호텔 부지 앞은 잘 넘겼다.
호텔의 내부에는 좀비들이 득실거렸지만, 문이 걸어 잠겨있는 탓인지 건물 밖으로는 나오질 못했고 오히려 그 외엔 좀비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주택가까지 들어설 수 있었다.
이국적인 주택들이 많았고, 대부분 얼키설키 이어 지어져있어 골목은 좁고 많았다.
 
"… 으읏……."
 
영선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일행을 제지한 뒤, 인건의 잠망경을 통해 망을 보고 있었다.
다음 갈래로 돌아서 이동해야 하는데 눈 앞에 좀비가 한마리 버티고 서 있었다.
오래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끈적한 피로 질척해진 머리를 연신 벽에 두드리고 질질 끌어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둔감한 움직임에도 연신 주변을 살피는 듯 천천히 두리번거리는 꼴이 섣불리 나섰다간 들키기 딱 좋아보였다. 영선은 좀비가 조금씩 움직여 비켜 지나가길 기다리길 바랬으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종수가 손가락질로 손목을 가리키며 싸인을 준다.
 
날이 저물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숨을 곳 없는 길 한복판에서 날이 저물면 불도 켜지 못하는 상황에서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었다. 영선은 결단을 내려야했다.
 
저벅 저벅 저벅
 
소리가 나지 않게 걷는다고 걷는 것이 왜 이리 자갈 끌리는 소리가 나는지 깨끗하지 못한 길목이 연신 밉살스럽게만 느껴졌다. 다행히 좀비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영선이 바로 뒤까지 서서 배트를 치켜드는 것 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퍼석
 
 
대체적으로 같은 금속이라 할지라도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만든 배트보다는 강철로 만든 배트가 훨씬 무겁다.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 상황은, 마치 무언가에 거칠게 뜯겨나간 듯 좀비의 머리는 간헐적으로 공중에 피를 뿌리며 내리막길 계단을 통통 튀어 굴러 떨어졌다.
모두의 심장이 얼어붙는다.
그리고 좀비의 머리가 벽에 벽에 부딪쳐서 멈춰섰다.
잠시동안 긴장감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침묵이 주변을 멤돌았다.
모두의 바램을 원망스럽게 깨어버리고 벽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좀비 한 마리였다.
머리가 계단을 타고 굴러 떨어지며 낸 소음을 들은 것인지, 좀비는 길을 돌아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뺨이 거의 다 찢겨나가 주체할 수 없이 벌어지는 징그러운 턱주가리를 쩌억 벌리고는 소리질렀다.
 
 
"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입에서 피가 섞인 침을 튀겨가며 사지를 떨어대는 혐오스러운 몰골로 뛰어오기 시작했고, 뒤를 이어 또 다른 몇 마리의 좀비들이 무서운 기세로 뒤를 이어 달려왔다. 영선이 몇 걸음 앞서 내려가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신체에서 난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강한 타격음이 사정없이 주변 공기를 가른다. 마치 금속성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을 정도였지만, 금속은 배트 뿐이고 부딪치는 것은 살과 뼈 일진대 무서운 기세에 보는 사람들이 다 억눌릴 정도였다.
기세는 좋았으나, 종수는 영선을 말려야했다.
 
 
"그렇게 상대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다니까!!! 일단 뛰어!!!"
 
 
배트를 격렬히 휘두르는 영선의 눈 먼 배트에 잘못 맞을까 싶어 고개를 있는대로 숙이고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기며 반대편으로 달렸다. 좀비들은 지금까지 유령도시처럼 보일 정도로 조용한 동네였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자비하게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집집마다 숨어있던 좀비들까지 뛰쳐나오는 듯 싶었다.
아무래도 주택가이다 보니 길을 떠도는 좀비보다는 집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죽은 사람들의 좀비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았다.
평소에는 느리고 둔하기 그지없는 좀비들이 왜 이런 순간에는 살쾡이나 사냥개마냥 빠른지는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달리다가 너무 바짝 따라붙는다 싶으면 영선이 잠시 멈춰 조금씩 정리를 하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행여나 찝찝하고 혐오스러운 그들의 피가 입 안으로 튈까 싶어 입 한번 벌리지 못하고 코로만 호흡하며 배트를 휘두른다.
이미 얼굴은 있는대로 피 칠갑을 한 상태였고, 옷 또한 나름대로 깔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져 뻘겋고 끈적한 액체에 흠뻑 젖어들었다.
문제는 점점 길을 내려갈수록 길이 넓어지고, 좀비의 숫자 또한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골목을 하나 지나칠 때 마다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져만 간다.
 
 
 
 
 
 
 
 
 
 
 
 
 
 
 
 
 
 
 
 
 
 
 
 
 
 
 
 
 
 
 
녹사평 역 내부에 일행이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이나 더 지난 뒤였다.
 
일행은 미친듯이 가파른 해방촌 골목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좀비들을 따돌리는데에 보냈고, 민아를 필두로 체력이 저하되어 금방이라도 잡힐듯한 위기가 찾아왔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강행돌파하여, 운을 걸어본 것이 낭보를 가져다 주었다. 지하철의 문을 열지 못했더라면 아마 일행은 뼛조각 추리기도 힘들 정도의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렸을 것이지만, 다행히 지하철은 철창 형태의 차단문만이 내려와 있던 까닭에 그것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니퍼로 자르고 들어가 문을 내려 닫아버렸다. 좀비들이 문을 들어서 열 만한 지능도 없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자물쇠를 걸던 잠금장치는 특정한 쓰임새 없이 도구로만 가지고 있던 쇠 젓가락을 꽂아서 임시방편으로 잠궈버렸다. 아마 창살 틈새로 손을 뻗어 젓가락을 뽑고 문을 들어서 열지 않는 한, 좀비들은 역 내로 들어설 수 없을 것이었다. 물론 문이 부숴진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렇게 오래 있을 작정은 아니었다.
 
"여기서 하루 쉬었다가… 반대편 출구로 나가자. 그 앞에 좀비들만 없다면 다시 숨어서 조심스럽게 갈 수 있을거야."
 
민아는 이미 쓰러져서 물을 들이키더니 잠들어버렸다.
역 내에 편의점을 살피기 위해 인건과 영선이 나섰고, 종수는 민아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얼마 걷지 않아, 지하철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는데, 아무래도 전기가 없다보니 랜턴을 통해 내부를 비춰야했다.
 
녹사평 역의 내부는 원통형으로 생겨서 가운데가 비어있는 까닭에 난간이 없었더라면 저 밑바닥 지하 3층까지 떨어지기 딱 좋아보였고, 이동할 적에는 빙글빙글 돌면서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좀비들이었는데, 간간히 층마다 몇몇의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는 꼴이 인건은 마음 편히 무언가를 찾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정리 하고 갈까요?"
 
 
 
영선은 인건이 대답하기도 전에 바닥을 배트로 내리찍어 두드렸다.
 
 
 
 
 
 
 
캉 캉 캉 캉 캉
 
 
 
 
 
 
 
그 순간 사방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좀비들이 하나 둘 씩 멈춰버린지 오래인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영선은 그때마다 좁은 통로로 하나씩 순서대로 올라오는 좀비들을 배팅기에서 나오는 야구공 쳐내듯이 좀비들 머리를 때려 쳐내기 시작했다. 피를 흩뿌리며 에스컬레이터 밖으로 넘어가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좀비도 있었고, 상태가 좋지 않아서 내구성(?)이 좀 떨어지는 좀비들은 머리가 송두리째 뜯겨나가 마치 홈런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머리통이 덜 뜯겨져나가 머리가 대롱대롱한 상태에서 어기적거리는 좀비는 발로 걷어차서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굴려보내면 뒤따라오던 좀비들이 볼링공에 맞은 볼링핀들마냥 엉겁결에 같이 굴러 떨어지는 꼴을 보고 웃기도 하였다. 마지막 좀비로 예상되는 녀석이 뒤늦게 어기적거리며 기어 올라오는 순간에는 배트를 세워 허공을 가리킨 뒤 배팅자세를 취했다.
영락없는 베이브 루스 꼴이었다.
 
 
 
"어떻게 그런 위험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오늘 밤은 조금 마음놓고 잘 것 같지 않아요? 저 아래 좀비들이 그렇게 많은데 혹시나 올라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 어떻게 잠을 자요."
 
 
 
뭔가 나사가 하나 두개 풀린 정도가 아닌 것 같은 사고방식이었는데, 그래도 그만큼 힘이 세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도 현실로 옮겨서 잘 해결하는구나 하고 인건은 생각했다. 정말 헛웃음만 나올 일이었다.
영선과 인건이 역 내 편의점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것은 이십분 정도가 지난 뒤 였는데, 일찍 잠들고 싶은 까닭에 빨리 온 것도 이유지만 편의점 자체가 좁고 온전한 물건이 거의 없다보니 뒤질 것의 가짓수가 딱히 마땅치 않았기 때문인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그래도 비닐까지 다 뜯겼지만 정작 내용물은 멀쩡했던 바닥의 컵라면 한 개와 진열대 아래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던 과일맛 캬라멜과 초콜릿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아마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사람들이 날뛰던 북새통 속에서 쓰레기로 보였거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떨어졌기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민아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남자들은 원체 힘을 많이 쓰기도 했고, 다음 날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비축해야 했으니 뭔가를 좀 먹어야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유통기한이 짧은 것은 영선의 거처에서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였다.
 
그리고 가장 무겁고 부피가 많이 나가는 짐 이기도 했기에 빨리 먹어 없애는 것이 더욱 현명했다.
빨리 잠들기 위해 불침번 한 명이 감자를 깎고 나머지는 옥수수를 대충 먹은 뒤 바로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당연이 첫번째 보초는 인건이었다.
감자를 열심히 깎아대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서 신경이 두 배 세 배는 넘게 쓰이는 것이 퍽 피곤했지만, 감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자기 순번대에 다 깎아놓기로 했다. 다행히 건전지들은 몇 남아있어서 경계를 하고 감자 깎는데 사용할 랜턴의 건전지는 풍족한 편이었다. 인건 역시 눈이 스르르 감겨왔지만, 불침번이라는 것이 원래 졸리고 힘든 것이니 어찌하랴.
가끔 젓가락으로 대충 잠그고 온 철창이 철컹소리를 요란하게 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만, 저런 격한 소리가 난다는 것은 아직 문이 건재하다는 뜻이기에 시야에만 신경쓰기로 거듭 결심했다.
 
 
 
피피피 피피피
 
 
 
어느덧 알람이 교대 시간을 알렸다.
인건은 영선을 깨우기 위해 그를 흔들었다.
일어나고 나서도 비틀거리고 몸이 축 처지는 것이 여간 힘든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몇 시간 내내 배트를 휘두르며 뛰어다녔으니 버틴것이 기적이었지만 야구 선수인 까닭에 체력이 좋아 충분히 받쳐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영선이 힘겹게 일어나는 모습이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본인도 빨리 자야 남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에 인건은 꾹 참고 눈을 감았다.
불침번을 서기 시작한 영선이 생감자를 먹는 소리가 사각사각 하며 들려왔다.
 
 
 
 
 
 
 
 
 
 
 
 
 
 
 
 
 
 
 
 
 
 
 
 
인건은 꿈을 꾸었다.
좀비가 되어서 텅 빈 도시를 걷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인건은 왜 걸어다니는지 이유를 몰랐다.
언제서부턴가 주변에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인건은 여전히 좀비였다.
그러다 비명소리가 주변을 잠식하고,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나 모든것을 태웠다.
사람들이 도망가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 처참한 모습을 바라볼 때에 인건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날이 밝자 일행은 남은 옥수수와 감자, 참치 통조림 조금에 생수로 배를 채웠다.
민아에게는 식량을 특별히 더 얹어서 주었는데, 체력이 안되는 만큼 더 잘 먹으라는 의미도 있었고 새벽녘에 보초서다가 좀 먹었으니 민아가 더 먹어야 공평하다는 의미도 있었다.
 
 
반대편 지하철 입구를 열어내고 역을 나선것은 오전 열 시 무렵이었다.
더 일찍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미군부대는 얼마 남지 않았고 체력을 조금 더 비축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조금 늦은 잠을 잔 편이었다. 그럼에도 인건은 종아리를 비롯한 온 몸의 근육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지만 미간이 계속 좁혀져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민아도 온 몸이 아픈 것 같아 보였다.
 
지하철 입구 밖에는 좀비들이 드문드문 차량들 가운데에 서서 고개를 이상한 방향으로 꺾어가며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위험이었다. 차량들은 사방에 부딪쳐서 사고가 난 것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시커멓게 불에 타 있는대로 그을린 것도 많았다. 사고가 터질 당시 이 장소가 얼마나 아비규환이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영선은 전날 녹사평 역 안에서 썼던 방법을 쓰려고 했지만, 그런 영선을 인건이 제지했다.
이런 탁 트인 장소에서는 좀비를 상대하기 더 까다롭고, 자칫 잘못했다간 어제 반대편 역 입구에 떼어놓고 온 좀비들이 다시 몰려 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불규칙하고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의 대열 사이로 몸을 숙여 조용히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거의 기다시피 몸을 사정없이 낮춰서 걷는 동안, 몸을 사방에 널린 차체들로 숨기는 일이기에 의외로 효과는 괜찮았다.
눈치채는 좀비는 하나도 없었으며 길만 잘 찾아가면 여유롭고 꾸준히 이동할 수 있었다.
단지 좀비의 눈길에 닿지 않고서야 지나갈 수 없는, 도주 루트가 아예 없는 길목이 몇 있긴 했었지만 그때마다 그 좀비가 어기적 어기적 걸어서 빈틈이 생기는 곳 까지 이동하도록 기회를 엿봤다.
 
그렇게 길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순간에는 코가 고역이었다.
 
뭔가가 불에 탄 냄새는 고사하고, 시체가 불에 타다 말고 썩은 내가 진동을 했고 아예 좀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걸어다니는 시체나 다름 없었기에 냄새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역했다. 너무 오래 악취를 맡으니 머리가 아프고 코가 저릿했다.
하지만 느리긴 해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기에 점점 미군부대는 가까워져만 갔다. 그것은 분명 느린 희소식이었고,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일행도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솔직히 그곳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만, 우선은 그곳이 목표였다.
 
 
 
 
 
 
 
 
 
 
 
 
 
거의 다 다가갔지만, 일행은 두 시간 조금 못 된 시간 전부터 이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체가 없는 좀비 하나가 연신 거의 다 떨어져나간 턱을 덜그럭거리며 주변을 더듬기만 하고 이동하질 않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잘못걸렸다간 거의 다 도착한 판국에 재를 뿌리겠다 싶어 가만히 있어 준 것이 벌써 점심나절을 지나 해가 뉘엿뉘엿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언제 비키는지 틈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잠망경으로 탐색했다. 눈알 하나가 근섬유 하나에 간신히 매달려 대롱거리며 추욱 늘어져 있었고, 코는 누가 뜯어먹었는지 선명한 이빨자국과 함께 그 안쪽의 두개골에 난 구멍과 점막 따위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손가락은 원체 몸이 말라 비틀어져가고 있는 탓에 뼈에다가 얇고 질긴 살가죽만 조금 입혀놓은 듯 관절 하나하나가 선명했다.
턱은 두개골에 간신히 매달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혐오스러운 비주얼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나온 길고 늘어진 혓바닥과 붉은 색으로 물든 치아들은 온통 부스러지고 깨져 있었다.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기에, 아무리 감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보고 있는 것은 고역중에 고역이었다.
 
이때, 민아가 종이 하나를 꺼내어 글로 이야기를 꺼냈다.
 
 
 
 
 
 
 
 
날이 저물어 버리면 미군부대나 국방부 내부가 어떤지 탐사도 못해볼 것이고, 만약 위험하다 해도 도망칠 시간이 전혀 없게 될거야.
그러니까 강행돌파를 해서라도 여유로운 시간에 들어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군부대는 애시당초 민간인이 월담하지 못하도록 관리나 설계에 대해 철저하니까 우선 빨리 도착하는데만 신경쓰자.
 
 
 
 
 
 
 
 
 
결국 그 말에는 모두가 동의했고, 더이상 기다리는 것은 우유부단한 일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내었다.
 
모두가 신호를 주고 받았고, 영선이 성큼성큼 다가가 기어다니던 그 혐오스러운 좀비의 머리통을 바순것을 시작으로 너 나 할것 없이 일행 전원은 미군부대를 향해 돌파를 감행했다.
의외로 좀비들의 반응속도가 느린 까닭도 있고, 워낙에 미군부대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부대 앞에 당도할 즈음에서야 좀비들이 하나 둘씩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은 문은 철제 펜스로 되어있고, 녹색의 두터운 천막으로 그 펜스의 안면을 감싸 내부의 상황을 빈 틈 없이 가려주고 있는 모양새였다. 고민하고나 내부를 정찰할 틈 같은것은 없었고, 너 나 할것없이 좀비들이 밀어닥쳐오기 전에 펜스를 기어올라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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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재미없는 파트 인 것 같아요.
 
이제 드디어 미군부대 들어섰네요. ㅎㅎ
 
아마 앞으로 3편정도 남은 것 같은데, 좀 많이 길고 지루하시죠 ㄷㄷ
 
공포라기보단 그냥 판타지 드라마 같기도 하고 ㅋㅋㅋ;;
 
계속해서 이것만 쓰진 않을거구요, 틈새 틈새에 다른 소설들도 쓸 생각이니 ㅎㅎ 이건 취향에 안맞으시면 그냥 심심풀이로 ㅎㅎ
 
 
 
하여튼 읽어주신 분들 정말 항상 감사합니당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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