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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괴담 시리즈] 보물찾기
게시물ID : panic_642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환상괴담
추천 : 53
조회수 : 5456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4/02/17 05:56:00
 즐거운 일이 있을 땐 세상이 희극처럼 느껴진다.
선엽도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황홀감에 빠져있었다.
 
" 하하하 "
 
계속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
 
- '지선엽 씨인가요, 보내주신 시놉시스 읽어봤는데 아주 참신했어요, 혹시 써놓은 원고가 있다면
한 번 보여주시겠어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
 
보여주기만 한다면야 자신있지, 손에 들린 서류봉투가 그 자신감만큼이나 두툼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처음이라 계약금 같은 건 기대 못 하겠지만 인세를 받는다면, 하하..'
 
 자신을 남들에게 '소설가'로 소개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선엽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서 출판사에 가서 담당자에게 원고를 전달하고 싶었다.
3류 대필작가로 남의 펑크나 막아주던 프리랜서 글쟁이 생활은 청산이다,
선엽은 씨익 웃었다.
늘 멍청한 표정으로 거니던 이 빌딩숲이 오늘은 선엽 자신을 위해 세워진 궁전처럼 느껴졌다.
 
 
" 독특해요, 문체가 흡입력이 있는걸요, 소재도 발상도 뛰어나요.
꼭 이렇게 글을 분석하고 말고를 떠나서, 무엇보다도 재밌어요. 다음 편이 궁금해지네요.
지선엽 씨, 출판합시다. 이 원고 받아둬도 되겠죠. "
 
" 아..! "
 
선엽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통과되다니,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 출판사의 시험을 통과하다니,
하지만 원고는 줄 수 없었다. 자필로 써온 원고는 사본이 아니었다.
아이, 한시가 급한데 미리 좀 뽑아놓을걸.. 마음 속으로 자신에게 핀잔을 주며 선엽은 머리를 긁적였다.
 
" 저어.. 이게 복사본이 아니라서요, 저도 다음 원고를 써야하다보니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이거 얼른 복사집에 가서 복사해올게요. 죄송합니다. "
 
준비성이 철저하지 못 했다고 느낀 선엽의 걱정과 달리  원고를 읽어본 직원은 별 나쁜 감정이 없어보였다.
 
" 네. 그러시죠. 어차피 근무시간 중이고하니, 퇴근시간 전까지만 가져다주세요.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선엽은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몇 번씩이나 하곤, 허겁지겁 서류를 챙겨 발걸음을 서둘렀다.
출판사를 빠져나가는 선엽의 발걸음을 직원의 부름이 붙잡았다.
 
" 선엽 씨! "
 
" 예? "
 
" 그 원고 중간에 반전, 완전 대박이었어요. 요즘 작품 하나 건지기 어려운데, 보물을 찾은 느낌이에요. "
 
직원의 치켜든 엄지손가락이 선엽의 마음도 한껏 띄워놓았다.
 
 
복사집, 복사집, 배터리는 또 왜 이렇게 없어,
하여간 스마트폰 배터리는 빨리 닳아서 탈이야..
 
충전이 필요하다는 스마트폰 알림창을 신경질적으로 끄고 선엽은 지도 앱을 자꾸 살폈다.
 
'분명 이 주변이라는데..'
 
" 젊은이. "
 
'미치겠네, 빨리 뽑아서 갖다드려야 할텐데. 기다리게 할수록 손해인데..
해준다고 할 때 빨리 매듭을 지어야 뒷통수를 안 맞지..'
 
" 학생! "
 
" 앗, 아.. 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
 
" 좀 도와줘. "
 
선엽은 초조하게 인쇄할만한 곳을 찾고 있다가 낯선 할아버지가 부르는 통에 생각을 잠시 멈췄다.
 
" 뭘 도와드리면 되나요? "
 
" 바쁠텐데 참 미안해.. 별게 아니고.. 이 쌀을 마트에서 샀는데.. 도무지 집까지 들고가기가 쉽지가 않아.
젊은 자네가 들어주면 금방일텐데, 우리 집이 여기서 좀 떨어져있어. "
 
왠만해선 바쁜 자기 일부터 처리하고 싶었지만 선엽은 할아버지의 작은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지긋하신 나이에 딱 봐도 허리가 편찮아보이시는게 돌아가신 자기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 어-.. 저.. 제가요.. "
 
그 순간 선엽의 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출판사잖아, 선엽은 황급히 받았다.
 
" 네! 지선엽입니다. "
 
- 아 선엽씨, 아까 원고 검토한 직원입니다. 급하게 출장갈 일이 생겨서요, 오늘 원고는 못 받겠고
천천히 준비해두셨다가 한꺼번에 주세요. 혹시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더 좋겠는데, 글을 손으로 쓰시나보죠?
 
" 아, 텍스트로도 준비할 수 있어요. "
 
- 네에, 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안 되겠어요, 제가 안 되네요. 저희 출판사는 한 번 작가하고
약속했으면 지킵니다. 염려 마시고 작품에만 몰두해주세요. 제 업계 경력을 걸고 꼭 출판시켜드립니다. 수고하세요.
 
"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
 
휴, 선엽은 안심이 되는 동시에 뿌듯한 마음이 차올랐다.
다시 세상이 아름다워보였고, 거리가 먼 집까지 쌀포대를 들어다달라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부탁도
자기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당연히 해드려야 할 일로 여겨졌다.
 
" 할아버지! 가시죠! 들어드릴게요! "
 
" 참 고마워. "
 
선엽은 어깨에 맨 가방 안에 원고가 든 봉투를 조심스레 집어넣고 단단히 잠궜다.
쌀을 집어들자 무게가 제법 무거웠지만 지금이라면 냉장고도 들어줬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흐뭇하게 쳐다봤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어디 놓으면 되죠? "
 
" 잠시 기다려줘, 문 좀 열고.. 우리 집 부엌까지만 좀 갖다주게. "
 
" 헉헉. 네에. "
 
이렇게나 멀 줄이야, 선엽은 오면서 몇 번을 후회했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책임을 다 하겠다는 생각에 선엽은 최선을 다 했다.
열쇠 소리가 찰칵찰칵거리다 문이 열렸다.
 
" 들어오게! "
 
" 네. 실례하겠습니다.. "
 
선엽의 머리가 닿을만한 높이의 문이었다.
허리를 숙여가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집안이 왜 이래.'
 
선엽은 순간 의아함에 머리가 띵해졌다.
밖에서 볼 땐 평범한 주택이었는데, 들어서자 하나의 큰 방과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까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큰 방이 문제였다.
사람 살고 자고, 거실이었다가 침실이었다가, 한 마디로 모든 역할을 하는 게 원룸이겠지만
이 집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넓은 방의 바닥에 맨홀이 몇 개씩이나 박혀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뭐야, 집에 아무 것도 없고 이게 뭐야.
TV도 없고, 책상도 가구도 아무 것도 없으면서 사람 산다는 집 바닥에 맨홀이 왜 이렇게 많아.
선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 부엌에다 놔주게, 커피 한 잔 마시고 가.. "
 
할아버지는 부엌에서 커피잔을 데우고 있었다.
믹스커피는 지금 막 봉지를 뜯고 있었다. 수면제 같은 걸 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선엽은 커피 정도는 마셔도 되겠지, 생각했다.
일단 너무 더워서 좀 숨이라도 골라야 할 것 같았다.
쌀포대를 부엌 구석에 내려놓았다.
 
" 휴우, 할아버지 혼자였으면 정말 힘드셨겠어요. "
 
" 정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자네에게 더 고마워. 저기 앉아있게.. 커피 다 탔어. 가세. "
 
" 네. 근데, 이 집.. 사시는 집이에요? "
 
" 쌀 갖다놓는 거 보면 모르겠나, 사람 먹고 살지. "
 
" 아무 것도 없는데요? "
 
" 그거야 냉장고 하나 있고 불 들어오면 끝이지.. 텔레비전이니, 소파니, 그런게 왜 필요해.
텔레비전 안 보면 그만이고, 바닥에서 자면 그만이지. 옛날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았어. "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맨홀에 대해서 물어볼까, 하며 커피를 후룩 마시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었다.
 
" 아까 자네, 길에서 뭔가 들고 있던데. 이력서인가? "
 
이력서? 평범한 취준생처럼 보이시나봐, 난 예비 작가라고.
그냥 '네, 그런거에요' 해도 될텐데 우쭐한 마음에 선엽은 설레발을 치며 대답했다.
 
" 아뇨. 제 소설 원고에요. 제가 소설가가 될거거든요. 실은 출판 결정이 나서요. "
 
" 아.. 길에서 전화를 받던데, 그 전화였나보구만. 대단허이. "
 
" 하하.. 대단하지도 않아요. 책을 쓴다고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
 
" 자네 같은 청년 잘 없네. 여기까지 와준 것도 그걸 말해주는거야.. 혹시 원고 읽어봐도 되겠나.
왠지 자네라면 아주 재밌는 글을 썼을 것 같네.. "
 
" 음, 네. 잠시만요. "
 
보여드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출판사 외의 사람에게 이 원고를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독자이니만큼, 평범한 독자의 눈으로 본 작품은 어떨까, 선엽은 할아버지의 평가가 궁금해져서
가방에서 원고를 꺼내 건네었다.
 
" 고맙네.. "
 
그냥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일 뿐인데, 원고를 열심히 읽고 계시니 공모전의 심사위원 앞에라도 선 것처럼
선엽은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아랫배가 슬슬 아팠다.
 
" 저, 화장실은 어디에요? 여긴 안 보이는데. "
 
" 응, 여기서 나가서 저기로 좀 돌아가봐. 화장실이 따로 있어. "
 
" 네. 실례하겠습니다. "
 
일단 화장실이 급하니까 이것부터 해결한 다음에, 할아버지 원고평만 들으면 바로 집에 가야지,
어쨌든 착한 일도 했고 원고도 통과됬으니까 오늘 하루는 최고야,
선엽은 배를 감싸쥐며 화장실을 찾아 집 밖으로 나갔다.
 
 
선엽이 용무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서자, 황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할아버지와 원고는 온데간데 없고, 맨홀 뚜껑 다섯 개가 다 열려있었다.
시꺼먼 구멍이 집안 곳곳에 숭숭 뚫려있는게 몹시 기괴했다.
 
" 할아버지! "
 
선엽은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원고가 어떤 원고인데, 아.. 진작에 그냥 집에 돌아갈걸, 내가 미쳤지,
 
"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원고 돌려주세요! "
 
그러자 가장 먼 쪽에 있는 맨홀에서 할아버지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 원고 재밌더구만. 내가 좀 더 읽고 주고싶어졌어. "
 
" 장난치지말고 빨리 주세요. "
 
" 언제 안 준다고 했는가. 조금만 더 읽게 해줘. 재밌더라고. "
 
" 아 진짜 열받게 하네, 달라고! "
 
너무 화가 나서 말이 짧아졌다, 선엽이 맨홀로 다가갔지만 중간에 큰 맨홀 두 개가 열려있어
그걸 피하며 달려가자 가장 먼 맨홀로 다시 들어간 할아버지가 뚜껑을 이미 닫으며 들어간 채였다.
 
손잡이가 어디지,
 
손잡이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연거야, 흥분에 차오른 선엽이 씩씩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바닥에 널부러진 쇠작대기가 보였다. 이걸로 연거구나,
선엽이 쇠작대기를 사용해 할아버지가 들어간 맨홀 뚜껑을 거칠게 열었다.
헉,헉, 어디로 갔어, 망할..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만한 터널은 깊이가 2m를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밟고 내려갈 수 있도록 작은 손잡이가 달려있었다.
 
선엽은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바닥에 도착하자 물곰팡이 냄새와 함께 뜨거운 습기가 훅 올라왔다.
 
" 헉, 헉, 씨발. 내 원고 돌려줘! "
 
선엽의 목소리가 '돌려줘,' '돌려줘,' '돌려줘,' 하고 울렸다.
음파가 벽에 부딪치고 반사되며, '돌려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사방에서 들렸다.
이 안은.. 미로인 것일까.
 
" 어딨어! 원고 돌려달라고, 당장 나와. "
 
선엽은 일단 막힌 벽의 반대쪽, 유일하게 전진할 수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제발, 원고 돌려주세요... 저 그거 없으면 안 돼요.. 할아버지.. "
 
선엽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공포로 울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없던 스마트폰 배터리는 이미 손전등 앱을 쓰다가 다 닳아버려서 전원이 나간지 오래였다.
그나마 어둠에 적응한 눈이 한치 앞은 분간할 수 있게 해줬지만, 그 지경에 이르고나니 선엽은 깨달았다.
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자기 자신을.
 
" 할아버지.. 할아버지.. 살려주세요.. "
 
결국 선엽은 '원고를 받아야 한다'는 목적이 완전히 바뀌어, '살아야 한다'는 목적만이 남았다.
 
" 원고 가지세요.. 그냥 나가게만 해주세요.. "
 
또옥,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 속에 선엽이 흐느끼는 소리가 터널 속에서 이리저리 반사되어
몇 배는 크게 울려퍼졌다.
 
한 발 앞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습기가 자신을 둘러싸고, 자신의 심장이 뛰는게 느껴졌다.
울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가 터널 안을 울리며 자기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무서워, 살고 싶어, 마음 속으로 하는 소리마저 귀에 환청으로 들렸다.
폐쇄된 공간에 완전히 갇혀가고 있었다.
이미 방향감각이 마비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고,
심지어 터널은 언제부턴가 조금씩 천장이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 선엽은 허리를 구부린 채로 걷고 있었다.
원고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공포에 휩싸여 울면서 점점 좁아드는 터널을 헤매고 있는 가련한 목숨 하나.
 
 
" 으으으흐, 으흐흐. "
 
우는 걸까? 웃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실성해버린걸까?
선엽은 괴상한 소리를 흘리며 바닥을 이리저리 짚으며 앞으로 가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가기 시작한 터널은 줄어들고, 좁아지는 굴곡이 더욱 심했다.
선엽은 이제 허리를 펴긴 커녕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수도 없어 낮은 포복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선엽 자신도 이 터널이 위험하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터널의 입구에서부터, 자신이 쓴 원고가 한 장, 한 장씩 떨어져있었다.
자신의 노력, 눈물, 희망이 모두 담긴 원고였다.
그 감정.
공포에 울면서,
희열에 웃으면서,
폐쇄 속에 분열되어가는 자아 속에서,
선엽은 흐흐흐, 어둠 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57페이지.. 58페이지.. 59페이지..
그럴수록 터널이 자신을 죄어들어왔다.
이미 원고는 터널 내의 뜨거운 증기로 인해 펜얼룩이 번져 알아볼 수 조차 없었지만
선엽은 상관없었다.
눈물과 어둠, 그리고 공포가 번져있는 눈동자엔 현실과 이성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오로지 원고를 찾고 있다는 것과 살고 싶다는 두 목적 때문에 이 동물은 미친 현실 속에 살아있었다.
 
 
299페이지.. 300페이지..
 
" 헤, 헤헤헤, 헤헤헤헤 ! "
 
다 찾았어, 이제 된거야, 이제 된거야, 다 찾았다, 하하하, 하하하!!
 
" 찾.. 찾았다, 으헤헤, 으헤헤 "
 
" 축하하네. "
 
눈물이 멎으며 선엽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마치 야생의 동물처럼 재빠른 반응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희미해지자 깨어난 짐승의 본능.
 
" 약속했잖는가. 원고는 돌려줄거라고. "
 
" ... 나가게 해줘, "
 
" 그건 약속 못 하겠는데. "
 
" 나가게 해줘! "
 
선엽이 울부짖으며 바닥을 박박 기어 앞으로 다가가려하자,
갑작스레 엄청난 불빛이 퍼져서 선엽은 꼼짝도 못 하고 두 눈을 막았다.
눈이 아프고 정신이 아찔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헉헉, 그러자 엄청나게 넓은 지하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에 알게 된 건 쇠창살이 있는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가는 크기의 철제 케이지에
쏙 들어간 채로 덩그러니 종이 뭉치를 들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된거지,
그제야 선엽은 자기가 되돌아온 길을 돌아보았다.
이럴수가.. 터널은 30m 뒤에서 끝나있었다.
갈수록 줄어드는 터널 속에서 시간과 공간 개념없이 오로지 코 앞의 원고만을
줍다보니 터널이 끝난지도 모르고 낮은 포복으로 바닥을 기어 자기 스스로 이 케이지 안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 으아아악!! "
 
어둠이 걷혔지만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이 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그동안의 칠흑 같은 어둠이 더 희망적인 편이었겠지.
 
" 원고, 재밌었네. 중간에 반전 예상 못 했어. 자네 소질 있더라고. 아마 그대로 집에 갔더라면
훌륭한 소설가 하나가 나왔을지 모르겠군. "
 
헉, 헉, 헉,
기대하던 독자의 첫 반응이 호평이었지만 지금 선엽의 귀에 그딴게 들어올 리 없었다.
 
" 제발, 살려주세요. "
 
" 하지만 그런 반전을 머릿속으로 구상한 자네도 이런 반전은 예상 밖이지?
소설보다 재밌지? "
 
" 여기 뭐에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
 
" 어때, 찾고 싶던 보물을 다 찾은 기분은. "
 
" 나 좀 보내달라구요!! 살려달라고요!! "
 
" 자네 참 이기적이구만. "
 
쇠창살을 흔들며 울부짖는 선엽을 뒤로 한 채, 노인은 천천히 벽에 다가가 알 수 없는 기체가 들어가있는 탱크의
마개를 돌려 열었다. 탱크에 연결되어있는 호스의 깔때기 끝에서 기체가 푸슉, 푸슉,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 으아악, 흐아아악, 흐ㅡ읍..읍.. "
 
잠시 뒤 공포에 눈이 희번덕 뒤집어진 선엽의 코와 입을 깔때기가 틀어막았다.
선엽의 돌아간 검은자가 다시는 제자리를 찾지 못 했다.
그러나 아직 숨이 끊긴 건 아닌 모양으로, 정신만 잃어버린 듯 스스로 호흡은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몹시 뿌듯하게 바라보던 노인의 독백이 이어졌다.
 
" 이렇게 건강한 성인 남자 구하기가 제일 어려운데, 보물을 찾은 느낌인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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