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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 대하여
게시물ID : phil_8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놔수나문
추천 : 0
조회수 : 34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2/20 11:01:58
수영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올랐다.
수영을 잘 한다는 것은 몸을 이용한 물의 활용에 능숙하고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수영에 대한 지식체계는 당연하게도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동안 물속에서 몸짓에 의한 물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또 현대에 와서는 유체역학을 이용한 모델링, 시뮬레이팅을 해보는 등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통해 우리가 수영을 배우는데 있어서 너무나도 쉽게 전수 받을 수 있는 지식 체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수영의 수 자는 커녕 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움을 일으킨 나였지만 인류가 쌓아온 지식체계를 전수 받음으로써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느낀 것이지만 인류가 쌓아온 지식체계, 즉 학문이라는 것은 단연 인류 최고의 발명이라 지칭할 수 있다.
학문의 위대성을 세삼 다시 한번 깨닫는 동시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물에서 몸짓에 따른 물결의 춤사위를 발견해 내고 그 춤을 함께 추는 것은 얼마나 행복할까?’ ‘춤을 추는 과정 속에서 물이 가진 놀라운 춤의 리듬을 처음으로 느낀 사람은 얼마나 흥분될까?’
수영을 ‘배움’으로써 물과는 직접적이 아닌 하나의 장벽을 두는 느낌, 거칠게 대상을 마주하며 온 육신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 깊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우리의 현 사회의 모습이 그렇고 또 그 안의 우리 자신들의 모습도 그렇듯이 우리의 삶은 결과를 지향한다. 우리의 가치의 저울은 결과를 향해 기울어져있다. 말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그것은 우리의 몸으로 거칠게 느낀 것이 아니다. 거칠게, 절실하게 느끼지 않은 것은 보기 좋은 달콤한 과실일 뿐 그 어떠한 작은 움직임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게 없는 손짓에 불과하다.
하나의 결과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무수한 시행착오, 즉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죽은 자의 무덤에서 연분홍의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피어오를 수 있듯이, 하나의 결과를 만개시키기 위해선 수많은, 과정의 무덤에 묘비를 세워야한다. 각 과정, 단계의 영혼들이 승화되어 총체적인 구조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시각은 결과에 집중되어 있다. 결과 그 자체에만 우리의 온전한 시각을 바치려 하고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과보다 더 큰 과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같은 기둥의 크기와 같은 결실의 크기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얕고 빈약한 뿌리를 가진 나무보다 깊고 무성한 뿌리를 가진 나무가 앞으로의, 미래의 결실에 있어서 더 훌륭한 성취를 가지고 오는 것과 같이, 보다 혹독하고 깊게 고민하고 보다 많은 어려움의 순간들을 극복한 무성한 과정만이 더 위대한 성취를 가져 올 수 있다.
우리의 시각은 대지의 아래를 향할 줄도 알아야한다. 아니 보다 더 많은 빛의 흐름을 대지의 아래에 흐르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보다 영민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만 볼 수 있는 뿌리를 볼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알아야한다! 결과의 실체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과정의 뿌리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양분이 결과의 과실을 살찌운 다는 것을! 모든 결과의 원천적인 힘의 근원은 과정의 견고함과 치밀함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결과의 시간은 짧다. 하나의 성취를 이룩했으면, 또다시 다른 성취를 위해서 과정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우리들의 생각은 그렇다. 성취와 성공적인 결과란 마치 온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 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는 빛줄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삶에 있어서 수많은 고통과 고난 속에 한줄기의 빛을 바라보며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스스로 고통의 길을 자초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왜 과정을 결과보다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길 줄 모르는 것인가? 우리는 왜 그 수많은 먹구름을 갈라진 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줄 희망의 가능성으로 바꾸지 못하는가?
생명은 한 줄기의 빛보다 수많은 먹구름으로부터 내리는 비를 통해 성장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잠시 내려 쬐는 결과의 빛줄기보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시행착오를 하는 수많은 과정의 먹구름을 통해 성장한다.
우리는 일이나 대상을 결과나 성취를 통해 평가한다. 이것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우리의 존재를 외모로 평가한다. 하지만 사실상 외모라는 것은 그 인간의 인간됨, 존재됨을 보여주는데 있어 작은 부분만을 차지할 뿐이다. 결과나 성취는 모두 표면적인 겉모습일 뿐이다. 대상의 참된 실체는 과정이다. 설령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우리의 시도는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지 말아야한다.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 세상을 전부 규정지을 수 없듯이, 우리의 성장의 척도를 단순히 성취, 결과의 여부로 환원시킬 수 없다. 우리는 시도와 시도에 따른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우리의 성장은 이산적이지 않고 연속적이다.
우리의 결과 지향적인 편협한 생각과 무지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목적의 ‘성질’에서 비롯된다. 우리들은 ‘어떠한 일을 성취하겠다’, ‘내가 계획한 일을 이루겠다’와 같은 성취의 유무, 즉 이분법적으로 ‘특정한 순간’의 상태를 취했는지 취하지 않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다. 또한 성취의 단계 단계에 대한 표식자 역할로서 ‘결과’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의 인식에, 과정은 포착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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