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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 엄마들이 생길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
게시물ID : sisa_4900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긴앙돼형아
추천 : 3
조회수 : 119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27 22:29:29
그날도 나는 학원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어머~ 선생님 아니세요?” 하는 인사가 들렸다. 내가 담당하는 학생의 어머니였다. 그렇게 하소연은 시작됐다. 고2가 참 중요한 시기인데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겨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주변에 독하게 공부하는 친구가 없다 등등. 학부모의 흔한 고민에 더 흔한 대답으로 대처하며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부모가 이런 말을 던졌다. “선생님은 미혼이셔서 엄마 마음을 몰라요.”

엄마 마음. 그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이 동네 학부모들을 싫어했다. 아이의 동선을 고려해 집에 도착해야 할 시간까지 정확히 계산하는 어머니를 볼 때면 숨이 막혔고, 성장하면서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들을 대학 이후로 보류하라고 요구하는 부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눈에는 온종일 공부에 치이는 학생들만 안쓰러워 보였던 것이다.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엄마 마음’이라는 말을 하니, 내겐 그 마음조차 의심스러웠다.

그 때문에 학부모와 상담을 늘렸다. 한 달에 100여 건, 1년간 1000여 건. 그 끝에 나는 ‘아이의 휴대전화를 감시하지도 않고 교우관계를 관리하지도 않는 좋은 부모’이지만 ‘시험 성적이 나온 뒤에는 가끔 섭섭함을 삭일 수가 없어’ 아이하고 다툼을 한다는 평범한 부모들의 심경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학부모들은 학생을 관리하는 주된 이유로 아이의 요구를 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서 성적으로 서열화된다. 한 학기를 마치고 나면 학원에 데려오는 친구들도 학교 성적이 서로 비슷한 아이들로 바뀐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신’이라고 부르고, 못하는 친구를 은근히 무시하며, 그 틈새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이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공부하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을 기꺼이 서열 전쟁에 동참시킨다.

적자생존 사회가 만든 ‘매니저 부모’

차별을 내면화한 아이들은 부모에게 당당히 요구한다. “내가 공부만 할 수 있게 엄마가 모든 상황을 통제해줘.” 그래서 많은 학부모가 스케줄을 짠다. 그들은 아이 대신 학원 설명회를 뛰어다니고, 동선을 짜주고, 식사 시간을 지정해준다. 아이를 태우러 가고 태워온다.

이와 다른 경우는, 아이의 동의 없이 이뤄진 부모의 관리였다. “제가 좋은 대학을 못 나와서 무시를 당하곤 했는데, 우리 딸만은 그런 설움을 겪지 않게 할 거예요.” 자신이 평생 싸워온 사회가 적자생존 사회였던 이 아버지는 일단 아이를 학원에 밀어넣었다. 이런 학생들은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 엄마가 대 나왔는데, 저 보고는 엄마처럼 살지 말래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차별을 당했든, 차별을 가했든 이미 서열이 내재화된 학부모들은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학벌 사회가 세상에 피어보지도 못한 내 자식을 꺾어버릴까 봐.

이는 “어릴 때는 넘어지면 옆에서 일으켜 세워주면 그만이었지만 세상에 나갔을 때는 엄마가 옆에서 세워줄 수 없잖아요”라는 또 다른 학부모의 말을 들으면 더욱 분명해진다. 사회를 바꿔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 기왕이면 잘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해주려 한다. 이런 생각이 부모로 하여금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학원으로 내몰게 하고, 인큐베이터라 손가락질받더라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투입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학부모가 되는 순간, 엄마는 아이의 매니저라는 직업을 얻고 대신 그간 쌓아온 사회적 경험을 잃는다. 아이 교육은 엄마 몫이라는 가족의 분위기도 이러한 손실을 가속화했다. “딸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옆에 있어달라고 해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매일 딸이랑 같은 침대에서 자요. 애가 아침 7시에 공부한다고 깨워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혹시 못 깨울까 봐, 아이가 나 때문에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면서 잠을 자요. 그런데 우리 딸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는 거죠. 나보다 절박하지 않은 딸을 보면 허탈하긴 한데, 저는 이 아이한테 다 걸었으니까 이 전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미혼인 나는 이 상황에서 어머니들이 어떤 감정에 빠지는지 지금도 충분히 모른다. 하지만 수백 번의 상담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단순히 ‘극성’이라는 수식어만으로 이들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http://m.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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