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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방구조대원의 구조현장 회고록
게시물ID : lovestory_641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LEVE
추천 : 6
조회수 : 11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28 20:44:14
오영환님의 사진.
오영환님의 사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붐비는 등산객들로 인해 뛰어올라가기도 녹록치 않다. 일요일 오전의 평화는 짧기만 할뿐, 11시 52분 출동 벨소리로 산악구조대의 고요는 깨졌다. 등산중 갑자기 쓰러졌다고, 요란한 싸이렌 속에 신고자와 통화한 바 현재 요구조자의 호흡이 없다. 동시 출동한 항공대 헬...기는 아직이다. 시동이 걸리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만 7분. 이미 늦다.

도봉로 버스전용 차선을 달려, 등산객들을 헤치며 가장 가까운 등산로 초입에 산악구조차량이 도착하는 데에만 5분 경과. 정차함과 동시에 뛰어내려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들것 배낭은 남겨둔 채 기초심폐소생술 장비인 AED와 BVM만 꺼내어든다. 그 시간마저 아깝다. 욕설이 흘러나온다.

- 일단 뛰어.

대기중에 미세먼지가 가득하다는 오늘임에도 오랜만에 따뜻한 주말의 날씨에 많은 이들이 들떴는지 도봉산이 온통 미어질 지경이었다. 등산객들을 피하고 헤치며 얼마나 올랐을까. 평소와는 다른 위화감이 든다. 누런 안개와도 같은 미세먼지에 늘 가까워보이던 선인봉이 저 멀리 뿌옇다. 이런 기상상황에, 산으로 밀려든 등산객들이 답답하다.

-뉴스도 안보는거냐 씨팔.. 야외활동 자제하라니까.

점점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침으로 먹은 컵라면에 김밥은 참을걸, 문득 무거운 몸을 탓해본다. 힘겨운 달음질이 조금씩 느려질 무렵 저 멀리 사고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스럽게도 산 중턱에 상주하는 경찰산악구조대가 먼저 도착해있다. 의경대원에게 CPR을 인계받는다. 비뚫어진 AED패치 부착위치가 아주 조금 거슬리지만, 가슴을 압박하며 고민하는 사이 분석이 시작된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미건조한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 제세동이 필요합니다. 모두 물러나주세요.
- 떨어지세요! 떨어져!

붉은색으로 깜빡이는 제세동 버튼을 누른다. Shock. 200J의 전류가 관통한 요구조자의 몸이 일순간 요동친다. 가슴압박을 다시 시작한다. 속도가 좀 빠른것같은데,라고 뒷편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처구니가 없다. 응급구조사에게 그딴 참견하고 있을 정신 있으면 주변통제에나 신경좀 쓸것이지. 요구조자의 발을 툭 칠정도로 가깝게 지나가며 기웃거리는 등산객들이 거슬린다.

- 뭐하자는 거야.. 주위통제 좀 해주세요!

함께 출동한 이민규 대원과 압박을 교대하고, 5싸이클의 압박과 인공호흡을 반복.
다시 분석 실시.

- 제세동이 필요치않습니다. 가슴압박을 시작해주세요.
- 한번만 가자.. 제발. 한번만.

이미 늦은건가.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손아래끝에 체중을 실어 쉼없이 압박을 계속한다. 응급구조사 자격으로서는 할 수있는 최선이 그 뿐이다.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채 등산로에 쓰러져 있는 남성은 60대로 보인다. 누군가의 아버지일테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소중한 사람일텐데. 우리에겐 다만 심장의 정상적인 기능이 정지된 한 명의 요구조자로서, 최선의 응급처치를 제공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마저도 소생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음을 흘러가는 시간은 차갑게 증명한다. 땀이 눈으로 흘러내린다. 안타까움이 가슴을 죄어온다.

그 때, 일대를 침묵시키는 회전익의 굉음이 가까워지며 항공대 헬기가 상공에 도착했다. 접근 경고 싸이렌이 3회 울리고, 일대에 엉켜있던 낙엽과 흙모래-겨우내 말라있던 나뭇가지들이 부서져 비산하여 눈코입, 모든 뚫린 곳으로 밀려든다. 헬멧과 방풍고글을 착용할 틈이 없었던 나는 실눈을 뜨고 압박을 반복한다.

후배 대원이 요구조자와 내 머리위로 혹시 날릴지 모르는 돌, 나뭇가지 따위를 온몸으로 막아준다.

항공구조구급대원이 호이스트 와이어에 의지한채 하강한다. 빨리 수동제세동기를 들고와야할텐데.

그때, 다시 분석을 시작한다. 반가운 붉은빛이 깜빡인다. shock. 충격과 동시에 압박을 시작하는데 하강한 구급대원이 서둘러 다가온다.

신속히 제세동패치를 교체하고 심전도 리듬 분석 결과. 절망적인 일직선의 무수축. 젠장.. 혹시나 했는데. 헬기 하향풍에 몸이 흔들려 세동으로 감지했나?

헬기에서 내린 들것에 요구조자를 옮겨 인양이 용이한 장소로 이동한다.
..살기 힘들겠지. 아마 살리기는 힘들거야. ..살려내고 싶었는데. 밀려드는 절망을 애써 외면하며 들것을 호이스트로 들어올리기 직전까지 압박을 계속한다. 신고자인 동행의 말에 의하면, 요구조자는 심장 근육이 두껍다는 병으로 수술도 두차례 받았다고 한다. 녹초가 된 몸에 남은 힘마저 빠져나간다. 심근비대증. 정상인으로서도 소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더 나쁠 수 없는 지독한 병력이 겹쳤다.

안전불감증이다. 등산이 건강에 좋다고?..개소리. 급성심장질환을 가진 이가 산을 오르는 건 자신의 생명에 대한 방종이다. 구조대원과 손잡고 오르더라도 심장에 이상이 오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울 지경인데.

- 아무리 산이 좋아도.. 살아서 내려가야 좋은거지.

잘 알고 있다. 결코 죽으러 온 것은 아니다. 건강에 좋을 거라는 생각에, 천천히 가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운동삼아 온 것 또한 너무나 잘 안다. 다만 그 안일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산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답답한 도심을 뒤로 한채 자연속에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산은 결코 사람에게 관대하지만은 않다.

잘못딛은 한발짝으로, 지상에서는 경미한 부상으로 끝날 작은 사고가 고지대에서는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결코, 산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급성질환이 있는 이가 산을 오른다고 하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싶다. 건강과 체력을 자신하는 사람도 가볍게는 사지를 부러뜨리고, 심각하면 평생 남을 상처를 뼛속깊이 새긴 채 실려내려간다. 산을 오르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자신의 심신에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사고에 대비해서 구조대가 존재한다. 도봉산은 우리 소방조직의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가 암벽사고를 주로 전담하는 경찰산악구조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구조대와 긴밀한 협조를 구축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 기능은 사고후의 대응일 뿐, 철저한 예방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산에 있다. 산을 사랑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반갑다.
늘 마주치는 등산객들에게 우리는 사계절 항상 같은 인삿말을 전한다. 조심히 내려가세요. 마음속으로 덧붙인다. 부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부족한 글줄에 옮기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안하세요.
 
 
출처 : 서울특수구조단 도봉산악구조대 오xx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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