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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열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history_146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래머웨이터
추천 : 11
조회수 : 1281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4/03/12 15:35:52
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열번째 이야기 - 배정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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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경남 김해애서 친일 개호로 썅년이 태어남
본명은 배똥남(배분남)

1876년 7살 명성황후가 집권할 때 아버지 배지홍이 사형당함. 이로인해 어머니와 구걸을 하며 연명하는 삶을 살게됨
  아버지 배지홍의 친구 김세희는 두 모녀를 관기에 입적 시킴
1883년 14살 전재식의 도움으로 기방에서 탈출
1883년 14살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승려가 됨
1884년 15살 밀양부사 정병하의 도움으로 쪽바리 간첩 마쓰오의 도움을 받아 섬나라로 감 
1886년 17살 섬나라 오사카 소학교에 편입. 이때 안경수의 도움을 받아 김옥균을 소개 받음
          김옥균은 배정자를 이토히로부미에게 소개(했다고 하나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많음)
          추측컨데, 섬나라에서 빼어난 미모로 원숭이들의 정계인사들과 놀아나다, 이토에게 초이스 받은거 같음

1887년 18살 전재식과 결혼, 아들 전유화를 둠
1887년 18살 이토 히로부미 밑에서 스파이 교육을 받음. 주로 변장술, 탈출법, 물건 훔치는 법, 떡치는 법 등을 배움
1892년 23살 조선에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조선으로 넘어 와서 첫 스파이 활동을 함
          하지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 체포, 체포 후 탈출하여 원숭이국으로 도주
1893년 24살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조선으로 넘어와 두번째 스파이 활동을 함
  이때 배정자는 엄상궁을 통해 고종에게 접근
  고종으로 부터 정보를 빼네 원숭이국으로 건네주는 등 쪽바리의 이중 스파이 활동을 함
  고종을 꼬셔서 일본 군함을 구매하게 하는 등 여러 건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킴
  12년 동안 스파이로서 최대의 성과를 올림

1905년 36살 이토의 밀서를 고종에게 전달하다 딱 걸림
  밀서의 내용은 : 나라가 이 꼬라지인 것은다 고종 니 잘못이다. 
                        앞으로 친러파 다 몰아내고 친일파를 많이 등용해라. 
                        그리고 우리 원숭이들의 왕에게 와서 인사드려라. 그럼 잘 봐줄테다. 우끼끼

  후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토는 조선으로 와 영도에 유배가 있는 자신의 딸이자 연인인 배정자를 풀어달라 요구함

1909년 40살. 오빠처럼 모시고 아빠처럼 받들던 이토가 안중근의사의 총알에 뒈짐. 
                  배정자는 일년동안 밤낮을 울며 통곡하며, 안중근의사를 씹어댔다고 함.
1910년 41살. 국권피탈. 나라를 빼앗겼을 때. 배정자는 울면서 만세를 불렀다고 함. 이 기쁨을 이토 오빠에게....(씨발련.쯧)
  이후 끈이 떨어진 배정자는 생계를 위해 만주일대를 떠돌며  독립군에 대한 정보를 팔고, 생계를 유지함
1918년 49살 중국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관 스파이로 또다시 활동
          주로 북만주에서 거주하던 조선인과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동정에 관한 정보를 팔아 먹음(썅년) 

1919년에 50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행한 〈조선독립선언서〉와 <독립신보> 등 각종 비밀인쇄물을 입수해 일본총영사관에 전달

    1920년 <독립신문> 에 따르면 
    ‘배정자는 작년 다수의 동포를 적에게 잡아주었다. 요년때문에 동포가 받는 곤란이 매우 막심하다. 
     언제까지 요년을 가만 두어야 하나' 하는 기사가 실림

1924년 55살까지 만주에서 고급 스파이로 활약하다 귀국

1927년 58살 간첩질 은퇴

1937년 68살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또다시 스파이 활동을 재개 (참 이 나이 처먹도록....)

1939년 69살 조선총독부 경무국 직원으로 활동

1941년 72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선 여성을 꼬셔 쪽바리군 위문대를 조직한 후 전장에서 위문활동을 벌임(끝까지 썅년이었음)


1945년 해방 후, 
1949년 80살 서울 돈암동 집에서 반민특위 특경대에 체포. 하지만 고령을 이유로 석방

  반민특위 와해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함
    
    난 조국이 해방되는 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이토의 스파이라고 사람들은 날 비난하지만. 
    난 지금 아무 기억이 없다. 
    누가 진심으로 일본을 위하고, 조국을 배반했겠는가?
    난 그때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잘나가던 일본이 그토록 쉽게 패망할 줄 누가 알았겠어?)


1952년 83살 천수를 누리고 2월 27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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