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이빨뽑은 이야기.

언제부턴가 찬물을 마실때나 딱딱한 음식을 먹을때면 어금니가 찌릿찌릿하고 시리기 시작했다.

입대 전 치료를 받다가 괜찮아져 그대로 방치한 채 입대했는데 치통이 다시 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밖에 있을 때부터 탄산중독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음료수를 사랑하던 나에겐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려서 부터 충치와 치통을 달고 살았기에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처음엔 뭘 먹을때만 순간순간 시리기만 했던 것이 어느새 가만히만 있어도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치료를 받아보기를 권했지만 치과와 화생방 둘중 하나를 택하라면 화생방을 택할정도로

치과가기를 두려워 하던 나에겐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특히나 군 병원 치과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군 병원 치과에선 마취도 안하고 신경치료를 한다더라. 생니를 뺀치로 그냥 뽑아버린다더라. 라는

도시전설을 익히 들은 바 있어 내 이빨이 썩어 문드러진다 해도 절대 군대 안에서 치료를 받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날이 고통은 심해졌고 주변에서는 더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받으라고 다시 한번 권했지만

나는 기도로 병을 이겨내겠다. 오늘 밤에 자고 있을 때 이빨요정이 나타나 새 이빨로 바꿔주고 갈것이다.

라며 끝까지 치료를 거부했다. 물론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졌고 결국 내 의지는 꺾이고 말았다.

다음 번 외래진료가 있던 날 나는 군 생활 처음으로 군병원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진료 신청을 하고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특히 안쪽에서 먼저 치료를 받고 있는 병사의 으어어어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니 손 발에 힘이 없어져

제대로 걷기가 힘들어지고 호흡이 가파지고 혀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긴장한 가운데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숨을 고르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가운을 입고 앉아 있는 군의관의 모습이 내 눈에는 저승사자의 형상을 보는 것 같았다. 아픈 부위를 설명하고

엑스레이를 찍은 후 내 입안을 한참을 들여다 본 군의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군의관의 말은 충치가 너무 심해 신경치료는 불가능하고 뽑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귓가에 마취도 안하고 마취도 안하고.. 생니를.. 생니를... 이라는 고참들의 말이 메아리 쳤다.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다. 잽싸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뺸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울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마취는 하는거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군의관은 웃으며 당연히

마취는 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뽑는 건 간단하니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군의관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군의관은 그렇게 아프지 않으니 걱정 말라며 초등학생을 어르고 달래듯 날 달래기

시작했다. 사탕이라도 있다면 쥐어줄 기세였다. 조금씩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나는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조금 따끔할거라는 말과 함께 마취가 시작됐고 이윽고 입 주변에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 이제 뽑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이빨이 당겨지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콱 빠각! 어?

군의관의 어? 라는 당황한 듯한 한마디에 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얼굴을 가린 천때문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의과늬 와그러으시니꺼? (군의관님 왜 그러십니까?) 라고 이미 한껏 열려있는 입을 놀려

묻자 이빨이 안빠지고 깨져버렸다는 군의관의 대답이 들려왔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왠지 그는 나보다 더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제 나머지 이빨을 깨서 뽑아야 한다며 조금 아플수도 있다고

말을 했다. 미친 그런건 뽑기 전에 미리 얘기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입안이 기구들로 가득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한순간 한순간이 공포의 시간이었다. 눈이 가려져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려오니 공포는 더욱 더 커져갔다.

처음엔 나머지 이빨을 붙잡고 한참을 낑낑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입에서 땅 땅 하는 돌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한 리듬으로 땅 땅 하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정 같은 걸로 내 이빨을 깨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 이빨에서 광맥이라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오지로 변해 버린 내 입과 군의관의 사투는 한참동안

계속됐다. 너무 입을 벌리고 있어서인지 침이 흐르기 시작했고 난 되삼키려 했지만 입술이 말을 듣지 않았다.

침은 입을 따라 흘러 전투복에까지 번지기 시작했고 입안은 마취가 풀려가는지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침이 흐르는 걸 보고 침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졸지에 부양받는 꼴이 되어버린 나는 고통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30분에 걸친 작업이 끝나고 나는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부대 내엔 군 병원 에서는 이빨을 망치와 정으로 깨부순다 라는 도시전설이 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