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수필] 한 여자가 울고 있다.
게시물ID : readers_123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른눈의법사
추천 : 3
조회수 : 35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3/16 21:56:09
2014년 3월 15일. 오후 9시 45분 천안행 급행열차.


오늘 하루도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길이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촌놈이 지하철타려니 힘들다.

지하철에서 언제나 책을 보지만, 그냥 오늘은 사람 사는 내음을 맡고 싶어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아이들과 아빠와의 단란한 이야기
여자들의 수다
연인들의 달콤한 대화

여러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잡으러 간다.
장애인 전용 구역, 장애인이 없을때 서서가면서 등을 기대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 서볼까...

옆 문쪽에 한 여자가 서있다.
얼핏보면 그냥 가는 여자 같은데,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
보통은 나처럼 산적같은 남자가 다가서면 
여자들은 경계하며 한번은 쳐다보기 마련이니까.

헌데 뒤돌아 보지도 않는다.
아닌 척 하면서도 흘낏 쳐다 봤다.
긴 머리에 모자 달린 웃옷,
검은 스키니진에 메신저백
무난하다.

위로 올라가 얼굴을 보니...
뺨을 타고 무언가 흘러내리는게 보인다.
울고있구나...

왜 울고 있을까?
남자친구와 싸웠을까?
공부를 하다가 자신의 한계를 느낀걸까?
직장에서 모욕을 당했을까?
꿈을 이루지 못한걸까?

다 내가 한번씩 울어본 이유와 비슷한것들만 떠오른다.
분명 그녀만의 사정이 있겠지...

나도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지하철에서 엉엉 울면서 집으로 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 꿈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그냥 그녀가 안쓰럽다.
마침 손수건을 가져왔었네...

툭툭
말없이 내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녀는 거절한다.

겸연쩍어 핸드폰에 롤 챔스 중계를 틀고 본다.
이미 그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차서 들어오질 않는다.

그녀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다시 울기 시작한다.

이성문제인가...

다시 손수건을 내민다. 말없이.

받았다.

왠지 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한쪽으로 떨어져서 롤챔스 중계나 보면서 내려간다.

배터리를 채워오길 잘했군...
어? 벌써 평택이로군...
어디쯤 내리려나?
한번 말이나 걸어볼까?
아...음...에이 지하철 안에서는 아닌것 같다.
두정역이나 천안역에서 내리면 내려서 말 걸어 봐야지.
아 뭐지 이느낌...예전에 그 느낌인가...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다시 롤챔스 중계에 집중한다.

우와 역시 마타는 잘하는구나.
나도 레오나를 연습해야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 이건 너무 느끼하잖아.
"실례지만 번호 좀 알..."
이건 무슨 너무 상투적이고...

도대체 머릿속이 복잡하다.
벌써 4년이나 된 그때의 감정들이라,
너무 생소하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다.
갑자기 찾아온 이 느낌에.


20분정도.. 갑자기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쪽으로 다가온다.

두근...두근...
뭐라고 말해야 하지?
모르는척 핸드폰만 보고 있다.

톡톡
"....?"
이어폰을 빼고 그녀를 바라본다.
"세탁 못해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아무말 못하고 그녀가 그냥 가는걸 바라본다.
휴... 나도 답이 없는 바보로구나..
이때 뭐라고 말을 했어야 하는데...

벌써 두정역이다. 내릴때가 되었군.
어...그녀도 내린다.

다행이다.
한번이라도 더 기회가 있는 것 같다.

슬며시 뒤를 밟는다.
아 뭐라고 해야하지.

머리가 터질것 같다.

화장실로 들어간다.

난 출구로 나가 옆쪽에 자전거 거치대로 간다.
금연구역이지만. 도저히 담배를 피지 않고 버틸수가 없다.

한대 물고 그녀를 기다려 본다.

이미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두번째 담배..
다 태우고 나서도 서성거리기를 몇분째.
드디어 그녀가 나온다.

"혹시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안하실래요?"
아....난 바보다...
"제가 택시타고 바로 가봐야 해서요..."
"아..네.."

부끄러운 마음에 그냥 돌아서 도망치듯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난...바보였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설레임을 나 혼자 고민하다 허공으로 날려 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내 기억속에,

한여자가 울고 있는 모습이 각인 되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