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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영리화에 대해 꼭 읽어봐야하는 기사
게시물ID : sisa_4943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긴앙돼형아
추천 : 3
조회수 : 32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3/23 17:52:11
넉 달 가까이 의사들의 집단 휴진 사태를 취재하면서 여러 의사를 만났습니다. 대화 말미, 의사들에게 항상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장 불만인 거 한 가지만 꼽아 달라고요. 답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의사는 원격 진료 추진이 가장 문제라고 했고, 다른 의사는 의료 기관의 영리 자회사 허용을 지적했습니다. 이번 집단 휴진 사태는, 정부가 추진했던 이 두가지 사안을 의사들이 반대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다른 의사는 이 두 사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표면적인 것일 뿐, 사태의 핵심은 원가 보다 낮은 의료 수가 문제가 곪아 터진 거라고 말합니다. 전공의들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열악한 처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000년 집단 휴진 당시에는 '의약 분업'이란 공공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의사들의 불만을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불만도 여러 갈래입니다. 달리 말하면,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번엔 질문을 달리해봤습니다. 그렇다면, 환자 입장만 따져봤을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느냐고요. 이 경우엔 비교적 답이 하나로 모입니다. 의료 기관이 영리 자회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른바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입니다. 언론에서 이를 흔히 '의료 영리화'로 표현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 병원 가운데 90% 이상은 영리 병원이기 때문에 적확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병원의 영리화 경향을 가중시킬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저 역시 일단 이렇게 쓰겠습니다.)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은 병원이 영리 자법인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고, 그 자법인이 여러 부대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부대사업에는 화장품 사업, 여행업, 목욕탕 사업 등이 포함됩니다. 지금은 장례식장 등을 제외하고 병원의 영리활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병원이 경영난을 겪고 있으니 규제를 완화시켜주고, 적자를 상쇄해 줄 물꼬를 터주겠다는 취지입니다. 겉보기엔 환자랑 무슨 상관인가 싶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적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

적자에 시달리는 A병원. 지난해 적자액은 100억 원에 달했다. 때 마침 정부가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방안이 확정된다. A병원은 새로운 사업 구상에 들어간다. 화장품도 팔고, 목욕탕도 운영하고, 여행사를 통해 외국인 환자도 유치한다. 사업은 순조롭다.

일 년 뒤. 드디어 100억 원의 흑자를 봤다. A병원은 축제 분위기다. 한껏 신이 난 병원장. 날 잡고 전 직원 앞에서 멋들어진 훈화 말씀을 한다.

"사랑하는 A병원 가족 여러분. 드디어 우리 병원이 흑자를 봤습니다. 이제 여러분, 돈 걱정 마시고 양심대로 소신진료하세요. 환자 분들한테 비급여 진료 강요하지 마시고요. 돈 안 되는 환자, 마음껏 치료해주세요. 환자한테 적자 보면, 부대사업으로 흑자 보면 됩니다. 다 같이 외칩시다! 병원은 환자를 위해! 의사는 소신진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두 번째 시나리오>

B병원도 지난해 100억 원 적자다.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 덕에 화장품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요즘 같은 불경기, 사업 나선다고 흑자가 나는 건 아닌 법. 병원장님이 피부과 과장을 부른다.

"이봐, 아토피 환자는 화장품 중요하잖아? 이게 우리 자법인에서 파는 화장품이야."

슬쩍 샘플을 건네고, 눈치 빠른 피부과 과장님, 바로 전공의를 집합시킨다.

"앞으로 아토피 환자 오면, 이 화장품 권해. 피부에 좋다고. 1인당 한 달에 100개씩이다."

눈치 없는 한 전공의.

"이게 아토피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나요?"

피부과 과장님, 순간 얼굴이 일그러진다.

"너 잠깐 남고 다 나가봐."

일 년 뒤. 환자에게 강매하다시피 한 화장품 덕에 병원은 100억 원 흑자를 봤다. 입이 귀에 걸린 병원 원장님. 하지만 직원들 앞에선 애써 침착한 표정이다. 훌륭한 경영자는 언제나 회사가 위기라고 말해야 한다고 미국의 유명 CEO가 말한 것 같다. 이제 직원 앞에서 훈화말씀을 시작한다.

"병원 흑자 많이 봤다고 소문이 났는데,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내년은 또 다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내년부터는 우리 병원에서 건강식품 판매를 시작합니다. 의사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건강식품 많이 판 실적 좋은 의사 분들께는 인센티브도 부여하겠습니다. 다 같이 외칩시다! 건강식품으로 흑자 200억 달성!"

(과장단을 중심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두 시나리오 모두 출발점은 같습니다. 병원이 부대사업에 적극 나섰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두가지 '경우의 수'입니다. 보셨다시피 정반대입니다.

첫 번째는 정부의 시나리오입니다. 경영난에 직면한 병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원을 보장해주면,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를 강요하거나 돈 안 되는 환자 거부하는 일이 없어질 거란 '장밋빛 미래'입니다. 두 번째는 이를 반대해 왔던 의사들과 전공의,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시나리오입니다. 병원이 영리, 부대사업을 하기 시작하면 의사들에게 이른바 영업 할당이 떨어질 게 뻔하고, 환자 등골을 더 빼먹을 수밖에 없을 거란 '핏빛 미래'입니다.

정부 생각대로라면 환자들은 혜택을 받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시나리오대로라면 환자의 부담은 훨씬 커집니다. 환자 입장에서 의사가 이 화장품 아토피에 좋다고 권하는 데 안사고 배기겠냐는 거죠.

이제 시청자 분들의 판단입니다. 이 두 시나리오 가운데 뭐가 맞는다고 보시나요. 투표를 한다면, 결과는 싱겁게 끝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첫 번째는 희망사항일 뿐이고, 두 번째 시나리오가 훨씬 현실적입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대한민국 병원의 90% 이상은 영리 병원입니다. 치료비를 건강보험공단에서 묶어뒀을 뿐, 어쨌든 지금도 병원의 목표는 이윤 창출입니다. 어쨌든 병원도 자본논리를 따라가는 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8조 3천억 원이었습니다. 엄청난 액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전 분기에 비해 18% 급감했다."는 데 맞춰졌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돈 잘 버는 기업인 삼성전자마저도 '이정도면 됐다.'란 말, 절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는 직원들에게 항상 위기라고 말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이라고 다를까요. 투자 활성화로 설령 흑자가 나더라도, 여기에 안주하고 소신 진료에 집중하겠다는 병원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건 CEO 개인의 탐욕 문제가 아니라, 시장 경제가 돌아가는 방식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자본주의는 그렇습니다.

이제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는 100만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사연 전해드렸습니다. 하루 1000원에서 2000원이면 병원을 갈 수 있지만, 공공연히 진료를 거부당하는 게 현실입니다. 큰 병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소신 진료를 할 수 없다며 양심을 고백한 한 전공의는 그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했습니다. 자리가 없다고 둘러대 쫓아낸 뒤 '입원이 필요했지만 환자가 의학적 권유에 반해 퇴원했다.'며 서류를 조작하고, 실수로라도 입원을 시키면 병원의 불호령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료급여 환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눈 뜨고 코 베입니다. 법에도, 정보에도 어두우신 분들이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하다 만난 한 의료급여 환자는 보증금까지 요구 받았습니다.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지만, 잘 몰라서, 설령 병원이 잘못했어도 누가 내 편 들어줄까 생각해 그냥 나왔다고 합니다. 호흡기 질환으로 피를 토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병원은 빨리 보호자 2명을 데려오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인 공공병원은 최근 8년 사이 급감하다가 지금은 10% 미만까지 떨어졌습니다. 유럽의 선진국은 공공병원 비율이 90%가 넘고, 의료 민영화의 대명사라 불리는 미국도 25%가 넘습니다.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가 OECD 꼴찌입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치료비를 대주는 지자체들은 예산이 부족하다며 병원에 내야 할 의료급여비 지급을 미룹니다. 당연히 병원은 급여비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데 마냥 받아주길 꺼립니다. 원가보다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비급여로 돈을 버는 구조 속에서, 비급여 진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의료급여 환자는 탐탁지 않습니다. 환자를 보면 볼수록 손해입니다. 가난하면 더 아프다는데, 의료급여 환자들 갈 곳이 없습니다. 복지예산 100조 원 시대란 푯말이 무색합니다. 그 돈, 다 어디에 가있는 걸까요.

의료 영리화가 진행되면, 그래서 병원이 다양한 부대사업으로 지금보다 이윤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과연 병원들은 어려운 분들 다 받아줄만한 여유가 생기게 될까요? 병원들이 스스로 이 정도면 됐다, 이제 소신진료 하자, 그러면서 손해를 감수하고 이 분들 다 치료해 주자, 그럴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사회 시간에 배운 바로는, 욕심을 재생산해내는 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복지가 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복지의 꽃'은 사람 생명 문제가 달린 의료라고 배웠습니다. 따라서 의료 문제엔 자본 논리가 가장 적게 적용돼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 상식은 이렇습니다. 이런 상식선에서, 의료 영리화를 통해 환자들이 덜 손해보고 병원에 다닐 수 있게 된다는 말, 맞는 걸까요. 믿어도 되는 걸까요. 글쎄요. 정책의 전제부터 무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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