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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왕 강속구
게시물ID : military_41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45
조회수 : 7768회
댓글수 : 38개
등록시간 : 2014/04/10 03:58:47
 
 환경미화 기간이었다. 대대적으로 부대정비 및 청소가 시작되었고 나는 보급관님으로부터 후임들을 몇 명
데리고 비품창고 정리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후임들을 데리고 자신있게 길을 나섰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비품창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우리부대에 비품창고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조차 없었다. 다시 보급관님을 찾아가 비품창고가 어디 있는거냐고 물으니 보급관님은
한참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 코를 쥐어뜯으며 비품창고의 위치를 알려 주셨다.
 
구령대 밑에 항상 자물쇠가 걸려 있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비품창고였다.
문을 열자마자 오래된 먼지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보니 곳곳에 쌓인 먼지들이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창고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한참을 낑낑대며 정리하던 중 창고 구석에서 바구니더미를 발견했다. 바구니 안에는
야구공과 글러브 그리고 몇 가지 야구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창고 정리를 마치고 나서 보급관님께 보고를 하고 그 야구용품에 대해 물어보았다. 보급관님도 그동안
잊고 지냈는지 그게 거기 있냐며 나에게 되물었다. 몇 년 전에 우연찮게 구해서 병사들 가지고 놀라고 부
대 안에 가져다 놨는데 하는 사람이 없어 그냥 창고에 쳐박아 뒀다는 것이었다. 그럼 사용해도 되냐고
물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새로운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괜시리 설레였다.
 
쉬는 날 후임들 몇명을 데리고 공과 글러브를 꺼내 캐치볼을 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호기심에 연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족구와 축구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구기종목의 등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연병장에 나가 캐치볼이나 배팅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글러브가 모자라다는 점이었다. 결국
짬순에 밀려 글러브를 사용할 수 없게 된 후임들은 울상을 지었고 그들을 가엾이 여긴 나는 후임들에게
국방일보로 글러브를 만들어주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후임들의 얼굴을 보면서 김영만아저씨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임들의 사용후기를 들어보니 종이라는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가죽으로 만들어진 기존 글러브보다 혁신적으로 가벼워진 무게와 의외로 착용감이 괜찮다는 호평이
자자했다. 다만 아주 작은 문제점이 있다면 손바닥에 전해지는 고통이 맨손으로 받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과 공을 두번정도 받으면 찢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량생산을 중지하기로 했다.
 
이제는 사람들도 제법 모였고 의미없는 캐치볼에 서서히 질려가던 우리는 진짜 시합을 하기로 했다.
화기소대와 PX빵 내기를 하기로 하고 경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 공과 글러브들이 창고 구석에 쳐박히게
된 원인을 알아냈다. 나는 야구의 광적인 팬은 아니었다. TV에서 볼 게 없을 때 야구중계를 하면
보는 정도였고 캐치볼은 초등학교 이후론 해본적도 없으며 학교 앞에 있는 배팅센터에서 가끔 공을
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나만큼의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시합이
될리 만무했다.
 
게임이 시작되고 순식간에 만루가 되었다. 화기소대 김병장의 공은 정확하게 허벅지, 엉덩이, 등짝에 명중
했다. 물론 의도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던지는 공도 민족의 얼이 담긴 아리랑 볼이었고 실제 시합용
공이 아닌 물렁물렁한 연식공이어서 그렇게 아프진 않았겠지만 세번째 타자의 등짝에 공이 맞는 순간 
어디서 본 건 있는지 다들 연병장으로 달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대 클리어링이 끝나고 무사만루의
대 찬스를 맞게 되었다. 고참은 빈볼이 두려웠는지 어느새 내무실에서 방탄헬멧을 가지고 나왔다.
가만히만 서있어도 볼넷으로 나갈 수 있었겠지만 그건 싫었는지 열심히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는 허망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그렇게 물러선 고참의 얼굴은 쓸쓸했다.
그 후로는 계속 같은 식이었다. 일단 맞추기만 하면 당연히 수비가 될리 없었고 그렇게 15점 정도를 내고 
나서야 길고 긴 1회초가 끝났다. 하지만 우리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경기는 막장으로 치닫았다. 경기가 계속되고 우리는 점수세기를 포기했다. 아마 한 70점 정도는
난 것 같았다. 이걸 계속해야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쯤 오랜만에 제대로 맞은 장타가 나왔다.
외야로 날아가 굴러가는 공을 후임이 줏어서 힘껏 홈으로 뿌렸다. 공은 홈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실제 경기장이었다면 관중석이 있어야 할 방향이었다. 아는여자를 본 모양이었다.
힘이 빠져버린 우리는 다 집어치우고 마지막으로 점수를 내는 팀이 이긴걸로 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러고나니 사라졌던 긴장감이 조금은 돌아오는 듯 했다.
 
그리고 첫 타자로 나선 후임이 땅볼을 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비를 보던 상대방이 던진 공이 1루수
글러브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이 게임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나온 야구경기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이제는 세입이네 아웃이네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심판도 없고 룰도 잘 모르니 무조건 서로
우기기 시작했다. 공이 빨랐네 아니네 몸이 빨랐네 베이스를 밟아야 아웃이네 아니네 심장에 공을
찍어야 아웃이네 막무가내로 서로 우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말싸움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우리는 정리를 하고 내무실로
돌아갔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그 이후로 야구공과 글러브는 어두운 창고속에 쳐박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공에대한 논란은 한참동안을 계속 되었다. 그리고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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