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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얘기
게시물ID : sewol_149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복잡미묘
추천 : 8
조회수 : 71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4/23 22:28:33
안녕하세요 32세 여징어입니다.
 
서울에서 아동청소년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라... 세월호 사고로 정말 사무실 분위기가 침울합니다.
하루종일 훌쩍훌쩍... 누군가의 훌쩍이는 소리, 또 한숨소리만 가득한지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네요.
외근이나 출장 다녀온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뭐 좋은소식...? 하고 물었다가 서로 고개를 떨구고 한숨만 쉬곤 합니다.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는데도 종종 타인의 아픔에 공감은 커녕 더 큰 상처를 주는 생각없는 사람들 얘기때문에
아... 도대체 이 나라에 미래란게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잠시 콘크리트층에 대해서 작은 얘기지만 하나 해볼까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30년 넘게 군에 계셨어요.
사관학교 출신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즐겨보던, 그야말로 콘크리트 중에 콘크리트셨지요.
 
오죽하면 제가 집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며 대학교 다니던 시절, 가끔 집에 내려가면 이런 말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노통 얘기 할거면 집에 오지마라 "
" 촛불시위같은거 가지 마라 그거 다 북한의 소행이다. 북한이 남침하면 다시 할아버지 때처럼 전쟁난다. 그런데 현혹되지 않을거라고 믿는다. "
고 하셨던 분입니다.
 
어쨌거나 그런 아버지가 바뀌기 시작한 건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었습니다.
 
처음엔 조선, 동아일보를 끊는 일로 시작됐었죠.
초년장교시절 국비로 미국유학도 다녀오셨을 만큼 저희 아부지는 영어도 잘하십니다.
노통돌아가셨을 즈음, 또 광우병논란 등 MB집권기 동안
종종 아버지와 영어공부를 핑계로 CNN등 외신을 보여드렸었고
혼란스러워 하는 아버지께 다양한 증거자료(특히 외신에서 이야기 하는)들을 보여드렸었는데
 
아버지가 그 뒤로 어느날엔가는
 
" 아- 조선동아일보 끊는다고 했더니 하도 계속 넣길래 [또 한 번 더 그런 쓰레기 집앞에 갖다두면 쓰레기 무단투기로 신고하겠다]고 경고문 붙였더니 이제 않넣더라-_-ㅋㅋㅋ " 하시더군요.
 
제 고종사촌 여동생이 일베를 한다는 사실을 아신 어떤날은
조용히 고종사촌 여동생을 불러
" 머릿속에 똥만 채우고 살거면 외삼촌 볼 생각 말거라. 다신 그런 쓰레기 같은 곳에 재미로라도 들어가지 마라. " 고 하셨습니다.
 
또 이번 대선때에는 81세인 할머님을 모시고 선거하러 가시기 전
" 어머니 1번은 안되요. 1번에 도장 찍으시면 가난한 애들 위해 일하는 큰 애(아동복지 일하는 저를 얘기하신 겁니다) 뜻도 못펴고,
이 나라가 다시 유신시절로 돌아갑니다. " 하고 할머님께 설명하셨어요. << --- 저 이 얘기 듣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예전 우리아부지 맞는걸까;;;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조금씩 변해온 저희 아부지가
오늘 가족톡에서 가족들과 그냥 보통때의 대화를 나누던 중 보니
 
CYMERA_20140423_214742.jpg
CYMERA_20140423_214818.jpg
 
노란 리본을 달고 계십니다.
(천서방은 제 남편입니다. 결혼한지 한달되었는데 곧 베트남 출장을 가게 되어서 그거 걱정하시느라 월남갔냐고 물으신 거에요)
 
 
 
저희 집안은 사실 6.25시절 학생으로 서울에 홀로 유학와 계시던 할아버지가 이북 출신임에도 북에 계신 가족들 찾겠다고
국군으로 참전하셨던 역사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6.25에서 살아남으셨지만
평생 이라는 3대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후 부모님도 못뵙고 오마니를 그렇게 찾으시던 할아버지가 기억이 나네요.
할아버지는 육군 상사로 제대하셨지만 작은 화랑무공수훈장만 뽀얗게 먼지를 인채로 국가유공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현충원에서 할아버지를 모시지 못하게 했었습니다. (후에 다행히 아버지의 탄원활동으로 할아버지와 다른 참전용사 할아버님들이 현충원에 묻히시게 되긴 했어요)
평생 전쟁의 상흔을 가진 할아버지 아래서 가난하게 자란 아버지가 학비없이도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택했던 사관학교는
박통시절이었던지라 저희 집안이 월남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입교를 거부당할뻔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국군참전용사셨기에 겨우 입교가 가능했었다네요)
아버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장교로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하십니다.
빨갱이요? 저희 아부지는 아직도 북한빨갱이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주적인건 사실이라고. 북한의 불쌍한 보통사람(인민)이 아니라 미친 독재 김정은이와 그 수하들은 쳐부숴야할 악당이라고 말하시는 분입니다. 허허허.
 
 
 
오늘 동료들과 대화하던중,
이 나라 콘크리트들은 이 참사에도 종북운운하며 희생자가 아닌 정부감싸기에 바쁘다 라는 얘기가 나오고 더더욱 침울해졌었습니다.
그러나 콘크리트도 깨집니다.
진실과 마주하고 잠시 엄청 혼란스러워 하시더라도 말이죠.
 
아버지가 이번 세월호 사고 보시다가 가만히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을 보고
" 아부지... " 그랬더니
헛기침 하며
" 담배나 펴야 쓰것다. 저 생떼같은 자식새끼들 잃은 부모들 보고 있으니 거참... " 하고 애써 붉어진 눈시울 감추시던 생각이 납니다.
 
이념이고 나발이고
모두에게 귀한 아이들을... 한두명도 아니고 이백이 넘는 그 꽃다운 녀석들을 어처구니 없이 잃었습니다.
그것도 다 살릴수 있었던 아이들을 어른들의 무심함과 어리석음, 이기심으로 말이죠.
모두에게 너무 아픈 봄입니다.
모두의 비통함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념이니 종북이니 떠들어 대는 이들이 있지만
언젠가는 깨질겁니다. 그 콘크리트 같은 신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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