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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어버이날 드린 편지에 아빠가 써주신 답장
게시물ID : freeboard_7618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튀긴땅콩
추천 : 7
조회수 : 59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5/08 23:34:11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 숙제는 다름아닌, 어버이날 부모님께 편지를 써드리고 답장 받아오기! 였습니다.
아주 뻔하디 뻔한 저의 편지에 아빠가 굉장히 정성스런 답장을 써주셨어요.
오늘 그게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봤네요.
그냥 재미로 봐주세요^_^


사랑하는 우리딸 튀긴땅콩에게

땅콩이의 글을 읽어보니 우리 딸이 엄마 아빠 모르는 새에 참 많이도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이런 욕심도 생기고 말이야, 어버이날이 아닌 다른 날도 받아봤으면 하는..
예쁘고 착한 우리 땅콩이를 누가 주셨을까?
땅콩이는 하늘나라 공주님이었을껄, 공주님을 삼신 할매께서 엉덩이를 탁! 치면서
"옛다, 가거라" 하셨을게다. 고맙기도 하시지. 그렇지?

땅콩아.
부모님의 은혜가 뭘까? 낳고 길러 주신 것? 그래 맞아.
세상 무엇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사랑으로 낳고 길러주시는게 부모님의 은혜이겠지.
만약에 사랑이 없으면 삼신할매께서 점지해 주시지도 않고 북두칠성님이 생명을 이어주지도 않거든.
옛날 옛날부터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어 내려와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지금 오빠와 땅콩이를 이 세상에 있게 한 것은 오직 사랑의 힘이란다.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없으면 미움이 생기지.
오해, 욕심이 생겨서 다투게 된단다.
여러 사람이 크게 많이 다투다보면 전쟁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지.
사람뿐만 아니란다, 개나 고양이, 혹시 우리 발밑에서 우연히 밟힐지도 모르는 개미들,
산과 들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풀, 꽃들
길가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돌멩이 까지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단다.

땅콩아, 사람은 나서(또 모든 살아있는 것) 늙어서 죽게돼.
죽는다는 것은 땅에 묻혀 흙이 된다는 뜻이지.
흙에서 노란 민들레도 피고 파란 제비꽃도 나지.
할머니가 열심히 가꾸신 고추, 상추, 배추, 오이도 흙에서 나지.
아빠와 땅콩이는 고추 먹고 맴맴....

이걸 부처님께서는 인연의 법칙이라 하셨단다.
아빠는 음... 사랑의 법칙이라 하지.

땅콩아, 
땅콩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게, 그래서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게
엄마 아빠의 은혜에 보답하는거라 했지?
기쁘게 해드리겠다 했지?
땅콩이는 아빠가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러면 아빠보다 더 병을 잘고치는 의사는?
아빠보다 장구를 더 잘치는 사람은? 선생님은?
교수, 판사, 검사, 간호사, 장관님은? 대통령 할아버지는?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안 훌륭한 사람들이겠네.
공부 못하는 땅콩이 동무들, 새벽에 우리가 다 자고 있을 때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
농촌에서 일하시는 아저씨, 할머니들,
똥 치우는 아저씨들, 공장에서 땅콩이가 입고 쓰는 옷, 신, 책 만드는 언니 오빠들...
만약에 옷이나 신을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땅콩이는 발가벗고 학교를 다녀야겠네.
생각해보렴, 이해가 되지?

진짜 훌륭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란다.
땅콩이도 TV에서 봤지, 대통령을 지낸 분이 나쁜 짓을 많이해서 감옥에 가는 거.

공부를 잘해서 누구를 이기겠다는 것은 힘이 세서 누구를 이기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단다.
지는 사람은 얼마나 슬프겠니?
그래서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란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면 공부 못하는 사람은 가르쳐주고,
힘이 약한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야해.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일등도 할 수 있는 거고
다른 동무들이 모두 열심히 해서 땅콩이가 꼴찌를 하면 또 어때?
땅콩이만 열심히 하면 되는거지.

사랑하는 우리 딸 땅콩이!
아빠 말이 어렵고 지루하니? 다 몰라도 돼.
커가면서 차츰 아빠 말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
나중에 보니 아빠 말 중에 틀린 생각도 있을 수 있을테고.

이뿐아!
아빠가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했지?
사실은 더 중요한게 있어요.
뭐냐면 '사랑의 실천' 이야.

며칠 전 아빠가 시골 할머니 이야기 하니까 땅콩이는 울었지?
할머니를 사랑한다고 하면 뭐해,
아빠가 모른척하고 입 다물고 있으면 땅콩이는 전화기 근처에도 안가대?
어버이날 되어도 편지만 한 번 달랑하고 그 다음부터도 달라지는게 별로 안보이던데?
용돈 아껴서 엄마아빠 손수건 한장이라도 사 볼 생각 안해봤니?
북한 어린이들이 굶어서 살이 너무 빠지고 심하면 죽는 동무들도 많다던데
땅콩이는 먹다 남기는 음식도 많지?
북한 어린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해도 아껴쓰고 적게 먹고 비싸고 맛있는 거 안먹고
돈 모아서 북한 어린이한테 보내줄 생각은 안드니?

사랑하는 착한 땅콩이.
사랑을 말로 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웁단다.
왜냐하면 편하게 쉬고 싶지만 내 몸을 더 움직여야만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거든.
내 돈을 적게 써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참아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단다.

엄마 아빠나 땅콩이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욕심이 많아서
자기 것은 할 것 다하고 나서도 다른 사람을 도울 마음을 낼까 말까 하기 때문에
자기 욕심을 줄이지 않으면 이웃과 더불어 잘 살기가 어렵단다.

씩씩하고 용감한 땅콩아!
땅콩이에게도 일이 있듯이 엄마 아빠에게도 일이 있는 것 알지?
그리고 오빠와 땅콩이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삼촌, 이모들도 너무너무 많은 거 잘 알고 있겠지?

너희들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우리 아들딸이 너무 이해를 잘해줘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그러고 보니 아빠도 평소에는 아들딸에게 못해주는게 많은데 말로만 사랑을 다하나?

1997년 5월 8일 새벽

아들딸이 사랑하는 만큼,
아들딸을 사랑하는 아빠가








모바일로 쓰느라 시간이 넘 오래 걸렸네요...ㅠ
보기 불편하진 않을지...
암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지와 같이 찾은 옛날 사진도 하나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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