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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대한의 명문가와 김락 여사
게시물ID : history_157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모카초코
추천 : 12
조회수 : 163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5/12 11:12:20
시아버지는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으로 나라가 망하자 단식끝에 순국

남편은 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시작, 1914년 안동과 봉화장터에 격문을 돌리고

3.1운동 당시 "파리장서"라 불리던 유림의 독립청원서 발의 등의 독립운동 도중 얻은 병으로 순국

큰오빠큰형부 등 친정집은 서간도 독립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행

큰오빠는 만주행 도중 만삭의 손자며느리가 산기를 느끼자 일제가 짓밟은 땅에서는 출산할 수 없다며

압록강을 넘어 출산토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독립지사 김대락..

맏아들은 대한광복회의 일원으로 일제에 의해 구속

둘째아들은 1925년 2차 유림단 의거에 참가 하였다 일제에 의해 구속

맏사위는 '조선 최고의 파락호'라는 건달로 위장하여 현 100억원이 넘는 종가재산을 모두 독립자금으로 지원하다 체포

둘째사위는 안동지역사회운동 가담

본인은 예안면 만세운동에 나섰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두 눈을 모두 실명

이 분과 관련된 인물등 중 훈장을 받은 독립지사 총 28명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명문가로 진짜 양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이분은 바로 김락 여사님이십니다.

1976년 공개된 "고등경찰요사"에 기록된 김락여사에 관련된 기록을 보면

"안동의 양반 이중업의 처가 1919년 소요 당시 수비대에게 끌려가 취조를 받고 실명했다"

"아들 이동흠은 3.1운동떄 어머니가 끌려가 두 눈을 잃고 11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셨으니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절대 버릴수 없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등경찰요사.jpg
<일제 "고등경찰요사">




여성독립운동가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특히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 아니라 전통적인 양반가문의 규수로 항일투쟁에 나선 김락여사는

아쉽게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정말 모질고 독한 인생이었습니다.

의성김씨 김진란의 딸로 만 18세에 진성이씨의 문중으로 시집을 가게된 그녀는

2남 3녀의 어머니로 풍족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면서 고난을 겪기 시작합니다. 위에 언급한 풍파가 시작된거죠.

시아버지와 형부, 친오빠와 두아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뛰어든겁니다.

그렇게 35년동안 친가와 시가, 모두 독립운동으로 풍지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동흠.jpg

<아들 이동흠 70세사진>


그런 풍지박산 속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을 뒷바라지하고 지켜온 철의 여인 김락

하지만 그녀도 계속 된 인생의 모진 충격을 버티지 못하였는지

두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합니다.(가족들에 의해 저지됨)

이후 고통 속에 사시다 1929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십니다.

사진 한장 남기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가셨죠.

다행히 이런 김락 여사의 독립운동은 최근 들어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안동에서 김락 여사의 독립운동을 소재로 인형극과 뮤지컬을 공연하고

여사를 기리는 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 시의 전문입니다.

나라의 녹을 먹고도 을미년 변란 때 죽지 못하고
을사년 강제 조약 체결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자결하신 시아버님

아버님 태운 상여 하계마을 당도할 때 마을 아낙 슬피 울며
하루 낮밤 곡기 끊어 가시는 길 위로 했네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의 삼천 석 댁 친정 큰 오라버니 
백하구려 모여든 젊은이들 우국 청년 만들어 
빼앗긴 나라 찾아 문전옥답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나던 날
내앞 마을 흐르던 물 멈추어 오열했네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무슨 그리 큰 죄런가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향산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말 걸어본다
머무는 하늘가 그 어디에 김락 여사 보거들랑
봉화 재산 바드실 어르신과 기쁜 해후 하시라고
해거름 바삐 가는 구름에게 말 걸어본다.

이윤옥 -서간도에 들꽃 피다-

하지만 그녀가 시집가서 살던 마을은 안동댐 공사로 수몰되고 기념비 하나만 덩그러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2011년 기준으로 그녀의 무덤은 제대로 된 관리가 안되고 있어 찾아가기조차 힘들다고 하는군요.

그렇다고 민족의 딸이자 아내, 어머니인 그녀의 자취가 없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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