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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sisa_5161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름다운시선
추천 : 0/2
조회수 : 48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5/24 11:33:59

 

 

 

화제의 월화 드라마 '추적자', 그리고 화제의 수목 드라마 '유령'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드라마 속, 부정부패의 존재입니다.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 부패한 대선후보 '강동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기관을 해킹하고 공무원들을 포섭하여 정보를 조작하는 '조현민'

 

두 드라마의 히어로들은  개인이 사사로이 국가권력이 움직이는 상황을 통해 부정부패가 한 나라의 근간을 흔들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것을 일찍이 깨닫고 행동으로 실천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입니다.

 

그는  싱가포르를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 반부패지수 세계 3위에 빛나는 청렴 선진국으로 이끌었습니다.

 

 

리콴유, 부정부패에 환멸을 느끼다.

 

 

리콴유는 1923년 세계적으로 전운이 감도는 암울한 시기에 싱가포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싱가포르 유수의 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합니다. 이어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와서 정치를 시작했고 1959년 싱가포르 자치정부의 총리가 됩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싱가포르는 아편과 밀수, 부패가 판치는 나라였습니다. 리콴유는 부정부패로 얼룩져 국민을 위하기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급급한 관리들과 아시아의 지도자들을 보며 환멸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식민지 시절 독립 운동을 할 때는 민중의 편에 섰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하나같이 국민의 재산을 빼앗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시대가 그때였습니다.

 

 

(사진출처http://blog.naver.com/geosyoon8810?Redirect=Log&logNo=90124335034)

 

 

그는 취임식장에서부터 '깨끗한 정부, 부패없는 정부'를 이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총리 취임사진을 보면 리콴유를 비롯한 각료 전원이 흰색 와이셔츠에 흰색 바지를 입고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정부출범식인데 고급양복을 차려입을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서전에서 "청렴과 정직을 상징하기 위해서 이런 옷을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신념은 깨끗한 싱가포르 정부의 변함없는 원칙이 되었습니다.

 

부패와의 전쟁은 시작됐다. 

출처 밝히지 못한 거액은 유죄가 되는 싱가포르 공무원들.

 

리콴유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부패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강력히 시행합니다.

먼저 탐오조사국 CPIB을 강력히 재정비하여 "부패와의 전쟁은 신속, 정확, 단호, 공평하게!" 라는 기치아래 부패사범을 처벌하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뇌물을 시대에 맞게 다시 정의하고, 용의자를 찾아내면 체포 및 구금할 수 있는 권한과 용의자의 가족과 대리인도 조사할 수 있는 강력한 수사권한을 탐오조사국에 부여했습니다.

 

 

싱가포르의 공무원들은 자신의 월급이나 재산으로 누릴 수 없는 호화 생활을 하거나, 수입을 초과하는 돈을 갖고 있을 때 정당한 출처를 밝히지 못하면 유죄가 되는 관례는 이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또 부정부패로 재산을 모은 증거가 조금이라도 밝혀지면 혐의자의 전 재산은 가차없이 몰수됩니다.

 

 

(사진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366&aid=0000008518)

 

 

이러한 강력한 제도는 청렴하지 못하면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결과적으로 싱가포르 공무원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되었습니다. "공무원하려면 싱가포르에서, 가수되려면 한국에서" 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친구우대? 그런건 절대 없는 걸로~

 

이러한 청렴의 원칙은 리콴유의 측근 세력도 비켜가지않았습니다.

 

1986년. 리콴유의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국가개발부장관이었던 태 치앙완이 두 차례에 걸쳐 40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240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이 돈은 우리나라에서는 뇌물 액수로 그다지 크지 않은 돈입니다.

 

그런데도 싱가포르의 청렴원칙은 공정히 적용되었습니다.

 

태 치앙완은 탐오조사국의 조사 대상자라는 이유로 리콴유는 태 치앙완의 면담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그에게도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지게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탐오조사국(CPIB)의 조사 대상자가 된 리콴유, 거인의 풍모를 보이다.

 

 

이러한 원칙은 리콴유 총리 자신에게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1995년에 리콴유 자신이 반부패 혐의로 조사대상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1990년에 총리직을 사임한 리콴유는 당시 선임장관이라는 직책으로 싱가포르 정부에 조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때 부인 콰걱추 여사와 아들인 리센룽(당시 부총리)가 주택을 구입했고 비교적 낮은 가격에 구입했으나 후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여 부동산 투기가 아니었나 하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엄청난 국가적, 세계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CPIB(탐오조사국)가 철저히 조사했으며 결국 무혐의로 결론났습니다. 리콴유 일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부동산 시장의 문제였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리콴유는 조사가 종결된 뒤 의심을 받았던 부동산 급등에 따른 차익에다 사재를 보태 모두 100만 싱가포르 달러를 사회단체에 기부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직접 보여준 것입니다.

 

 

(사진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0088795)

 

 

리콴유는 조사가 끝난 뒤에...

"내가 만든 시스템이 나 자신의 행적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싱가포르의 반부패 조사와 방지 원칙이 잘 운영되고 있는데 만족한다."는 소감을 밝혀 거인의 풍모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싱가포르는 부패 구조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않았고 그런 노력에 힘입어 싱가포르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09년 세계반부패인식지수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최고의 청렴국가로 우뚝섰습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청렴은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경제기준을 한단계 높이는 선진국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지 오래입니다.

 

원리와 원칙보다 부정부패가 우선되는 곳은 도태되고 퇴보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있습니다.

 

'아무도 모를거야' 하고 시작되는 부정부패라는 돌멩이는 그 욕심만큼 점점 자신의 주머니를 무겁게하고 결국 스스로 파는 무덤이 되지 않을까요. 리콴유의 엄격한 청렴원칙을 되새겨봐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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