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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대 교과서에서는 잘 안알려주는 내용.txt
게시물ID : history_16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d
추천 : 4
조회수 : 109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6/07 21:20:11
사실 임진왜란을 배우기 전에
이탕개의 난 - 기축옥사+정여립의 난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이탕개의 난 1583년
 
당시 북방에는 여진족의 세력들이 규합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족 단위의 수준이였고 완전한 지배체계가 일원화 되기 전이였죠
[나중에 요놈들이 커서 후금이되고 청이 됩니다.]
 
게다가 내정이 불안해지자
조선은 아버지의 나라라고 생각하던 여진족 놈들이 뒤통수를 치기 시작합니다.
 
먼저 우을지가 1만을 가지고 조선을 쳤고. 이탕개가 직접 여러부족들을 선동하여 그 위세가 엄청나게 됩니다.
당시에 조선의 유능한 장수들이 대거 투입 됬을만큼 만만하지 않았었는데.
 
당시 신립은 500기를 가지고 1만 여진족을 물리치는 말도 안되는 능력도 보여줍니다.당시 왕의 사위라는 신분은 말을 할 필요도 없었죠.
신립의 활약과 장수들의 활약으로 막게 됩니다. 하지만 상당히 큰 전쟁으로 당시에 파급은 엄청 났습니다.
 
기축옥사 1589년
그리고 정확히 6년 뒤 기축옥사라는 말도 안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정여립의 모반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서인이였던 세력과 동인과의 갈등 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나게 되며 조선 말기까지 이어 지는데
흔히 우리가 아는 관동별곡의  정철이 싸이코패스 급으로 1000명 관계 있는자는 모두 엮어 동인의 반대세력을 제거 합니다.
 
그 수가 조선시대 모든 사화를 합쳐도 배나 많다고 하니 당시의 모든 인재들은 죽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죠.
이 일로 이탕개의 난을 진압한 정언신도 정여립과 9촌관계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만약 영일 정씨였던 정철과  동래 정씨였던 정여립이 본관이 같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조선에는 한번의 피바람 이후 기회가 찾아 옵니다.
바로 황윤길과 김성일을 일본의 통신사로 보내게 됩니다.
 
당시에 이번엔 동인이 득세 하였는데. 동인의 정치공작에 정철이 광해군 옹립을 주장하다 선조의 미움을  사게되고
이번엔 동인이 정국을 주도 하게 됩니다.
 
1591년 전쟁이 나기 1년전. 김성일과 황윤길은 일본의 상황을 보고 하게 되는데.
당시 동인 이였던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능한 인물이라 폄하하며 전쟁은 나지 않는다고 보고.
서인이였던 황윤길은 전쟁 방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 합니다.
 
하지만 당시 정국을 장악한 동인의 김성일의 말에 힘이 실리고 결국 조선에 한번의 기회는 날아 가게 됩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전 만약 기축옥사라는 큰 모반 사건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정철이 있었습니다.
많은 인재들이 억울하게 죽었고 1000명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죄없이 고문 당했습니다.
 
웃기게도 서인의 몰락에는 또 정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인이 만약 몰락 하지 않고 황윤길의 말을 선조가 듣게 되었다면?
역사에는 만약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역사도 있죠.
 
네이버에 정철을 치면 아직도 강직한 인물로써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 한 인물이 후대에도 이렇게 역사를 뒤바꾼 사람도 없을겁니다.
 
아 그런데 끝맺음을 어떻게 하지.. 정철 개객끼?
역대급 먼치킨 전투인 용인전투는 어떻게 쓰지.. 나중에 시간나면 오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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