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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할게 너무 많음이라.
게시물ID : sisa_5310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스파로브
추천 : 3
조회수 : 5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17 01:21:29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이 굉장히 많다.

2014년 4월, 세월호를 기억해야했다. 수백명의 아이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것을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못난 어른들의 잘못이요, 그리고 못난 어른들은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외쳤다.

우리는 기억할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는 기억해야할게 너무 많다.

2002년,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신효순, 심미선. 우리는 그 당시에 들불같은 반미 여론을 조성했고 그때는 효순 미선을 기억하자고 외쳤다.

그리고 2009년, 노무현이 죽었을때에도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을 기억했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것이다.

2010년, 천안함이 침몰했다. 대한민국을 지키러 간 해군장병들이 수장당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해야한다고 외쳤다.

기억해야 할게 너무 많다. 우리나라는 항상 무언가를 기억해야 하는 나라여야 하는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동족상잔, 양민학살이 일어났다. 그리고 반공세력이 들고일어나 6.25를 기억하자고 외쳤다. 다시는 빨갱이들이 조국을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외쳐왔다.

1959년, 이승만의 정적이었던 조봉암이 처형당했다. 많은사람들이 조봉암의 처형을 보고 그의 죽음을 기억하자며 9개월 뒤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우리는 헌법 전문에도 명시된 4.19혁명 정신을 기억할수있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일어났다.

1961년, 친일파 다까끼 마사오를 선두로 한 국가 전복세력들이 장면정권을 쿠데타로 전복시켰다. 이후 장장 32년간 군사독재 세력들이 장기 군부독재를 할 수 있게 만들 근간을 닦았다.

1980년, 5월 18일 장기간의 군사독재에 염증이 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독재 여론이 조성되던 시기. 광주는 고립되었고 전대갈과 그를 위시한 폭도 세력들이 광주학살을 일으켰다.

1988년, 기나긴 투쟁 끝에 찾아온 투표권으로 노태우가 뽑혔다. 그리고 우리는 올림픽을 맞으며 투쟁의 기억을 다 잊어버렸다.



이렇게 쓰면서도 중간중간에 공백이 있음은, 이미 필자도 투쟁과 희생의 기억을 다 잊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린 기억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다. 그리고 우린 당장 직장에 출근해서도 오늘은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기억해야만 하고,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것이며 오늘은 퇴근을 정시에 할 수 있을지 생각할것이다. 야근을 할 지라도 퇴근 한 후에는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갈것이며 자기 전까지 여가시간을 즐길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여가시간을 즐기고 있으리라.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위에서 말한 사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것을 기억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1905년의 을사조약 1910년의 한일 합방. 모두 기억해야 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 말고도 더 많은 사건들을 기억해야 하지 않는가? 특히 영화 도가니가 기억나는가? 이명박이 판 대운하도 생각나는가?

왜 우리는 기억 해야 하는가? 이정도면 그 잘나신 뉴라이트가 말하는 과거는 잊고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가?

우리는 너무 피곤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기억할것이 너무 많다.

우린 언제까지 기억해야 하는가? 나라가 이지경이다. 기억하는것만으론 모자란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1905년의 을사조약, 1910년의 한일합방을 기억한다고 한들, 지금 우리는 개독+친일파+극우의 삼위일체의 총리를 보고있지 않은가?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억하는것만으로는 악행을 막을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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