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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주의) 어렸을적 병아리 키웠던 이야기.txt
게시물ID : humorstory_4219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나인
추천 : 3
조회수 : 57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29 18:05:50

이건 나의 감수성이 풍부했던 유년시절, 애완동물을 키웠던 이야기 이다.

난 어린시절부터 동물이 좋았다. 3살때부터 메뚜기 잡으러 간다고 8시간씩 집을 비워 미아될뻔한 적도 있고 꿀벌을 잡다가 엄지손가락을 쏘인 경험도 있다. 내가 울면서 집에가자 동네 형들이 내 복수한다고 꿀벌 수 십마리를 잡아서 수장시키기도 했다. 미아녜 벌들아 ㅠㅠ 나땜에.... 죄없는 니들이 ㅠㅠ 


유치원 시절부터 개를 키웠고 길거리를 걷다가도 고양이나 개가 보이면 그냥 걸을음 떼지 못했다. 그런 나였으니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을 보고 그냥 집에갈 수 없었다.


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봄이되면 초등학교 교문앞에는 벙거지 모자쓴 할아버지가 와서 노란 병아리들을 잔뜩 늘여놓고 팔곤 했다. 


삐약삐약 하면서 울어대는 병아리들은 정말 귀여웠다. 막 태어난 강아지 만큼이나 귀여웠으니 내가 그냥지나칠 수 없는건 당연한 이치였다. 내 기억으로는 4마리와 모이 한 봉지를 샀던것 같다. 


당연한 소리지만 집에 들어와서 엄마한테 꾸중을 들었다. 어차피 곧 죽어버릴텐데 사와서 뭐하겠냐는 말씀이셨다. 하지만 나는 내가 무조건 잘 키우겠노라고 떼를 썼고, 내 고집을 아는 엄마는 종이박스로 병아리 집을 만들어 주셨다.


너무 만져대면 곧장 죽는다는 엄마말에 그저 멀리서 지켜보다가 정말 못참겠으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을 뿐이었다. 고사리같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을 때면 병아리들은 머리를 치켜들고 삐약삐약 했었다.  마치 강아지가 아양떠는듯한 그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머리 건들지 말고 저리 꺼져 닝겐아'라는 몸부림인것 같다. 새는 그닥 인간과 친화력이 좋지 않으니까.



며칠 뒤 자고 일어나니 한 마리가 시름시름 앓고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억지로 물을 먹여보니 곧장 일어나서 삐약삐약했다.
내 보살핌으로 다시 원기를 회복한것 같아서 뿌듯했다. 헌데, 학교 다녀오니 녀석은 죽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픈놈한테 수돗물을 맥여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석의 마지막 삐약거림은 회광반조가 아니라 cl2의 매캐함에 몸부림치는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글을 쓰니 내가 무슨 싸이코 패스 같은데, 그게 아니라 어린시절 난 무지했을 뿐인 순수한 아이였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


여튼, 나머지 세 마리는 용케 살아남았다. 동네 친구들 중에서도 내 병아리들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건 진실로, 내 보살핌이 극진해서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녀석들에게 딱히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녀석들은 모두 '삐약이'였을 뿐 어떤 이름도 없었다. 그 때 이름하나 제대로 못 붙여준점이 너무 미안하다. 그 해 여름이 오기전 내가 그녀석들에게 이름을 붙여줬다면, 삐약이가 아닌 다른 존재로 내 기억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그리고 그 더위는 삐약이들을 모두 앗아갔다.....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7월 중순쯤..... 밖에서 놀다 들어오니 마당에서 뛰놀고 있어야할 삐약이중 한 마리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들어간 집에는.... 아빠 엄마 형이 닭 백숙을 먹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상위에 야시시한 자태로 가랑이를 오픈하고 올라서 있는 영계 백숙이 삐약이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엄마 어떻게 삐약이를 잡아먹을 수 있어!!?"



엄마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아빠는 신경쓰지 않고 닭국물을 호로록 잡수셨다.


"이리와 아들 와서 이것좀 먹어봐"

엄마는 닭다리로 날 유혹했지만 난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됐어!! 엄마 미워!!"



엄마는 한사코 닭다리를 내 입에 물리려 했고 
삐약이의 다리를 코앞에서 보니 눈에선 눈물이 터져나왔고
내 입에 물려진 닭다리에선 육즙이 터져나왔다.


세상에 영계백숙은 그 때 처음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었다.



그 후 10일 뒤 또 한 마리
10일 뒤 또 한마리를  먹었다.



그 해 여름의 무더위는 삐약이 세 마리를 모두 앗아갔지만
내 순수함만은 앗아가지 못한것 같다.

요즘처럼 복날즈음이 되면 삐약이 들이 다시 생각나니까 말이다....



나는 그들을 추억하며 어린 시절의 내가 미쳐 붙이지 못했던 이름을 지금에서야 붙여본다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

너희와 함께해서 무더운 여름날도 행복할 수 있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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