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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정치참여기
게시물ID : sisa_5412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치아미백
추천 : 0
조회수 : 3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7/31 10:06:10

나꼼수 1회가 시작되면서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이 정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김총수의 멘트와 함께
정치에 눈을 띄게 되었죠.

나꼼수의 여러 에피소드를 듣다 보니
사업가 출신이라서 경제는 부흥시킬줄 알았던 MB의 더러운 실체를 깨닫고
현새누리당이 왜 박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죠.

이런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는 더 이상 속지 않기 위해
일단 투표부터 빠지지 않고 했죠.
그 다음 관심이 가는 정치인을 후원하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서부터 기묘한 비극이 시작됩니다.

1234.jpg

2010년 경기도지사를 건 유시민 vs 김문수 매치.
이 당시에 펀드가 참신했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어떤 정치인이 선거비용 후원 펀드를 만들었습니다만 이자 문제로 말이 많았었죠. 
그것을 깔끔하고 투명하게 업그레이드 시킨 유시민 대표였습니다. 
이때 펀드 모집 3일만에 후원금이 다 모였을 정도로 인기는 대단하였고 저 또한 무조건 승리로 보답 받을 줄 알고 후원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낙선.

2011년 봉하마을이 있는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김태호 vs 이봉수(야권 단일후보, 유시민 적극참여)
제 거주지가 창원이라 아침마다 창원터널에서  홍보하시던 유시민 대표가 생각납니다. 
비가 올때도 우비까지 쓰며 후보자 홍보에 적극적이셨죠. 
그런데 중요한건 후보였습니다. 김태호 의원이 키가 훤칠하고 생김새도 시원해서 김해 어르신들이 참 좋아했죠...
티비 토론에서도 이봉수 후보가 너무 말을 말했는데 비해 김태호 의원은 말도 잘했습니다.
야권 형세가 유선를 보좌하는 공명같았죠... 결국 패배하고 덩달아 유시민 대표의 지지율 하락세가 가속을 붙기 시작했었습니다.
김해에 친척이 많아서 새누리만은 막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야권을 찍어달라고 전화 많이 돌렸었는데 참 캄캄하더군요.

2012년은 4.11 총선이 있었습니다.
SSL11115.JPG
여러 정당이 통진당으로 합쳐서 전국 강연 콘서트를 돌던 때 참석했었습니다.
이때 참 화기애애했었죠. 이때 유 대표님은 비례대표 12번으로 나오는 모 아니면 도 같은 결정을 하게 됩니다.
'정치로 성공하고 싶다기 보다 정치를 성공하게 하고싶다.'는 연설과 함께 통진당으로 정당 지지율을 몰아주기를 원하셨으나...
비례 12번이라뇨 하늘이 두쪽나도 국회입성은 불가능한 순번이었죠;
유 대표 본인도 비례 10번까지는 될거 같다고 인터뷰도 하셨습니다만...
결과는 비례 6까지 입성, 국참, 노총계 전멸... 유대표에게는 악몽같은 결과였을 겁니다.
그 후 사진 속 3대표는 찢어지게 되고 유시민 대표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저 당시 유대표님 마음도 찢어지게 고통 스러웠겠지만
저 또한 이건 뭐 제가 참여하는 것마다 패배 아니면 해체가 되니 정치 쪽에 환멸감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 해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었으나...

어제의 동작을...

참으로 갑갑합니다. 
당연하게 이길거라 확신했던 선거에서 충격의 패배를 맛본 저로서는
상식과 정의가 왜 정치에서는 오작동을 일으키는지
원인이 아파트값 상승을 원한 국민의 욕심에만 있는건지 생각해봅니다.
패배감, 분노 등의 감정이 이렇게 큰 마음속의 통증으로 나타나는 걸 보면
차라리 '사업가 이명박이 대통령 되었으니 우리도 이제 부자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던 시절로 돌아가고도 싶습니다.
휴... 글쓰는 내내 복잡한 감정이 불쑥 치밀어 올라 글이나 내용이 개판이네요. 죄송합니다.
아마 당분간은 정치 쪽에 관심은 접어두고 생업에만 집중하게 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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